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길고양이, 도시의 새로운 구성원

2024. 10. 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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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도시 스토리텔러

날씨가 추워지면 길고양이들은 바람과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다닌다. 보일러실, 창고, 자동차 밑 등 월동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거리 생활을 오래 한 고양이나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나 매한가지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연탄창고에 숨어들어온 고양이를 인형처럼 씻기고 빗겨서 정성스럽게 키웠다. 발톱에 할퀴는 따가움보다 그 반짝이는 눈동자와 알록달록한 무늬, 그리고 그 부들부들한 털이 어린 내게는 그리도 신기하고 예뻐 보였다. 1년 정도 지나 이사하던 날, 아빠는 매정하게 내 품에 안긴 고양이를 떼 놓으셨다. 고양이는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후 울면서 몇 달 동안이나 이사 간 동네에 길고양이 '나비'를 찾으러 갔는데, 결국 만나지 못했다.

그 이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오지에서 근무하던 중 밤마다 쓰레기를 뒤지는 길고양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비쩍 말라 굶주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쓰였다. 밥을 주다 보니 고정적으로 오던 한 마리가 집에서 새끼를 낳아 7식구가 되고, 그러다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생김새도 크기도 각양인 고양이들이 다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어르신들은 밥을 주면 고양이가 떼를 몰고 온다며 밥을 못 주게 타박을 하셨다. 고생해서 번 돈을 길고양이 밥 사는 데 쓰냐고 나무라기도 하셨다.

아무리 먹을 것을 주어도 추운 겨울이면 동태처럼 빳빳하게 굳어 얼어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땅에 묻어주고, 새끼까지 낳은 어미 고양이한테 황태를 듬뿍 넣어 미역국도 끓여 먹였다. 지켜보시던 어르신들이 마음이 동하셨는지 며칠씩 집을 비울 때면 어르신들이 나서서 사료를 이곳저곳에 골고루 나눠주셨고, 장에라도 가시면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삶아주기도 하셨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마당에 앉아 나물도 널고 콩도 까면서 고양이들 먹을 물도 새 물로 갈아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 주셨다. '도둑고양이', 쓰레기통 뒤지는 '천덕꾸러기'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르신들도 정을 주시는 것 같았다.

이사를 해야 할 무렵, 내가 먹이던 그 수많은 고양이가 걱정되었다. 얼굴을 알아보고 출퇴근 시간이 되면 현관 앞에서 기다리며 야옹거리던 아이들이다.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려 마을 지인에게 사료는 책임질 테니, 밥만 챙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인은 내가 이사를 나간 후 고양이들이 더 오지 않는다고 했다.

책임지지 못할 동정은 오히려 상처라고 말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수많은 길고양이가 밤마다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것을 그저 방관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다. 가장 외로운 나라 한국, 그래서 가장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그만큼 많이도 버린다. 당국에서는 길고양이가 100만 마리라고 추정은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사실상 없다. 반려동물은 소품이 아니라 동반자이자 가족이다.

캣맘, 캣대디들은 지역사회에서 욕을 먹거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이곳저곳에 사료를 두면 민원이 빗발친다. 집값 떨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누군가의 반려동물이었다가 버려진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관할 지자체에 연락해서 TNR(포획-중성화-방사)을 하는 것이다. TNR은 중성화 수술 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어 더 이상 길고양이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번식은 막더라도 먹고 자는 생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큰 과제이다.

우리나라도 서울 강동구청 옥상에 마련된 길고양이 쉼터를 시작으로 광명시나 천안시에서 길고양이 쉼터를 마련하고 있다. 길고양이 돌봄은 단순한 동물 보호의 차원을 넘어 위생 관리, 개체 수 조절, 생태계의 균형 등 도시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캣맘과 지역주민들과의 갈등 조정 등 사회적 소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그러나, 수많은 길고양이를 모두 수용할 수도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나 활동가들의 지원으로 길고양이들이 인간과 공존을 하고 있다. 길고양이와의 공존도 이제는 도시디자인의 일부로 통합되어야 한다.

미국 LA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고양이 집 건축공모전이나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커뮤니티 캣 프로젝트는 공공 공간에서 고양이 쉼터를 마련해 사회적 관심과 의식을 전환해왔다. 샌안토니오는 길고양이 코디네이터를 고용해서 전문적으로 대응도 한다. 길고양이 돌봄이 단순한 자선활동이 아니라 도시환경의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도 사회의 일원으로 이바지하고자 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많다. 시니어 공공 근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스탄불의 미스틱 공원이나 페루 리마의 케네디 공원처럼 시민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며, 더 나아가 관광객들에게도 지역에 대한 따뜻한 인상을 주는 도시 공간들이 있다. 이스탄불은 '길고양이들을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도시환경의 한 부분'으로 인지하며 그야말로 길고양이와 '공존'한다. 이들은 도시의 골칫거리가 아닌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길고양이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한다. 로마의 'Largo di Torre Argentina'는 유적지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길고양이와의 공존이 도시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광객들에게 훈훈한 경험을 선사함과 동시에 인식 개선도 꾀한다.

길고양이와 유기된 반려동물 돌봄 시설을 공원의 벤치처럼 이제는 도시 인프라의 하나로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한 동물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길고양이도 도시의 활력이 될 수 있다. 답은 화려한 곳에 있지 않다. 공존이다. 그리고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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