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기석 이사장, 무릎 꿇는 이사 만류에도 '박민 KBS 사장' 강행

노지민 기자 2024. 10. 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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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반대 여권 이사에 '여권 이사 총사퇴' 방침 직접 전해…재공모 논의까지 했으나 결국 사장 선임 강행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서기석 KBS 이사장. 사진=KBS

서기석 KBS 이사장이 지난해 '방송장악 프레임'이 우려된다는 여권 이사 만류에도 박민 사장 선임 뜻을 굽히지 않고, 여권 내 과반 표가 모이지 않자 재공모까지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법재판관까지 지낸 서기석 이사장이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비상식적 행태를 거듭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기석 이사장은 지난해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의 규칙 위반을 지적받고 있다. 당시 KBS 사장 임명제청 절차에 관한 규칙은 그해 10월4일 사장 후보를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되, 최대 3회 결선투표에도 과반득표자가 없으면 재공모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 이사장은 10월4일 박민·이영풍·최재훈 후보 3인에 대한 첫 투표에서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이사회를 1시간가량 정회했고, 이사들 과반 동의 없이 결선투표를 이틀 뒤 6일로 미뤘다.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는 KBS 이사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기석 이사장은 이사회를 멈춘 1시간 사이 박민 사장을 강하게 반대한 여권 이석래 이사를 설득하려 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래 이사가 외부(문화일보) 출신 사장이 오면 '방송장악 프레임'에 걸린다며 무릎까지 꿇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대화 장소 바깥까지 고성이 흘러나왔다고 전해진다. 과반이 되려면 여권 이사 6명이 모두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이사회를 중단시킨 서기석 이사장은, 이날 밤 이석래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여권 이사들이 총사퇴하기로 했다'고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이사회를 마친 일부 여권 이사들이 '현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명목으로 전원 사퇴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논의에 불참한 이 이사에게도 사퇴 방침을 전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여권 이사들이 재공모까지 논의했던 대목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사회 파행 다음 날(10월5일) 사퇴하기로 했던 여권 이사들 중 김종민 이사만 사퇴서를 낸 가운데, 여권 이사들은 서기석 이사장이 마련한 장소에 모여 총사퇴 대신 '재공모'와 '이사장 사퇴'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시 여권 이사는 “일부 이사들이 재공모에 박민 후보도 넣어주자고 했다”면서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전했다.

▲2023년 10월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서기석 이사장 등 여권 이사들을 향해 KBS 보궐 사장 후보 임명제청 절차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종민 이사의 사퇴서만 처리됐고, 결선투표 대상이었던 최재훈 후보가 사퇴해 박민 후보가 단독 후보로 남았다. 김종민 이사는 서기석 이사장이 결선투표를 연기할 때 여권 이사 중 유일하게 “의견 없다”며 동의하지 않았기에, 그의 사퇴를 둘러싼 의문이 남아 있다. 다만 이사회 일각에선 김 이사가 이전에도 사의를 언급한 적이 있고 박민 후보 반대보다 이사회 상황에 염증을 느껴 사퇴했을 거란 해석도 있다.

일련의 사건은 서기석 이사장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박민 사장 선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데 관여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익명 전제로 취재에 응한 전직 KBS 이사는 “정치적으로 때만 되면 흔들리는 KBS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지난 3년 동안 이사 하면서 큰 죄를 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사회가 정쟁에 치우쳐 정작 수신료 등 핵심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전했다.

당시 야권 이사로 분류된 인사는 뒤늦게 드러난 정황들을 두고 “충격의 연속”이라며 “박민 사장을 임명하기 위해 온갖 비상식적인 논의가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그 경위와 과정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 사장이 연임을 노리는 가운데 KBS 내부에선 서 이사장에게 차기 사장 선임 절차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다. KBS 다수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그간 드러난 서 이사장 의혹 관련해 그를 업무방해 및 강요죄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서 이사장 등 현 여권 이사들은 위법성이 지적된 '2인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거쳐 임명됐다는 점에서 사퇴 요구도 받고 있다. 전현직 야권 이사들은 현 여권 이사 임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과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시작부터 처음까지 박민을 사장으로 만들기 위해 서기석 이사장이 무리하게 이사회를 파행시켰고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들을 계속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이 박민을 내리 꽂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 서기석 이사장은 '거수기' 내지 박민을 사장으로 만들기 위한 '하수인'이었다라는 게 드러났다고 본다”고 했다.

서 이사장은 본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서 이사장의 개인 휴대전화, 그가 소속된 법무법인 동인 등에 연락을 취했지만 22일 현재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서 이사장은 1981년 판사로 임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고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의 '경남고 동문' 인맥, 조선일보 방일영 장학생 출신 이력 등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8월 남영진 전 이사장이 해임된 뒤 KBS 이사장을 맡았고 최근 연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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