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못 쓰는 미국에···아랍 친미 국가들, 이란과 전략적 협력?

선명수 기자 2024. 10. 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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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확전 못 막은 미국, 힘 빠졌나
이란, 중동 주변국 돌며 ‘광폭 외교’
걸프 국가들, 이란과 관계 개선 조짐
이란-사우디 ‘홍해 합동훈련’ 보도도
“걸프국, 미국에 대한 신뢰 잃어”

미국이 이스라엘 통제에 실패하며 중동지역 확전 위기감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이 이란과의 전략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CNN은 이란과 중동지역 패권을 두고 다투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아랍 국가들이 최근 중동지역 내 확전을 피하기 위해 이란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레바논까지 전선을 확대하고 이란과의 정면충돌 가능성도 커졌으나 미국이 좀처럼 손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이스라엘을 겨냥해 보복 공격을 단행한 이란은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예견된 상황에서 걸프국가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과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중동의 히틀러”라 칭했던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최근 걸프만을 순방 중인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과 만나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는 최근 한 달 새 이란과 사우디의 고위급 인사가 세 번째로 회동한 것이다.

사우디가 이란에 홍해 합동 군사훈련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3일 이란 반관영 ISNA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가 합동 훈련을 요청해 왔으며 양측 모두 상대 해군을 자국 항구로 초청했다. 지역 패권을 두고 적대적으로 경쟁했던 두 강대국이 군사 부문 협력을 모색한다면 중동 역학 구도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수니파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은 2016년 국교를 단절했다가 지난해 3월 중국의 중재로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 역시 논의해왔으나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며 중단됐다.

아라그치 장관은 사우디 외에도 요르단에서 압둘라 2세 국왕과 회담한 데 이어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만났고, 카타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등도 연이어 방문했다. 대부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런 ‘광폭 외교’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협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 걸프 국가들, “이스라엘 도우면 응징” 이란 경고에 영공 개방 거부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410111518011

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회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성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날 쿠웨이트의 사바 알사바 왕세자와 회담한 뒤 “우리의 모든 친구들은 그들의 영토와 영공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켜줬다”고 말했다.

앞서 이란이 미국과 가까운 걸프 국가들에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돕는다면 응징하겠다고 은밀하게 경고했고, 이에 걸프 국가들이 이스라엘 전투기의 자국 영공 비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최소 1500㎞ 떨어져 있어 이스라엘군이 전투기로 곧장 이란을 폭격하려면 요르단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을 지나야 한다.

특히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은 이스라엘에 협조해 이란의 보복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자신들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사우디의 석유시설이 이란의 소행으로 보이는 공격을 받았고, 2022년엔 아부다비가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 연구원인 신지아 비앙코는 “걸프지역의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다”며 “걸프만의 군주 국가들은 자신들의 주요 안보 보증인이었던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걸프국의 최우선 순위는 지역적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라며 “그들은 이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이란의 유용한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고 확전을 막는 데 실패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아랍 국가들이 ‘다른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레인 국제전략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하산 알하산은 “걸프 국가들은 당장 헤즈볼라의 힘이 빠지고 지도자가 제거된 것에 불만을 갖진 않지만,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얼마나 무모하며 전략적 목표가 불분명한지를 고려했을 때 이스라엘이 전후 어떻게 나올지 더 광범위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CNN은 걸프 국가들의 이같은 변화가 최근 몇 년간 미국이 중국 견제에 우선순위를 두며 중동 문제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이 발생하기 불과 일주일 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년간 중동은 가장 조용했으며, (미국이) 오늘날 중동 위기에 할애할 시간은 9·11 테러 이후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전쟁이 시작되며 상황이 급변했고, 취임 직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강행하는 등 중동 분쟁이란 ‘수렁’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던 조 바이든 정부는 다시 발이 묶인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번번이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며 휴전을 거부하고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이 실패했으며 미국이 중동에서 사실상 통제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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