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AI가 집어삼킨 노벨상…식어가는 관심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인공지능(AI)이 삼켜버렸다.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이용하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기반을 구축한 존 홉필드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화학상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차지했다. 올해 노벨상 과학상은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서울에서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누르면서 시작된 AI 광풍이 세상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있다. 컴퓨터로 사람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思考)를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앨런 튜링의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업의 판도가 바뀌고 반도체 시장이 격동하고 있다. 우리 교육부도 AI에게 학생의 맞춤형 교육까지 맡겨서 교육 분야의 선도 국가로 우뚝 서겠다고 야단법석이다. 당장 내년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새로운 개념의 AI 디지털 교과서(AIDT)가 투입된다.
사람과 일상적인 자연어로 본격적인 대화를 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춘 생성형 인공지능(GPT)의 핵심은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알려진 '기계학습'이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스스로 '학습'을 한다.
인간의 뇌를 닮은 '신경망 '으로 무장한 AI가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2년 전에 등장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미국 오픈AI사의 챗GPT가 바로 그런 인공지능이다.
노벨상도 인공지능의 뜨거운 열풍을 마냥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성과만으로도 인공지능이 '인류의 복지에 크게 기여할 것'이 충분히 검증되고 확인되었다는 것이 스웨덴 한림원의 판단이었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난 반세기 동안 기계학습의 학문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신경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확인하고, 구현하는 일에 공헌해서 'AI의 대부'로 알려진 홉필드와 힌턴에게 물리학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물론 스웨덴 한림원이 '생성형 AI가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킬러 로봇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제프리 힌턴의 우려를 가볍게 거부해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지구 온난화 현상을 분석했던 대기과학자 마나베 슈쿠로, 클라우스 하셀만, 조르주 파리시를 선정했던 2021년만큼이나 파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노벨 화학상은 더욱 파격적이다. 생리작용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의 설계를 가능하게 만든 과학적 성과는 단연코 '노벨상감'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베이커는 생명과학자이고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는 화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 딥마인드의 과학자다.
알파고 대국을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던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허사비스는 약관 48세다. 컴퓨터 게임 회사에 근무하다가 뒤늦게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찰스 국왕으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수여받은 AI 전문가다. 시카고대학에서 이론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점퍼는 39세다.
수상자의 전공과 나이만 파격이 아니다. 화학에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의 화학은 '논리적 이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연금술과 확실하게 구분된다. 모든 결과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만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화학자가 양자화학, 반응 메커니즘, 반응 동역학의 이론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베이커가 개발한 '로제타폴드'와 허사비스·점퍼가 개발한 '알파폴드'는 인공신경망 이론을 이용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전부다. 단백질의 복잡한 3차 구조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미 구조와 기능이 확인된 단백질 6억 종의 빅데이터 중 일부로 학습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AI 소프트웨어가 예측한 구조'이니 과학적 사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과연 현대 화학이 선뜻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자칫 '소프트웨어'가 권위를 앞세워 '신비'를 강조하는 연금술사가 돼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 더욱 뜨거워진 노벨상 혁신
노벨상의 전통이 시작된 이후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물리·화학·생물학이 과학의 중심이었던 시절은 끝났다. 대기과학과 기후학도 중요해졌고 컴퓨터과학은 더욱 중요해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공지능'이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이고 '빅데이터를 이용한 기계학습'이 화학의 새로운 연구 방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직된 노벨상이 현대 과학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생리의학과 물리학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특히 물리학상은 2021년의 대기과학과 올해의 인공지능을 빼고 나면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 업적은 전통적인 물리학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생리의학상도 생명과학과 의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경우를 찾기 어렵다.
화학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동안 화학상은 화합물의 합성·분석·확인과 직접 관련된 전통적인 화학 분야의 업적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1989년의 'RNA의 촉매 성질'에서부터 화학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생리의학상의 단골 주제였던 'DNA · ATP · 리보좀 · 생물고분자 · 세포막 · 단백질 · 진핵전사 · 수용체·유전자'가 화학상을 넘보기 시작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가 1962년 '생리의학상'을 받았던 사실이 오히려 낯설어 보일 정도다.
화학상에는 '준결정·현미경·양자점'과 같은 물리학적 수상 업적도 등장한다. 결국 인공지능 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이변 아닌 이변까지 발생했다. 지난 25년 동안의 화학상 수상 업적 중에서 전통적인 화학 분야의 업적은 10건을 넘지 못하는 형편이다.
물론 현대 화학의 정체성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화합물의 정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는 수준에 머물던 화학이 이제는 광범위한 영역을 지탱하는 '중심과학'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재료과학·환경과학·대기과학·생명과학이 모두 화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벨 화학상의 수상 업적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 것을 오히려 반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 화학위원회'의 구성이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생명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위원의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정치공학적 현실이 화학상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은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 노벨상에 대한 냉정한 관심
올해 노벨상은 우리에게 특별히 유별나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 노벨상이고 문학상은 처음이다. 한강 작가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강렬한 시적(詩的) 산문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다. 역대 121명의 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으로는 18번째이고 아시아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온 나라가 들썩해도 마땅한 경사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작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경기 불황으로 손을 놓고 있던 서점과 인쇄소가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 수상의 열기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오히려 노벨상 소식이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증폭시키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단체까지 등장했다. 한강 작가가 끈질기게 천착(穿鑿)하고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이 어쩔 수 없는 민감한 정치적 현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노벨 문학상은 작가의 '문학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작품에 담겨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확대 해석할 이유는 없다. 한강 작가가 역사학자나 정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죽는데 상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한강 작가의 솔직한 인식을 왜곡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는 문인(文人)을 배출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문학이 갑자기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된 것은 아니다. 노벨 문학상으로 인정받은 한강 작가의 높은 문학성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서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가 고상한 품격을 갖춘 사회로 거듭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노벨 과학상에 대한 우리의 설익은 인식도 정리해야 한다. 우리 과학계가 "노벨상도 못 받았다"는 평가는 온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이 아니라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세계가 놀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 확실한 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어렵게 살던 우리가 이제는 당당하게 선진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세계 최고를 외치고 있는 반도체·자동차·화학·철강·조선 산업의 발전은 그런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성과다.
이제 우리도 노벨 과학상을 받기 위한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가 충분히 잘살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노벨상을 목표로 강조하는 정부 주도의 낯 뜨거운 정책이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인류 복지'에 기여한다는 냉정한 자세로 차분하게 '과학 지식'의 증진을 위해 차분하게 노력하는 연구·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노벨 과학상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줄 것이라는 어설픈 환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노벨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절대 아니다. 단순히 우리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는 기회일 뿐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떼도둑'(카르텔) 발언으로 노벨 과학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던 작년의 분위기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과학자의 수상 가능성에 대한 보도도 사라졌다. 다만 그런 무관심이 과학 자체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으로 증폭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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