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OTT 삼매경에 잊은 것 [김용석의 언어탐방]
김용석 | 철학자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는 아마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외래어 가운데 가장 긴 단어일지 모른다. 독일어에서 넘어온 ‘이데올로기’보다도, 두 단어가 합쳐진 ‘소프트웨어’보다도 길다. 20세기 말 새로운 밀레니엄을 전망하며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명명하기도 했는데, 다양한 매체가 ‘즐길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요즘은 세기를 대표하는 말이 엔터테인먼트임을 실감하게 된다.
엔터테인먼트는 동사 ‘엔터테인’(entertain)의 명사형이다. 이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는 일이 오늘날 ‘지배적인’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엔터테인은 ‘서로’(inter)와 ‘붙잡다’(tenere)라는 뜻의 라틴어에 뿌리를 둔 프랑스어(entretenir)에서 유래한다. 곧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대 초기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한 영어 엔터테인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화제(話題) 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사람을 위무하거나 대접한다는 의미를 지녀왔다. 나아가 환대의 의미를 각별히 지녔다. 예로부터 환대의 기본 조건은 세가지인데, 음식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며 특히 손님이 머무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곧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엔터테인은 본질적으로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즐겁게 해주는 일을 가리키는 ‘사회적 개념’이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쓰인다. 그런데 품사가 바뀌면서 말의 뜻이 바뀌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바쁘다(busy)라는 뜻의 형용사가 명사가 되면 총체적 의미의 사업(business)이 된다. 곧 경제적 개념이 된다. 동사 엔터테인도 명사 엔터테인먼트가 되면 총체적 의미의 오락이 된다. 곧 ‘문화적 개념’이 된다.
“인간이 하는 행동들은, 모두 일일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의 개념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철학자 파스칼의 말은 일리 있다. 파스칼이 사용한 단어 디베르티스망은 심심풀이 또는 오락의 뜻으로 의미상 오늘날 영어의 엔터테인먼트에 상응한다.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은 광활하다. 그 목록을 나열하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를 보면, 스토리텔링, 음악, 춤, 연기, 게임, 공연이 콘텐츠를 창출하는 기본 형식이며 이로부터 매우 다양한 문화 영역으로 가지치기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가장 보편적인 형식으로 남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세세히 살펴보아야 엔터테인먼트의 밝고 어두운 측면들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 분야에서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즐기는 정도는 매체에 따라 차이가 많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보기를 원하지 ‘읽기’를 기꺼이 원하지 않는다. 읽기는 노고가 들기 때문이다. 영상문화와 전자 매체 시대에 독서가 위기를 맞는 이유다.
엔터테인먼트가 관객의 관심을 끌고 즐거움을 주는 활동의 한 형태라면, 관객으로서 사람들이 실제로 폭력적인 광경을 즐겨왔다는 사실에 섬뜩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 대결은 시합이자 공연의 성격을 지녔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그것을 엄청 즐겼다. 각종 격투기는 엔터테인먼트의 한 부분이었고 지금도 스포츠 게임의 방식으로 남아 있다.
엔터테인먼트를 표현 형식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지만, 재미, 놀이, 구경이라는 인간 욕구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공개 처형이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참수형, 집단 교수형뿐만 아니라 마녀로 몰린 여인의 화형에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점잖은 학자들은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구경거리가 적어, 곧 엔터테인먼트가 빈약해서 그랬다고 해석하는데, 이건 너무 순진하다. 사람들은 어떤 엔터테인먼트 형식이든 공개적으로 제공되면 마다하지 않는다. 무섭고 추악한 것도 즐길 수 있다고 광장의 분위기가 ‘유도하면’ 욕망의 수레바퀴에 윤활유를 붓는다.
이는 오늘날 무한 확장할 것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경로, 광장, 플랫폼은 매혹적으로 편재하며, 즐기고자 하는 욕구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연스레 유도된다. 엔터테인먼트로 풍요해진 삶에서 사람들은 문화 활동에 바쁘다.
그런데 문화 활동에 바쁘면 사회관계는 어떻게 될까. 소홀하고 소원해진다. 바로 여기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단어의 역설이 발생한다. 엔터테인먼트의 문화적 의미가 상승하면 엔터테인의 사회적 의미는 하강한다. 한때는 문화 행위가 사회관계를 좋은 쪽으로 매개한다고 여겼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람들의 관계는 돈독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각자 문화산업이 생산해내는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즐기기에 바쁘다 보면, 달리 말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기 바쁘다 보면, 인간관계에 신경 쓸 겨를은 적어진다.
이 간단한 현상을 사회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간과하기 쉽다. 아마도 문화 활동이란 말이 주는 긍정적 품위 때문에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이유 없는 폭력을 비롯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이 증가하는 데에는 각 개인의 과도한 문화 활동이 무시 못 할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오락 활성화 사회’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관계는 소외된다.
오락 활동을 인간 이해의 열쇠로 보았던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시적 명언을 남긴 파스칼이지만, 이런 비판에는 그 특유의 ‘고상한 잔혹함’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사태를 의식하면 생각하기 시작한다. 단어의 의미도 의식을 자극하는 데에 미력이나마 소용된다. 엔터테인먼트가 풍요를 넘어 과잉으로 가는 문화적 상황일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사 엔터테인이 지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파스칼의 말에 현실감을 더하면 ‘인간의 불행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리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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