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졌던 MS는 어떻게 혁신을 되찾았나(feat. 조직문화)[딥다이브]
한때 위대했지만 쇠퇴에 빠진 기술기업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돈은 아주 잘 벌었지만, 느리고 관료적이고 안주했습니다. 혁신은 사라지고 인재는 떠나고 직원 사기는 바닥이고 주가는 추락했죠. 당장 망할 리는 없었지만 가라앉는 게 뻔히 보였습니다.
어디일까요. 2014년의 마이크로소프트(MS)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죠? 2014년 2월 사티아 나델라 CEO가 새로 부임했고, MS는 다시 혁신의 기업으로 재탄생했고, 지난 10년 동안 주가는 1050% 뛰었습니다. MS의 화려한 부활과 사티아 나델라의 리더십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식상할 수 있는데요. 기업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사례가 없어 꺼내왔습니다. MS의 조직문화 대전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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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등판한 조용한 내부자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을 재편하는 건 호수에서 전함을 돌리려는 것과 같다.’
2014년 1월 블룸버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 기사에서 이런 시니컬한 분석을 전했습니다. 당시 MS는 스티브 발머 CEO가 사임을 공식 발표한 지 5개월이 넘도록 후임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죠. 내로라하는 외부 후보군은 모두 손사래를 쳤고요.
MS는 수년째 위기론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모바일 전환을 놓치면서 회사를 떠받쳐온 윈도우의 위상은 급격히 쪼그라들었죠(소비자 컴퓨팅 기기 운영체제 중 윈도우 점유율 2000년 93%→2012년 19%). 투자자들은 클라우드 컴퓨팅에 집중하는 게 살길이라고 봤지만, 거대 조직의 급격한 방향 전환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주요 인재는 서둘러 탈출했고, 남은 자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발버둥치기 바빴죠.
그리고 이 조용한 새 CEO가 모든 걸 뒤집어엎기 시작합니다.
윈도우 성 깨고 공격 앞으로
이런 공격적인 행보는 과감한 M&A와 투자로 이어집니다. 2016년 링크드인(260억 달러), 2018년 깃허브(75억 달러), 2023년 액티비전 블리자드(687억 달러) 인수를 성사시켰죠. 최고의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하게 나선 건데요. 그 가장 큰 성공 사례로는 오픈AI 지분 투자를 빼놓을 수 없겠죠. 챗GPT 출시 뒤 MS 주가는 70% 가까이 뛰었으니까요.
‘성장 마인드셋’을 외친 이유
여기까지만 보면 대단한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가진 CEO 한 사람이 기업을 구한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리더 한명 바뀐다고 그렇게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죠. 나델라 취임 당시 직원이 10만명이던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나델라는 CEO 취임 첫해를 대부분 직원 의견 듣는 데 썼습니다. 익명으로, 개별로, 포커스 그룹을 통해 직원들 얘기를 듣고 무엇이 조직의 문제인지를 파악했죠.
2015년 7월 나델라는 새로운 회사의 사명(‘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조직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과 함께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에 기반한 조직문화를 실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캐롤 드웨크 심리학 교수가 저서 ‘마인드셋’에서 소개한 심리학 개념이 기업 경영에 접목된 순간인데요.
성장형 사고방식은 한마디로 사람의 능력이 고정된 게 아니고,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단 믿음입니다. 나델라 CEO가 2015년 전체 직원에 보낸 이메일을 인용하자면 이런 거죠.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잠재력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 끝없는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불확실성에 기대고, 위험을 감수하고, 실수할 때 빠르게 움직여야 하며, 미스터리로 가는 길에 실패가 발생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열려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을 깎아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직원을 5개 단계로 나눠 평가하는 상대평가 시스템. 다들 익숙하시죠.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하려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 텐데요. 이런 스택 랭킹은 거대해진 MS 성장엔 독이 됐습니다. 내부 경쟁과 사내정치를 부추기고 협력을 방해했기 때문이죠. 또 최고의 인재로 보이기 위해 직원들이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괜히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곤란하니까요.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는 다들 이미 잘하던 일만 계속하니 혁신이 싹틀 수 없습니다. 나델라는 나중에 자신의 저서 히트 리프레시(Hit Refresh)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혁신은 관료주의로 대체됐습니다. 팀워크는 내부정치로 대체됐습니다. 우리는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델라는 스택 랭킹과 연례 평가 시스템은 물론이고 성과 목표 자체를 폐지합니다. 지속적인 동료 피드백과 관리자의 코칭이 이를 대체했죠. 보너스를 얼마나 줄지 정하는 건 이제 평가시스템이 아닌 관리자 임무가 됐습니다. 결과보단 과정, 성취보단 도전에 높은 가치가 부여됩니다.
MS가 분기마다 실시하는 ‘맥박 체크’라 불리는 간략한 직원 설문조사엔 이런 문항이 포함됩니다. ‘당신은 다른 직원의 프로젝트나 성공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습니까?’ ‘당신은 성장형 사고방식을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나델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퍼뜨리는 데 열정적으로 매달립니다. 직원 대상 강연과 이메일로 거듭 이를 강조했고요. 협업능력이 뛰어난 임원을 주요 보직에 발탁해 메시지를 한층 강화합니다. 일주일짜리 ‘하계 해커톤’ 같은 활동을 통해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고요. 직원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은 넘쳐날 정도로 대폭 늘립니다. 이런 교육에 참여하라고 적극 독려하는 안내 문구는 사옥 곳곳에서-커피컵부터 식당 냅킨홀더까지- 마주칠 수 있게 됐죠.
항상 자신을 1점으로 평가하라
물론 조직원이 모두 이런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닙니다. 나델라는 저서에서 자신에게 ‘다른 임원들이 성장형 사고방식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불평한 임원에 대해 썼죠. 그런 불평이야말로 성장형 사고방식하고는 가장 거리가 먼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150명 고위 임원을 모아 이렇게 쓴소리를 날립니다. “임원이 되면 징징거리는 일은 끝입니다. 이 회사의 리더가 되기 위한 당신의 일은 똥더미에서 장미 꽃잎을 찾는 겁니다.” 제약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걸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목표에 집중시키는 사람. 그게 바로 리더의 임무라고 나델라는 설명합니다.
그렇게 10년. MS는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혁신의 기업으로 재탄생했을까요. 딱 떨어지는 수치로 말할 순 없지만, MS가 다시 최고의 기술 인재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기업이 되었다는 게 아마 그 증거일 겁니다. 매년 ‘미국 최고 직장’ 리스트를 발표하는 글래스도어 순위에서 올해 MS는 18위에 올랐습니다. 빅테크 중엔 엔비디아(2위)보단 낮지만, 구글(26위)과 애플(39위)보단 높죠(참고로 메타, 아마존, 테슬라는 100위권 밖). 둔중한 거인이던 MS는 이제 스타트업처럼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CEO의 성공적인 지난 10년에 대한 찬탄은 워낙 많이 나온 얘기라 더 보태진 않아도 되겠고요. 성장형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마무리로 직장인을 위한 작은 테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조직행동학 전문가인 수잔 애쉬포드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유연함의 힘’에서 인용했는데요. ‘내가 속한 조직은 학습 지향적인(=성장형 사고방식) 조직일까’를 알아보는 문항입니다. 총 여섯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에 ‘그렇다’가 많을수록 그 조직은 성장형 사고방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답 중 그렇다는 몇 개일까요? By.딥다이브
1. 회사가 동료보다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여기는 소수의 스타 직원이 이룬 성취를 추켜세우고 칭송하는가?
2. 직원 채용의 주된 기준이 성장 잠재력이 아니라 지원자의 측정 가능한 인지적 능력인가? 또는 IT기술, 마케팅, 영업, 인적 자원관리, 리더십 등 다른 활동 영역에 재능이 있는지가 채용의 결정적인 기준인가?
3. 회사가 표창장, 특별상여금 등 형태로 개인이나 부서를 포상할 때 노력과 헌신이 아닌 정량적 성과를 주된 선발 기준으로 삼는가?
4. 회사는 직원이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 그 일로 교훈을 얻을 기회를 주는 대신 잘잘못을 따져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가?
5. 직원들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 자신의 프로젝트가 더 성공적으로 보이게 결과를 조작하고, 직무 성과가 돋보이도록 포장하느라 기를 쓰는가?
6. 직원이 한번 실패한 뒤 큰 성과를 달성해도 앞선 실패가 반영된 업무 평가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가? 마치 한번의 실패가 지울 수 없는 낙인이라도 되는 듯 취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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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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