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칼럼] 韓銀만 시끄러워지고 끝낼 일 아니다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4. 10.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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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생각 있으십니까."

지난 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한 질문이다.

절간같이 조용하다고 해서 '한은사(韓銀寺)'로 불리기도 했던 한은의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신은 이창용 총재가 취임 때부터 밝혔던 포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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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처럼 조용하던 한은
논쟁적 보고서 발표하며
'시끄러운 한은'으로 변신
입시·최저임금·사과 수입 등
해법 찾는 논의 이어가야

"출마 생각 있으십니까."

지난 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한 질문이다. 한은이 올 들어 잇따라 내놓은 민감한 정책 제안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은이 내놓은 보고서의 주제는 지역별 대입 비례선발제, 농산물 수입 확대, 돌봄 인력 최저임금 적용 예외 등 하나같이 논쟁적인 것이었다. 이날 기획재정위 국감에서도 한은이 지난 8월 제안한 '대입 지역별 비례선발'과 관련한 질의가 이어졌다. 마치 교육위원회 국감장 같은 분위기였다.

문제의 보고서는 부모의 경제력이 반영된 거주지역이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좌우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한다.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부담 능력 차이가 대학 진학률 격차로 이어지고, 진학률 격차가 수도권 인구 집중과 주택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급증하는 사교육비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라는 진단도 포함됐다. 지난 3월에는 돌봄 서비스 업종에 한해서 내·외국인 모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간병비 부담을 줄이자고 제안했고, 6월에는 과일·채소의 수입 비중을 높여 농산물 물가를 잡을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절간같이 조용하다고 해서 '한은사(韓銀寺)'로 불리기도 했던 한은의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신은 이창용 총재가 취임 때부터 밝혔던 포부이기도 하다. 이 총재는 지난 6월 74주년 기념사에서도 "한은의 연구 영역을 통화정책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며 저출생·고령화,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 고갈과 노인 빈곤, 교육 문제, 소득·자산 불평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고령화 등 구조 변화가 거시경제를 흔들면 한은 본연의 역할인 물가·금융 안정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고민을 읽을 수 있다.

한은의 시끄러운 연구를 불편해하는 시선도 많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해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농산물 수입 보고서가 나오자 당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검역 절차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데다 수입으로 인해 농가 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노동계는 한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지역별 비례선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통화정책에 간섭하지 않는데 한은은 왜?" "지나친 오지랖"이라는 불평도 쏟아진다. 물가 안정과 통화정책에 더욱 집중하라는 요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제안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관련 부처가 내놓기 어려운 구조개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총재 역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은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쟁적 보고서를 통해 화두를 제시하고 구조개혁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은은 더 시끄러워져도 좋다. 논란과 비난을 피하려 현상 유지를 고수한다면 금사과·금배추 대란은 품목이 바뀔 뿐 매년 반복될 것이고, 저출생은 고착화할 것이다. 입시지옥과 양극화는 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한은이 제시한 해법이 설령 정답이 아니더라도 도발적 제안을 정책·제도 개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는 있다. 이제 다른 부처들이 시끄러워질 차례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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