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박정희, 2024년 김정은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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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동시에 추진했던 이동원(1926~2006) 외무장관은 1992년 펴낸 자서전 '대통령을 그리며'에서 한-미 간에 있었던 여러 뒷얘기를 소개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수 있다는 제안을 거듭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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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동시에 추진했던 이동원(1926~2006) 외무장관은 1992년 펴낸 자서전 ‘대통령을 그리며’에서 한-미 간에 있었던 여러 뒷얘기를 소개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수 있다는 제안을 거듭 쏟아냈다. 이를 성가시게 여긴 존 에프 케네디 행정부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미국의 입장이 크게 바뀐 것은 갑작스레 숨진 케네디의 후임으로 1963년 11월 린든 존슨 대통령이 등장하면서였다. 미국은 훗날 ‘조작’으로 판명 난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명분 삼아 베트남에 대한 전면 전쟁에 돌입한다.
때는 이동원이 “낙엽조차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싶도록 바쁜 나날의 연속”이라고 회고한 1964년 가을이었다. 윌리엄 번디 미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가 10월1일 방한했다. 그는 이튿날 박정희와 만나 “미국은 월남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며 “존슨 대통령은 미국의 처지를 각하께 꼭 잘 말씀드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언제라도 미국을 도울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명분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끌어내야 하는 정부 생각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원은 미국으로부터 “뽑을 수 있는 실리만큼은 최대한 챙기자”고 ‘독한 마음’을 품었다. 그는 박정희에게 미국이 지금 “머리를 숙이는 것은 다급하기 때문”이라며 “이럴 때 최대한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베트남에 파견되는 한국군이 사용하는 물자·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구입한다는 ‘바이 코리아’ 정책 등 여러 지원책을 끌어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내놓은 북한 특수부대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정보’에 전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 정보의 정확성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하지만, 북한이 냉전 해체 이후 지난 30여년간 추진해온 미국과 ‘관계 정상화’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러시아와의 동맹 강화에 국운을 건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65년 박정희가 했던 생각을 2024년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못 할 리 없다. 북한도 난처해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닦달해 “뽑을 수 있는 실리만큼은 최대한 챙기자”는 독한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위시 리스트’엔 뭐가 담겨 있을까. 30여년 공들인 ‘북방 외교’가 물거품이 됐다. 너무 큰 국가적 재앙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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