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벌 보러 가지 않을래~♬ [전국 프리즘]

최상원 기자 2024. 10. 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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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을 뜨기 한달쯤 전 벌통을 2단으로 쌓으면, 꿀벌은 봄꽃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해서 2층 벌집틀에 꿀을 채운다. 벌이 꿀을 가득 채우기를 기다리며, 벌통 내부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최상원 선임기자

최상원 | 전국팀 선임기자

평온하다면 살기 좋다는 것이다. 먹이가 풍부하고, 공간이 적절하며, 침입자도 없다는 뜻이다. 벌통에서 벌집틀(소비)을 꺼내서 살펴보면, 육각형 빈 구멍(소방)에 부지런히 알을 낳는 여왕벌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시끄럽다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왕벌이 죽었거나, 너무 비좁거나, 말벌이나 다른 벌통에 일벌이 침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수천마리의 격렬한 날갯짓이 모여 낡은 선풍기처럼 붕붕 소리를 낸다.

지난봄부터 꿀벌을 키운다. 지난 3월6일치 전국 프리즘 ‘내 곁의 기후위기’에서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올해 조그맣게라도 꿀벌을 키워볼까 싶다. 벌꿀이 탐나서가 아니다. 한마리의 꿀벌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다”라고 썼고, 곧바로 실천했다. 물론 지난해부터 평생교육원 ‘도시양봉’ 과정을 수강하고, 양봉 관련 책도 읽으며 나름대로 차근차근 준비한 터였다.

몇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주말농장을 일구고 있다. 벌통 3개를 분양받아서 밭 가장자리에 놓았다. 벌에 쏘이는 것을 막는 그물망 모자인 면포, 벌을 진정시키려고 쑥 연기를 내뿜는 훈연기 등 기본 장비도 갖췄다. 주말마다 꿀벌 상태를 확인(내검)하고 기록했다.

4월에는 꿀 뜰 준비를 했다. 먼저 벌통을 2층으로 쌓는다. 위에 올리는 벌통은 바닥이 뚫려 있다. 여왕벌을 1층에 가두는 격왕판을 1층과 2층 사이에 설치한다. 격왕판에는 길고 가는 홈이 있어서, 몸집이 작은 일벌은 1층과 2층을 오갈 수 있지만, 몸집이 큰 여왕벌은 2층에 올라갈 수 없다. 일벌들은 봄꽃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해서 벌집틀의 빈 구멍을 채운다. 1층 벌집틀에는 여왕벌이 알을 낳기 때문에, 일벌들은 2층에 꿀을 저장한다.

5월에는 채밀기를 사서 꿀을 떴다. 채밀기는 꿀로 가득 찬 벌집틀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원심력으로 벌집틀 구멍에서 꿀을 뽑아내는 기계다. 5월 한달 동안 두번 꿀을 떴다. 일반적으로 벌통 1개에서 꿀 10㎏ 정도를 뜰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벌통 3개에서 꿀 20㎏ 정도만 떴다. 양가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꿀을 나눠 줬다. 믿을 수 있는 천연꿀이라고 다들 좋아했다.

6월에는 벌통 나누기(분봉)를 해서 벌통 수를 늘렸다. 2층으로 되어 있던 벌통을 다시 1층으로 만들고, 세력이 좋은 벌통을 한번 더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애초 3개이던 벌통이 모두 10개로 늘어났다. 여왕벌이 없는 통에서는 일벌들이 여왕벌을 만들어낸다. 정말 신기한 과정이다. 이제 관리만 잘하면 내년에는 벌통 10개에서 꿀을 뜰 수 있다.

하지만 기대는 곧 허물어졌다. 여름이 되자 장수말벌·등검은말벌 등 꿀벌을 잡아먹는 말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장수말벌은 덩치가 꿀벌보다 10배 이상 크다. 강한 턱에 날카로운 이빨도 갖고 있다. 말벌은 벌통 근처에 와서 꿀벌을 물고 간다. 아예 벌통 안으로 들어가서 사냥할 때도 있다. 꿀벌 수천마리가 불과 몇시간 만에 몰살당한다. 양봉 농가는 여름이면 매미채를 들고 온종일 말벌을 잡는다. 하지만 나는 주말에만 잠시 갈 뿐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여름이 오죽 길고 더웠는가. 그 어느 해보다 말벌이 기승을 부렸다. 주말마다 땡볕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전멸해서 텅 빈 벌통을 치웠다. 10월 들어서는 벌통이 달랑 1개 남았다. 10통 가운데 9통을 말벌에게 먹이로 바친 셈이다. 이제 남은 1통으로 내년을 기약하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남은 1통도 불안불안하다. 과연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뚜껑을 열고 꿀벌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윤형주 가수의 노래 ‘두개의 작은 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저 벌은 나의 벌, 저 벌은 너의 벌”이라고 가사를 살짝 바꿔서. 아내도 언제부턴가 꿀벌을 살필 때마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적재 가수의 노래 ‘별 보러 가자’를 “벌 보러 가자”라고. 내년에도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꿀벌을 키우고 싶다. 꼭.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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