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원 진료’ 절실한데…약자 배려 않은 ‘의료급여 정률제’ [왜냐면]

한겨레 2024. 10. 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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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외래 본인 부담’ 개편 추진
2만5천원 초과 땐 1천원 이상 내야
고령화 속 수급자들 비용 부담 커져
지난 2일 `가난한 사람들 병원 가지 말라는게 ‘약자복지’?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철회 촉구 기자회견\' 모습. 빈곤사회연대 제공

정성식 |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두 해 전,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드라마 속 주인공 변호사는 단돈 1천원만 수임료로 받고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변호한다. 굳이 1천원을 받은 까닭은 이것이 자선이 아님을 분명히 함으로써 의뢰인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법한 비현실적 서사지만, 실제 의료 분야에서는 ‘1천원짜리 진료’가 존재한다. 그것도 의료급여(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라고 하는 공적 의료체계 내에서 말이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동네 의원에서 1천원만 내고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건강보험 가입자와 같이 비급여 진료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그런데 그 취지가 드라마 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에서 ‘1천원’은 의뢰인이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의 산물이었지만, 의료급여의 경우는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면서 원래 없던 본인부담금을 부과(2007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1천원’이라는 소액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의료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실질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의 외래 본인 부담 정액제를 정률제로 변경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액제는 앞서 말했듯이 진료 건당 일정액만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고, 정률제란 진료비의 일정 비율을 부담하는 방식을 말한다. 복지부가 제시한 비율을 적용하면, 진료비가 2만5천원을 초과할 경우 수급자는 1천원 이상을 부담하게 된다. ‘건강생활유지비’(진료 보조금)를 두 배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의료급여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본인 부담을 늘려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정률제를 도입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급자들의 빠듯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다면 비용 부담 증가가 자칫 필요한 의료 이용을 제한하지 않을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정률제 도입에 따른 본인 부담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보면, 복지부가 흔히 ‘불필요’한 과잉 진료의 대표 사례로 드는 물리치료가 포함된 외래 진료에서 오히려 더 부담 증가분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수가 체계상 이런 진료일수록 건당 진료비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질환 중증도가 높은 환자 즉 치료 난이도가 높아서 총진료비가 많은 경우일수록 비용 부담이 더 많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또 수급자 중에서도 가구 소득이 더 낮고 의료비 부담이 더 큰 이들에게서 비용 부담이 더 많이 증가하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복지부가 말하고 있지 않은 정률제 도입의 실체다. 즉, 정률제는 의료 필요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복지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은 정책 수단인 것이다.

지난 2일 `가난한 사람들 병원 가지 말라는게 ‘약자복지’?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 철회 촉구 기자회견\' 모습. 빈곤사회연대 제공

또한 복지부가 정률제 도입의 근거로 제시한 것들도 타당성이 부족하다. 그동안 물가는 많이 올랐는데 본인부담금은 그대로여서 비용의식이 약화했다고 하는데, 실제 의료비 부담 수준이 낮아졌는지 판단하려면 가처분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 비중의 변화를 확인해야 한다. 한데 복지부는 이런 객관적 지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추측성 주장을 내놓은 셈이다.

또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5년간 의료급여 재정지출의 평균 증가율(7.3%)은 건강보험(7.2%)과 거의 같았다. 이는 증가율을 의료급여 자체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아울러 1인당 진료비가 건강보험보다 많다(3.3배)는 점을 문제 삼는 것도 잘못됐다. 수급자들은 높은 고령화율·만성질환율·장애보유율 등과 같은 집단 특성으로 인해 의료 필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를 통계적으로 반영한 여러 연구에서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데도 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자에게 덧씌워진 케케묵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대어 이런 불합리한 제도 개악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1천원짜리 진료’가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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