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K에 열광하는 지금 … 기회 쏟아질 네트워크 키우자"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정승환 전문기자(fanny@mk.co.kr), 김규식 기자(dorabono@mk.co.kr) 2024. 10. 22. 1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상 네트워크 만든 주역 이경철·유화명 공동대회장
미주한상 리더 이경철 회장
35년전 미국서 식품점 운영
연매출 7조 의료기기社 일궈
"사업 실패는 감기 같은 것"
재일한상 신화 유화명 회장
폐지 주우며 꿈 키운 소년
日 대표 부동산회사 이끌어
"잘되고 싶으면 남에게 잘해야"

◆ 한인비즈니스대회 ◆

22일 개막한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공동대회장을 맡은 유화명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왼쪽)과 이경철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 세계가 한국에 열광하는 지금은 'K만 들어가면 뭘 해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회가 많습니다. 이런 기회를 잡으려면 첫째도 네트워크, 둘째도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22일 개막한 제22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공동대회장을 맡은 이경철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 회장과 유화명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한목소리로 한상 네트워크를 꼽았다.

이들은 한국의 위상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30년 전 타지에서 손수 사업을 일구고 발로 뛰면서 지금의 한상 네트워크를 만든 주역이다.

이 회장과 유 회장은 사업을 성공시키는 핵심 비결이 결국 인적 네트워크라고 입을 모았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상공인들과 사업에 도전하는 재외동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남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89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식품을 수입하는 JK트레이드를 운영했고 1996년부터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정착해 사업을 확장해왔다. 한국 주류를 주로 수입하는 웨일엔터프라이즈를 시작으로 현재 의료기기 무역회사 웨일엔터프라이즈LLC와 목재 가공업체 글로벌우드스틱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미국 내 병원 5000여 곳에 주사기와 정맥 치료백신을 공급하고 있는 웨일엔터프라이즈LLC는 연매출이 지난해 50억달러(약 6조9000억원)를 넘어섰다. 이 회장은 "웨일엔터프라이즈를 경영하면서 쌓은 네트워크 덕분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의료기기를 조달하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2004년부터 한인단체에서 활동하며 네트워크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에는 애틀랜타 한인회 이사장,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 수석부회장 등을 거쳐 지난해 5월 제29대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에는 좋은 물건을 만들고 훌륭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미국에 진출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한인 네트워크만 잘 활용해도 기회가 정말 많다. 그 기회들을 잘 연결해주는 것이 먼저 나간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30여 년 전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나에게 '일본인(Japanese)이냐, 중국인(Chinese)이냐'고 물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한국인(Korean)?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국은 선진국, 경제대국이 됐다"면서 "한국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는 지금이 해외 진출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때로는 실패를 겪을 수도 있지만 사업 실패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걸리고 나면 면역을 얻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 말고 꾸준히 정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재일동포 2세인 유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일본에 정착한 아버지와 교토·도쿄·아타미·오사카·나고야 등으로 옮겨 다니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비가 없어 중학교 졸업에 그쳤던 그는 "열다섯 살 때 채소 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고, 열일곱 살 때는 3만엔을 들고 도쿄에 갔다가 돈이 바닥나 아타미에서 칩거하며 밤에는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낮에는 중국 요리점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후 폐지와 고철을 수거하는 일을 8년 정도 하면서 트럭 70대까지 사업 규모를 키웠지만 사기를 당한 뒤 이런 일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 회장이 설립한 겐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부동산 회사로서 사회공헌사업을 포함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벼랑 끝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기회를 잡았다고 소개했다. 유 회장은 "일본 곳곳을 떠돌면서 너무 고독했지만 재일한국청년상공회의소 같은 여러 한인단체 활동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도우며 힘을 얻었다"며 "내가 잘되고 싶으면 남들한테도 잘하라는 말을 후배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4개월 전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그는 "주변에서 10명 중 2~3명만 도와줘도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라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정점에 선 순간에도 밑바닥이었던 자신을 잊어선 안 된다. 항상 겸손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송성훈 산업부장 / 정승환 기자 / 김규식 기자 / 이용익 기자 / 송경은 기자 / 성승훈 기자 / 박윤균 기자 / 이종화 기자 / 이효석 기자 / 한창호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