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 불평등, 소매점 없는 식품사막서 튄 파편들 [추적+]

최승우 책임연구원, 김정덕 기자 2024. 10. 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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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식료품 소매점 너무 먼 식품사막
리 단위 지자체 식품사막 수두룩
시ㆍ군ㆍ구 절반 새벽배송 안 돼
정부 식품사막 관심 갖고 있지만
더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 필요

'식품사막'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신선한 식료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 너무 멀리 있는 지역을 뜻한다. 사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운 것처럼 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란 의미에서 '사막'이란 단어를 붙였다. 중요한 건 식품사막이 인구소멸을 부채질하고, 취약계층일수록 이런 곳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식품사막' 문제를 공론화해야 하는 이유다.

전국의 행정리 가운데 73.5%는 '식료품 소매점'이 없어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사진|뉴시스]

7249개. 올해 2분기 기준 서울 지역 프랜차이즈 편의점 수(서울 상권분석서비스)다. 서울시에 426개의 동(행정동 기준)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1개 동에 대략 17개의 편의점이 있는 셈이다. 몇걸음만 걸어도 편의점과 같은 식료품점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수 킬로미터(㎞)는 가야 겨우 우유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는 곳들도 숱하다. 바로 '식품사막(Food Desert)' 지역이다. 식품사막이란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뜻한다. 1990년대 영국 학자들이 스코틀랜드 지역의 취약계층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용어다.

당시 이 지역은 인구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도시 중심이 텅 비어버렸다. 인구 이동에 따라 식료품점들도 교외로 이동했는데, 그 과정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이들은 신선식품에 접근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런 지역을 식품사막이라고 명명한 거다.

식품사막이란 개념은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쓰인다. 미국은 도시 기준 1마일(1.6㎞), 시골 기준 10마일(16㎞) 내에 식료품점이 없으면 식품사막으로 본다. 일본은 거주지의 500m 이내에 식료품점이 없는 지역 주민을 '장보기 약자' 혹은 '쇼핑 난민'으로 정의한다.

개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품사막은 단순히 '식료품점이 멀어서 혹은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낮아서 신선식품을 사 먹기 불편한 이들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품사막은 사회적 빈곤이나 사회적 약자의 집중과 고립, 차별 등의 문제와 뒤섞여 있어서다. 다시 말해 '식품사막=사회문제'라는 얘기다.

예컨대 달걀을 사러 버스를 타고 한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는 달걀을 사기 위해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당연히 인구 유입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식품사막이 인구소멸과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만약 그가 취약계층이라면 부익부 빈익빈 문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식품사막 현황은 어떨까. 사실 우리나라에선 식품사막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현황이 없다. 다만 몇몇 통계를 통해 식품사막화를 짐작할 순 있다.

전국 250개 시ㆍ군ㆍ구 중 새벽배송이 되지 않는 지역이 123곳(49.2%)에 달한다.[사진|뉴시스]

우선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국 행정리里가 3만7563개인데, 이 가운데 2만7609곳(73.5%)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었다. 리 단위의 기초지방자체단체에선 식품사막화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을 가야 '식료품 소매점'이 있는 행정리(섬 제외)도 전국에 14곳이었다.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행정리의 비율이 90% 이상인 시ㆍ군 단위 지자체도 6곳이었다.

지난해 12월 한 일간지가 조사해 발표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쿠팡ㆍSSG마트ㆍ컬리ㆍ오아시스)의 새벽배송 서비스 가능 지역 전수 분석 결과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분석에 따르면 행정 지역 기준 전국 250개 시ㆍ군ㆍ구 중 123곳(49.2%)에는 새벽배송 서비스가 아예 불가능했다. 새벽배송 서비스는 전날 밤에 신선식품 위주로 주문을 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물품을 집 앞으로 배송해주는 거다.

중요한 건 이 조사 결과가 나오기 한달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새벽배송 서비스 불가 지역에 사는 소비자의 84.0%가 '새벽배송 서비스가 가능하다면 이용할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의 일부 지역(2.2%)에서도 식품사막 현상이 나타났는데, 대부분 북한산이나 관악산과 같은 자연 녹지 주변과 은평구, 강서구, 구로구 등이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식품사막 문제는 그동안 공론화하지 않았을 뿐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다. 다행스러운 건 정부가 이 문제를 인지했다는 점이다. 올해 7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인구 감소와 교통 여건 취약 등으로 소매점이 사라진 농촌에서 식료품이나 공산품을 구매하기 어려워진 문제를 해소하겠다면서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골자는 농림부가 특장차량이나 기자재를 보조하면 지자체가 민간(농협ㆍ지역 소매점)과 인력문제나 운행 방법 등을 협의해 운영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소매점으로 직접 이동할 수 있도록 셔틀버스를 지원하거나 복지ㆍ문화ㆍ돌봄 등 생활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고려하겠다는 게 농림부의 방침이다.

지역 연구단체들도 식품사막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2022년 충남도의회의 정책연구모임인 '취약계층 건강과 먹거리 복지정책의 발전 방향을 위한 연구모임'은 보고서를 통해 식품사막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충남 지역사회통합돌봄(안)에 먹거리돌봄 포함, '먹거리돌봄 서비스' 운영 제도화, 먹거리 지원의 지속성 보장을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 마을회관에 공유 부엌 설치 지원 제도화, 이동마켓 운영 지원 제도화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덕분에 이듬해인 2023년 '충남 지역사회통합돌봄 지원 조례'가 만들어졌고, 이 조례엔 지자체가 식품사막에 대응하는 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담겼다.

인근에 신선 식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 없는 지역들이 숱하다.[사진|뉴시스]

전북연구원도 지난 9월 '농촌지역 식품사막화의 의미와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북특별자치도의 식품사막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도민의 식품 환경 파악을 위한 '식품사막 지도' 제작ㆍ관리를 통한 정기적인 행정리의 식료품 소매점 현황 파악,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협동조합 식료품점' 운영 지원, 노인을 위한 맞춤형 '식료품 바구니' 정책 도입, 농촌형 식품 물류ㆍ유통시스템 구축, 식품사막화 지수 개발을 통한 지역별 식품 접근성 현황 관리 등이다.

식품사막화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식 마트를 운영해온 지역 농협들도 있다. 경기 포천의 소흘농협(2019년), 전남 고흥군의 거금도농협(2019년), 경남 거제의 하청농협(2021년), 전남 영암군의 영암농협(2022년) 등은 각각 '행복장터' '화목장터' '찾아가는 행복마차' '동네방네 기찬장터'라는 이름의 이동식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운행 시기와 품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판매한다는 건 같다.

이처럼 학자들과 민간은 식품사막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보고 있다. 정부도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농림부의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 추진 계획'처럼 식품사막 문제를 단순한 '생필품과 식료품 구매 어려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사막은 지역 주민의 건강이나 지방의 인구소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부의 좀 더 신중하면서도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최승우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anticp@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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