여론조사 중독정치 [세상읽기]

한겨레 2024. 10.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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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유튜브 갈무리.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최근 ‘명태균-대통령 부부 스캔들’로 국회 국정감사장이 뜨겁다. 이 스캔들은 아직 조사나 수사가 많이 진전되기 전이라,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나온 통화 녹음이나 증언만 보더라도 공직 인사나 정부 부처 정책 결정에 넓게 걸쳐 있는 국정 농단,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 공직선거 공천 개입, 정책 정보 사전 유출을 통한 이권 추구 등 다양한 의혹들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오늘은 명태균을 이 다양한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만든 핵심 수단, 여론조사 결과 조작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보통) 500~600개의 샘플을 추출한다고 할 때 40만원의 전화 비용이 든다. … 그런데 2000개 샘플로 결과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 이 얘기는 500개 샘플에다가 곱하기를 하라는 것”, “20대와 30대의 윤석열 당시 후보 지지를 20% 올리라는 것은 20대와 30대 중 윤석열 후보 지지 응답에 곱하기를 해서 결과 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2024년 10월21일 법제사법위원회, 강혜경 증인 발언 중)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 회의장에서는, 명태균과 강혜경이 나눈 전화 통화 녹음이 여러건 공개되었다. 강혜경은 그중 한 대화 내용에 대해 위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강혜경은 명태균의 지시를 받아 여러건의 여론조사를 실행한 사람이다. 위 진술은 몇가지 하위 정보로 나눌 수 있다. 첫째, 2000명을 조사했다고 보고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600명을 넘지 않는 사람만 조사한 결과다. 둘째, 조사된 500명의 응답을 2000명의 응답으로 부풀리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셋째, 명태균은 그중에서도 20~30대 응답자의 응답 결과 중 윤석열 후보 지지 응답자의 비중을 부풀려 왜곡하는 방법을 쓰라고 콕 집어 지시했다.

명태균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강혜경이 지금까지 여러 언론과 법사위 회의장에서 공개한 통화 녹음 내용과 진술을 통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지난 대선 국민의힘 후보 선출 당내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의 승리를 위해 한 활동이다. 명태균은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등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보다 더 높은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고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당내 경선 승리 전략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명태균이 시도한 여론조사 결과 조작이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실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로,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런 그의 생각에 당시 윤석열 후보도 동의한 것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강혜경의 주장에 따르면, 명태균은 수십차례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종종 보고했다.

다시, 명태균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강혜경은, 그가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 기간 전체에 걸쳐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수십차례에 걸쳐 공표용, 비공표용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여론조사에 들어간 비용을 받으러 갔다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아왔으며,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절반을 받은 것은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한 대가 중 일부였다고 한다. 그가 얻은 또 다른 대가는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로부터 수수한 돈도 있었고, 대통령 윤석열의 국내외적인 공적 업무에 부인 김건희를 통해 개입할 권력을 얻은 것도 있었으며,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는 명성을 토대로 많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위해서도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리하자면 명태균은 여론조사 정보 조작의 대가로 돈과 권력, 명성과 정치인 연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대체 여론조사가 무엇이길래, 명태균이라는 개인에게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까? 문제는 여론조사 자체가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 조작이 돈과 권력, 명성을 낳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유권자가 ‘될 사람’만 주목하게 만드는 선거제도가 지속되는 한, 여론을 조작해서라도 ‘될 사람’으로 인식되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을 제어하기 어렵다. 정당들이 여론조사로 당직자와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명태균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마식 여론조사 보도가 일상인 언론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여론조사 중독도 치유되기 어렵다. 정치와 언론이 만들어낸 여론조사 중독, 디톡스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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