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다리 그 너머의 이야기

2024. 10.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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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위에 호텔이 있다. 지난 7월에 개장한 이 44평 규모의 호텔은 '스카이 스위트'라는 이름답게 천장과 거실이 통유리로 마감돼 있어, 투숙객은 탁 트인 하늘과 한강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전망은 때로 투숙객에게 난처함을 안기기도 한다. 얼마 전, 호텔을 지나던 시민들이 투숙객의 알몸이 보인다는 민원을 제기하며 화제가 됐고, 한바탕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건축 전공자들이 처음으로 구조 역학을 접하는 것은 다리 설계 수업을 통해서다. 다리의 길이와 두께, 그리고 하중의 상호작용을 통해 건축물의 기본적인 물리적 원리를 배우며,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다리의 길이나 처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처음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역학적 원리를 알게 되면, 단순히 다리를 건너는 도구로만 보았던 그 구조물의 복잡함과 그 안에 담긴 기술적 진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다리는 그저 길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진 구조물일 뿐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다리 위에 상점과 카페, 심지어 주택까지 들어서곤 했다. 다리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리 위를 상업 지구로 변모시킨 것이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1345년)와 영국의 펄트니 다리(1769년)는 그 대표적인 예로, 오늘날까지도 다리 위에 상가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다리들은 단순한 통행의 기능을 넘어서, 지역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해 왔다.

다리에는 인간의 손길이 만든 수많은 이야기와 드라마가 깃들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피렌체를 퇴각하며 모든 다리를 파괴하려 했으나, 히틀러의 명령으로 베키오 다리만은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펄트니 다리는 레미제라블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이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처럼, 다리는 때로 도시의 상징이자, 역사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도시의 발전에 있어 다리의 중요성은 도시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케임브리지는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유래됐고, 옥스퍼드는 소들이 강을 건너는 여울을 의미한다. 프랑크푸르트 역시 프랑크족이 강을 건넜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와 역사를 잇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예술가들 역시 다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1480년경, 보티첼리는 '지옥의 심연'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을 묘사하며, 죄 지은 영혼들이 건너는 지옥의 다리를 그렸다.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공포한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를 그렸고, 이는 중세의 종말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담아냈다.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이주한 뒤 랑글르와 다리에서 영감을 받아, 이 다리를 배경으로 무려 8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와 동시대의 화가 뭉크 역시 '절규'와 '불안'에서 사람들을 다리 위에 위치시키며, 그 시대의 불안과 고립감을 표현했다. 뭉크의 '다리 위의 소녀'에서도 다리는 자주 등장하며, 인간의 고독이 아닌 화려함과 밝음으로 연결되는 상징적 장소로 활용됐다.

다리의 길이는 항상 과학자와 공학자들에게 도전의 대상이었다. 1502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해협을 건너는 280미터 길이의 다리를 설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의 공학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다빈치는 기둥 없이도 다리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구조를 스케치로 제안했다. 이 다리는 실제로 건설되지 못했지만, MIT 연구진은 다빈치 사후 500년을 기념해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이 다리를 1/500 스케일로 복원했고, 다빈치의 설계가 그 당시의 다리의 주된 재료인 석재로도 실현 가능한 것임을 입증했다.

다리가 없었다면 베네치아나 로마 같은 고대 도시도, 뉴욕과 서울 같은 메가폴리스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건축 기술의 진보와 함께 다리도 끊임없이 진화해 왔으며,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 예술,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얽혀 있다.

건축을 철학적으로 바라본다면, 벽과 문, 창과 길, 그리고 다리는 분리와 연결의 결과물이다. 벽은 공간을 분리하고, 창은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하며, 문은 그 경계를 넘게 한다. 그리고 다리는 두 경계를 이어주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아이작 뉴턴은 "우리가 벽은 많이 세웠지만, 다리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건축은 결국 아름다운 다리로 이어진다. 이 가을, 나는 내가 만들어야 할 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생각이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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