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출신이 투자 결정···헤이딜러·잡플래닛 발굴 [스케일업 리포트]

이덕연 기자 2024. 10. 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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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벤처스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 역할 중요
전문가 풀 가동해 역량 검증하고
직접 창업 경험한 심사역이 결정
지금 같은 투자 혹한기, 되레 기회
글로벌 투자기관으로 발돋움 목표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가 22일 서울 성동구 더벤처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 업계에서는 설립한지 1~2년이 되지 않은 초기 창업기업 대상 투자의 난이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직 사업 모델(BM)이 본격 구동하기 전이고 매출도 주요하게 발생하지 않다보니 눈여겨볼 만한 투자 지표가 창업자의 능력·이력, 창업 팀 구성, 창업 아이디어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 기업 100곳에 투자를 하면 1~2곳만 기업공개(IPO) 또는 인수합병(M&A) 단계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석 가리기가 그만큼 어려운 투자 분야인 것이다.

그럼에도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액셀러레이터(AC) 겸 벤처캐피털(VC)인 더벤처스는 국내 투자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왔다. 2014년 설립 이후 20%를 웃도는 투자 수익률을 장기간 기록했고 이 기간 ‘헤이딜러’ 운영사 피알앤디컴퍼니와 ‘잡플래닛’ 운영사 브레인커머스 등에 초기 투자하는 성과를 냈다.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는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더벤처스는 국내 최다 수준인 60건이 넘는 투자를 집행했다”며 “설립 10년 만에 초기 벤처 투자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요 구성원 모두 창업자 출신=더벤처스가 가지는 한 가지 특징은 창업자와 대표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 모두가 창업 경험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더벤처스를 설립한 호창성·문지원 공동 창업자는 2007년 미국에서 K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 ‘비키’를 만들어 2013년 일본의 라쿠텐 그룹에 2억 달러 가치로 매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20년부터 경영과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김 대표 또한 중고 상품 거래 플랫폼 ‘셀잇’을 만들어 카카오에 매각한 창업자 출신이다. 이후에는 번개장터의 최고제품책임자(CPO) 직을 맡아 스타트업 경영·실무에 능하다.

김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일수록 투자 담당자가 스타트업의 생리와 창업자의 고민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벤처스는 주로 사업 아이디어를 본격 검증·실행하는 단계인 시리즈 A라운드 이전의 프리(pre) 시리즈A나 극초기 시드(seed·씨앗) 단계 투자를 집행한다. 시드 투자의 경우 창업자와 창업 팀, 아이디어만 구성된 채 법인 설립은 마치지 않은 경우도 많아 무엇보다도 기업을 이끌어나갈 핵심 인력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김 대표의 지론은 스타트업을 직접 창업·경험해본 사람이어야 투자를 받으러 오는 창업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더벤처스는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과정에서 투자 대상 기업 창업자에 대한 검증·평가를 체계화하는 데 집중해왔다. 더벤처스는 자체적으로 ‘트러스트(trust·신뢰)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투자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자문단의 핵심 역할은 투자할 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더벤처스에 추천하거나 이들 기업 창업자의 업계 평판 등을 검증하는 것이다. 현재 더벤처스의 투자 자문단은 커머스·게임·딥테크 등 각종 산업 내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신뢰할 만한 업계 전문가의 추천이나 검증을 한 차례 거치다보니 유망 기업을 발굴할 확률은 높아지고 투자 실패 가능성은 작아진다.

투자 심사역 대부분이 창업자 출신이다보니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창업자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더벤처스는 투자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게시물을 고정해놓고 과거 투자 제의가 왔으나 더벤처스가 투자하지 않아 수익 실현 기회를 놓친 사례를 공유한다. 대표적인 기업들로는 비바리퍼블리카(토스)와 당근마켓, 자비스앤빌런즈(삼쩜삼)가 명시돼 있다. 김 대표는 “이 리스트를 더벤처스가 투자하지 않은 기업들에게 항상 제공한다"며 “창업자를 위로하는 의미도 있지만 추후 기회가 될 때 더벤처스를 다시 찾아달라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벤처 투자사 될 것"=더벤처스는 지난해 6월 투자 시장 혹한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150억 원 규모로 베트남 전용 투자 펀드를 결성한 적이 있다. 엔데믹 전환 이후 글로벌 고금리로 펀드 출자자(LP) 모집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적 리스크가 큰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펀드를 만든 것이다. 당시 투자 시장이 어려웠음에도 더벤처스가 펀드 결성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질문하자 김 대표는 “장기간 해외 시장에 공들인 결과”라며 “2020년 동남아 투자를 주목적으로 결성한 펀드 수익률이 30%를 넘는 등 이미 성과를 내고 있었다"고 답했다.

더벤처스는 올해 들어서도 약 10건의 투자를 미국에서 진행하는 등 글로벌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창업에 미국이나 유럽·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에 대한 관심도 많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플랫폼 스타트업이 포화 상태에 이른 내수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만큼 광활한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는 유망 스타트업에는 아끼지 않고 투자하겠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김 대표는 “해외 시장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에 투자하고 지원을 하려면 투자 규모를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VC 자격을 획득했고 투자 단계도 시리즈A나 시리즈B(본격 사업 확장을 하는 단계)까지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후 세계적 수준의 벤처 투자사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더벤처스가 투자한 기업들이 인재 채용에 나설 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 대표 사례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비해 우수 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만큼 투자사가 앞장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발상이다. 더벤처스는 그동안 해외 각지에 구축해놓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진출 스타트업에게 기업 대 기업(B2B) 협업 기회도 적극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유망한 초기 창업 팀을 검증·발굴한 뒤 집중 지원해 지금까지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져왔다”며 “이 성장 공식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따라 글로벌 투자사로 발돋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최근 어려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투자사에게는 좋은 조건을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어려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좋은 기업들에 꾸준하게 투자해 성장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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