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왜냐면]

한겨레 2024. 10. 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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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강조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긴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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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이태원 참사’ 현장 통제를 해제한 뒤 첫 주말을 맞은 2022년 11월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추모객들이 오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명근 | 자유기고가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강조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긴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 사실 ‘그런데도’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언어능력이 뛰어난 방송인과 학자들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선호한다. ‘언어의 경제성’을 이긴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친구 격인 표현으로 ‘굳이’가 있다. “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하는 이유는~”이라는 문장을 사용하는 건 강한 의지를 표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한 후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에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곳을 지나면 슬픔을 느낄 게 뻔함에도, 굳이 이별 노래까지 들으며 과거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기억을 재정립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임을 인정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역설적으로 성장한다. 고통을 마주할 때 비로소 성숙해지는 것이다.

올해 제주 4·3 76주기, 세월호 10주기, 5·18민주화운동 44주기 관련 기사에는 ‘이젠 지겹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곧 있을 이태원 참사 3주기에도 이 같은 반응이 나올까 벌써 염려된다. 부정적 반응의 이면에는 대개 두려움이 깔리는 법. 사람들은 비극을 직면할 자신이 없기에, 회피하거나 침묵함으로써 고통을 외면하려 한다. 때로는 사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공격성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스스로 성숙할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책 ‘세월호, 다시 쓴 그 날의 기록’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2022년 10월29일, 서울 이태원에 수많은 인파가 모이며 ‘연쇄 깔림’ 사고가 발생했다. 159명이 사망했고, 그중 90%가 30대 이하 청년이었다. 참사 이후 경찰은 ‘군중 유체화 현상으로 일어난 사고’로 종결지으며 “특별법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펼쳤다.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파견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라며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반면에 인파가 몰릴 때까지 방치한 정부나 공직자의 안일한 인식, 기존의 안전 규범에 대한 논의는 더디기만 했다.

‘굳이’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을 지킬 국가와 국가를 지킬 국민의 화합을 위해, 모든 이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누리기 위해, 사회적 불안이 촉발한 갈등을 공동체의 연대로 메우기 위해, 우리는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남긴 물음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답할 수 있다. 굳이 눈이 녹았음에도 기억하기를 작정했다면, 그 흰빛은 우리 마음에 남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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