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74세에도 욕망의 연습벌레 “정 안되겠다 싶을 때 그만둬야죠”[종합]

황혜진 2024. 10. 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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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용필, 뉴스엔 유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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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글 황혜진 기자/사진 유용주 기자]

76세에도 음악에 대한 욕망과 연습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데뷔 56주년을 맞이한 가왕 조용필이 대망의 정규 20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필은 10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다수 취재진과 만나는 형태의 공식 간담회를 개최한 건 2018년 4월 11일 같은 장소에서 연 데뷔 50주년 기념 간담회 '차 한 잔 할까요?'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간담회는 그가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해 마련한 자리다. 조용필은 22일 오후 6시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정규 20집 '20'을 발매한다. 앞서 2022년 11월 두 개의 신곡 '찰나', '세렝게티처럼'을 담은 싱글 'Road to 20 - Prelude 1'(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원), 지난해 4월 26일 신곡 'Feeling Of You'(필링 오브 유), '라'를 수록한 싱글 'Road to 20 - Prelude 2'(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투)를 내며 정규 20집 컴백을 위한 예열을 마쳤다.

'20'은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시작으로 '찰나', 'Timing'(타이밍), '세렝게티처럼', '왜', 'Feeling Of You'(필링 오브 유), '라'까지 7곡으로 채워졌다. 조용필은 이번 신보에서 록은 물론 일렉트로니카, 발라드 등 다채로운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재입증했다.

앨범 전면에 내세운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호쾌한 전기 기타, 청량감 넘치는 절창, 고해상도의 사운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용필만의 모던 록이다. 조용필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뭉클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조용필은 뭉근한 노랫말을 통해 우리에게 이제는 자신을 믿어 보라고, 조금 늦어도 좋다고 토닥인다. 작사에 참여한 임서현은에 따르면 이 곡의 콘셉트는 halfway(중간쯤, 불완전하게, 꽤 괜찮은)다. 자신을 믿는다면 남들보다 조금 늦어도 가끔 어긋난 길을 가도 된다는 것.

신곡 뮤직비디오에는 관록의 배우 박근형을 필두로 연기파 배우 변요한과 전미도, 이솜이 출연했다. 조용필 특유의 활기 넘치는 목소리에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열연이 더해졌다. 제작에는 영상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이 참여했다.

1968년 가요계 데뷔한 조용필은 지난 56년간 정규 앨범만 19개, 비정규 앨범 포함해 50여 개의 음반을 발매했다. LP로 데뷔, 카세트테이프와 CD를 거쳐 디지털 음원까지 휩쓴 국내 유일무이 가수다.

1980년 발표한 정규 1집은 대한민국 최초 100만 장 이상 판매된 단일 앨범으로 기록됐다. 이 앨범을 통해 조용필은 단숨에 198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국민 가수로 등극했다. 2013년 발매된 19집 '헬로(Hello)'는 전 국민을 신선한 충격에 빠트리며 조용필만의 불변의 젊은 음악적 감성을 느끼게 했다. 데뷔 56주년을 맞이한 조용필은 장기간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며 대중적 사랑을 받는 유일무이한 뮤지션이라고 상찬할 만하다.

정규 20집 '20' 실물 CD는 11월 1일 출시된다. 조용필은 신보 발매 후 11월 23일과 24일, 11월 30일과 12월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DOME(케이스포 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 '조용필&위대한탄생 Concert - 서울'을 개최한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다.

Q 새 앨범 '20' 발매를 앞둔 소감.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제 나이에 신곡을 발표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열심히, 열심히 해 봤다. (신곡) 어떻습니까. 별로?" 제가 20집까지 했다. 아마 앨범으로는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또 새로운 곡이 있으면, 좋은 곡을 만들면 또 (싱글로 발매)할 예정이다.

Q 정규 앨범은 11년 만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 또 그렇게 된다. 나이 먹으면. 제가 91년도에 TV 방송에 출연 안 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콘서트만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방송을 안 하니까 내 봤자더라. 신곡, 앨범을 내 봤자 홍보가 안 돼서. 그렇다고 큰 기자회견을 할 수도 없었고. 근데 2013년 19집은 운이 좋았다. 'Bounce'(바운스) 반응이 그렇게 좋을 거라 몰랐다. 음악을 하는 분들, 평론가 분들에게 미리 들려줬는데 'Hello'와 'Bounce'가 반반 갈렸다. 기타를 치고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아 피아노로 바꿨다. 그러고 나서 발표했는데 역시 'Hello'보다 'Bounce'가 더 많이 알려졌더라.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콘서트는 계속했다. 음반은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동안 저도 많이 만들어 봤지만 제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근데 만들어 놓고 다시 악보를 보면 '에라~' 싶고 마음에 안 든다.(웃음) 그런 곡이 수백 곡 될 것 같다.

Q 2024년 10월로 발매 시기를 잡은 이유는. 이번 앨범이 (가수 조용필의) 마지막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더라.

▲ 이달 초까지 녹음을 했다. 10월 첫 주까지. 한 곡이 더 있는데 그 곡을 완성했다. 그 곡은 이 앨범에 수록을 못 했다. 성향이 이번 앨범 수록곡들과 좀 다르다. 그래서 다음에 내기로 결정했다. (싱글) 더 낼 거다. 앨범으로는 마지막이다. 모르겠다. 앞은 어떻게 될지. 약간 미쳐 가지고 21집까지 낼 수도 있다.

Q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그대로인가.

▲ 아무래도 좀 다르다. 비교해 보면. 아쉬운 건 이 곡(신보 타이틀곡)은 반 키 더 올려서 부르면 어땠을까 싶다.

Q 응원을 담은 타이틀곡을 만든 배경은.

▲ 제가 올봄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우승자가 챔피언 세리머니를 했다. 그리고 같이 싸웠던 2등을 한 선수는 그냥 끝나자마자 카메라를 전혀 안 보고 우승자한테 (축하를) 해 주더라. 그래서 전 (카메라 밖의) 패자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물론 속상하고 실망했겠지만 당시의 나 같으면 다음은 이길 거야, 지금은 그래도 돼, 한 번 더 이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작사하는 분과 만나 이런 곡을 만들고 싶다고 들려줬다. 어떤 사람이든 이런 마음이 지금 자기의 마음일 수 있다는, 그런 글을 직접적으로, 둘러 둘러 얘기하는 거 말고 직선적으로 얘기하는 가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그쪽(패배팀) 팬이었다.(웃음)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할 순 없지 않나. 그래서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마 이 중(기자간담회)에서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Q 평생 진 적이 없지 않나.

▲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곡을 완성했는데 사실 미완성이다. 만족해 내놓은 곡은 한 곡도 없다. 지금 들어 보면 한심하다 싶다. 겉치레가 아니라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그러다 끝난다. 주위에서는 이 정도면 됐다고 자꾸 그러는데 난 속으로 자꾸 화가 나고 그렇다.

Q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그래도 돼'를 과거의 조용필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언제의 조용필에게 들려주고 싶나.

▲ 어떤 연도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다. 1996년도 제가 기자회견을 했을 때다. '꿈'이 나오고 난 후였다. 그 노래 끝나고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방송을 너무 많이 했다. 80년도부터 96년 기자회견까지 아마 저만큼 TV에 많이 나온 사람이 드물 거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난 가수인데 방송인으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프로그램 나가서 게임을 하고 그러면 그게 무슨 가수인가 싶고 TV에 안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가 문제였다. 1년에 한두 곡씩 내고 콘서트를 하면 객석이 많이 찼다. 2~3년 지나니까 점점 빈 객석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90년도 말에는 2층은 (사람이) 없었다. 서울은 안 그랬는데 지방 공연은 그랬다. 1층에는 있는데 2층엔 없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히트곡이 몇 곡인데 이렇게 안 올까 싶을 수도 있지만 그때 제 자신에 대해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Q 신보 수록곡 '왜' 녹음 비화가 궁금하다.

▲ 제가 많은 곡을 내면서 이 곡만큼 연습을 많이 한 적이 없다. 몇 개월을 연습했다. 대신 가사가 다 달랐다. (여러 버전 중) 가장 잘 맞는 가사를 선택해 이 곡으로 녹음한 거다. 창법이라든지 가성이라든지 노래 전달력이라든지 그런 것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가장 많이 연습했던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가 77년도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르고 나서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가지고 몇 년 쉬었을 때 '한오백년'이라는 곡이 TV에서 나왔다. 그 곡에 완전히 꽂혔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노래가 있나 싶어 제가 구입한 '한오백년' LP판만 12개다. 나름대로 제 스타일로 만들어 보자 싶어서 건반 악기로 할 수 있게끔 연습을 했다. 그때 우리 민요에 대해 너무 감동을 받아 판소리도 해 보자고 하면서 나름 연습을 했다. 그래 봐야 '흥부전'이었는데 연습을 했다.

Q 일렉트로니카 트랙 '라'에는 군무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 전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해야 해서. 전 못한다.(웃음) 이 곡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다. 사실 저도 그렇긴 하다. 자꾸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하고 싶으니까 했겠죠. 이 곡은 콘서트에 잘 맞는 곡이 될 것 같다. 특히 계속 반복되는 '라라라라라라라'는. 이건 자의 반 타의 반 할 수 있다. 이 곡은 해야 된다고 했다. '내가 이거 어떻게 하니?'라고 했지만 듣고 또 듣다가 하게 됐다.

Q 영원한 청춘, 영원한 청년, 영원한 오빠라는 수식이 붙는다. 지금 연세에도 실제로 음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 같다.

▲ 전 가수로서 우선 노래하는 걸 좋아해야 하고, 음악이 좋아야 하고, 장르도 다양하게 들어야 하고, 계속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지금도 굉장히 창법이라든지 음성을 내는 연습 방법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이 연구한다. 저 가수는 저렇게 했는데 난 될까? 싶으면 바로 또 시험해 본다. 사실 그게 또 재밌다. 아마 지금까지 하게 된 저의 동기인 것 같다. 사실 음악은 우리의 표현 아닌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게 대중한테 가면 대중의 표현이라고 본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가사를 써서 이쪽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결국 노래는 대중의 것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옛날에는 그걸 참 모르고 했다. 음악을 좋아하니까 하는 것이지 싶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고 조금씩 조금씩 디테일하게 연구하는 편이다. 음악은 배워야 한다.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Q 사랑보다 외적인 것들을 많이 주제로 삼는 것 같다.

▲ 사랑 노래도 많이 불렀다. 제가 '꿈'을 작곡하고 작사를 할 때의 마음으로 사회에 대해 쓴다. 비행기에서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청년들에 대한 사설을 보고 그것에 대한 가사를 썼다. 요즘도 제가 쓰지는 않지만 작사가들한테 그렇게 요청을 한다.

Q 후배 가수들의 공연에 축하 꽃다발을 보내기도 하던데.

▲ 후배 가수들의 공연에는 제가 꽃다발을 주면 용기가 될 것 같아서 보내주곤 한다.

Q 이번 앨범에 응원가가 많던데 지금 시대에 응원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무엇인지. 요즘 세대들이 어떻게 듣길 바라는지.

▲ 우리가 옛날 노래를 들어 보면 그런 곡들이 있다. 저도 그런 곡들을 듣고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힘든 과정이 있어야 하나의 것을 완성할 수 있지 않나. 지금 힘들다고 계속 힘들어하면 결국 못한다. 힘들어도 일단 끝을 내 봐야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나중에는 더 발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힘들어도 해야 된다. 저의 평상시 마음이다.

Q 과거 앨범부터 혁신적 사운드를 많이 시도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어떤 부분에서 시도를 했나.

▲ 전 곡을 만들 때 사운드를 굉장히 신경 쓴다. 곡을 떠받치는 사운드, 음색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면 제가 시작을 한다. '단발머리' 때 세운상가를 갔다. 직접 전자 드럼을 쳐서 뿅뿅뿅 사운드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사운드를 많이 신경 썼다. 아마 그룹 출신이라 그런 것 같다.

Q 믹싱 마스터링할 때 얼마나 엔지니어들을 괴롭혔나.

▲ 미국에서 믹싱을 하고 있는데 16~17번 정도 왔다 갔다 한다. 사실 지겨워한다. 그 사람들도 다른 일이 있을 거 아닌가. 이거 내리고, 올리고 코러스 이쪽으로 좀 해 달라고 한다. 그 사람도 전문가인데. 싫어하겠지만. 그 사람이 한국까지 왔다. 스튜디오 와서 차도 마시고 했다. 그렇게 짓궂게 했다.

Q 창법 변화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 솔직히 옛날 조용필은 아니다. 나름대로 현재 내 상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더라. 거기에 맞게끔 해야지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끊임없이 연구한다. 어떤 노래는 그대로 흉내 내고 싶은 곡들도 굉장히 많다. 전 그런 창법이 안 되니까. 이만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사람 흉내를 한 번 내고 싶어서 그 곡을 듣고 나름 연습도 많이 해 본다. 요즘 유튜브 통해서 보면 좋은 가수들이 굉장히 많다.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소리가 또 다르다. 아무래도 우리보다 목이 커서 그런지 녹음한 걸 들어 보면 좀 다른 면이 있다. 배울 건 배워야 한다.

Q 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나가기도 했는데.

▲ 우리나라는 엄청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고, K-드라마와 K-팝 등 우리나라의 것들이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게 알고 보니까 90년대 말부터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간 거더라. 전 갑자기 BTS가 된 건 줄 알았는데 그전부터 우리나라 샤이니라든지 그게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굉장히 많이 외국에 어필이 됐더라. 제가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총 4번 나갔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K-팝이 인기가 많다. 저도 좀 늦게 태어났으면,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Q 100세 시대인데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 전 그런(100세까지) 계획은 아직 없다. 조금 더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건 연습을 통해서 좀 더 스트롱한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 지금은 감기가 든 상태다. 그래서 목이 좀 쉰 상태인데 진짜 목소리는 이렇지 않다.

Q 위대한 탄생 멤버가 조용필에 대해 음악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 그렇나.

▲ 맞다. 팬데믹 시절에 다들 집에만 있었다. 그때는 저도 집-스튜디오를 했다. 팬데믹 끝나고도 집-스튜디오밖에 없다. 듣고 나서 적는 그게 일이다. 그거밖에 모른다. 그래서 제가 (음악 외에는) 무식한 편이다. (지난 시간은) 도전이었다. 해 보고 싶은 욕망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다 이루지 못하고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끝인사.

▲ 감사하다. 오늘 두서없이 말을 정말 많이 한 것 같다. 제 앨범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신 것 같아 오늘 전 좀 놀랐고,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앨범으로는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 계속하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겠다. 그때까지 잘 부탁드리겠다. 감사하다.

뉴스엔 황혜진 blossom@ / 유용주 y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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