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에 내린 비가 KIA의 강우콜드 패배도 막아주고, 하루 순연으로 한 수 더 고민할 시간도 벌어줬다
남정훈 2024. 10. 22. 15:48
상황이 묘하게 됐다. 22일 재개될 예정이었던 2024 KBO리그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1차전 서스펜디드 경기와 2차전이 그라운드 사정과 비 예보로 인해 순연됐다. KIA로선 하늘이 또 한 번 한 수를 더 벌어준 셈이 됐다.
정규시즌 1위 KIA와 정규시즌 2위로 LG와의 플레이오프를 3승1패로 뚫고 올라온 삼성의 KS는 1차전부터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광주를 적신 비와 이를 둘러싼 경기 관련 처리를 두고 팬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21일 오후 6시30분 열릴 예정이었던 1차전은 오후부터 굵어진 빗줄기에 66분이 지연된 끝에 7시36분에 플레이볼이 선언됐다. 66분 지연되는 과정에서 방수포를 세 네 번이나 덮었다 걷었다하면서 경기 시작을 기다린 것이다. KBO 입장에서는 31년 만에 성사된 전통의 라이벌 간의 한국시리즈 1차전, 매진되어 관중석을 꽉 채운 양팀 팬들의 열기를 위해서라도 속행을 선택했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린 끝에 열린 1차전은 명품 투수전으로 치러졌다. 지난 8월24일 NC전에서 맷 데이비슨의 타구를 맞고 턱관절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던 KIA의 제임스 네일은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한 뒤 엄청난 회복력을 통해 58일 만에 다시, 그것도 가장 큰 무대인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등판을 통해 복귀전을 치렀다. 우타자 기준 몸에 맞을 공처럼 오다가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급격히 꺾여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스위퍼 앞에 삼성 타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이날 네일이 잡아낸 탈삼진 6개는 모두 스위퍼로 잡아낸 것이었다.
스위퍼만 좋았겠나. 또 다른 주무기인 투심 패스트볼은 엄청난 공끝 움직임을 보이며 삼성 타자들의 방망이를 교란시켰다. 정타를 제대로 맞추기도 힘들었다. 5회까지 네일은 3피안타 1볼넷만 허용하며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
네일에 맞서는 삼성의 자존심, 토종 에이스 원태인도 다승왕다운 면모를 드러내며 물러서지 않았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비롯해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 실전 감각이 떨어진 KIA 타선을 철저히 봉쇄했다. 의도가 없는 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원태인의 이날 투구에는 볼배합마다 의미가 있었고, 볼 끝은 변화가 무쌍했다. 위기관리 능력도 돋보였다. 2회 2사에서 김선빈에게 홈런성 타구를 맞았으나 이 타구는 펜스 상단을 맞고 튀어나와 3루타가 됐다. 2사 3루에 몰린 원태인은 최원준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실점 위기를 벗어났다. 4회에는 김도영에게 볼넷을 주고, 김선빈과 10구 대결 끝에 또 볼넷을 허용해 자초한 2사 1, 2루 위기에서 최원준의 중전 안타성 타구를 직접 걷어낸 뒤 1루에 토스해 타자를 잡아내며 스스로 위기에 벗어나기도 했다.
이런 명품 투수전에 균열이 간 것은 6회였다. 삼성의 선두타자 김헌곤이 네일의 스위퍼가 한 가운데 몰린 것을 놓치지 않고 힘껏 밀어쳤고, 파울이 될 것처럼 보였던 타구는 파울 라인 안쪽에서 우측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포가 됐다. 갑작스런 피홈런에 흔들린 네일은 디아즈를 볼넷으로 내보냈고, KIA 벤치는 네일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네일에 이어 올라온 장현식도 강민호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무사 1,2루 상황에 김영웅이 타석에 섰다.
초구가 볼로 선언된 이후 거세지던 빗줄기를 지켜보던 심판진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45분여를 기다린 끝에 역대 한국시리즈는 물론 포스트시즌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5회가 지났음에도 강우콜드 게임이 아닌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것은 삼성의 득점이 6회초에 나왔기 때문에 KIA에게도 6회말 공격이 주어져야만 강우콜드를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의 공격이 1~2점을 추가하거나 혹은 무득점에 그쳐 6회초가 끝나고, 5회까지 66구만을 던져 6회에도 등판이 가능했던 원태인이 6회에도 몰라와 무실점을 틀어막은 뒤에 강우콜드가 선언됐다면? KIA로선 삼성의 고민인 불펜진을 공략해볼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1패를 먹고 시리즈를 시작할 수 있었다. KIA에겐 6회초에 거세진 빗줄기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KIA가 지고 있음에도 웃는 얼굴로 마무리됐던 21일 1차전은 22일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그라운드 사정과 비 예보로 인해 또 한번 순연됐다. 22일 서스펜디드 경기 재개를 앞두고 이범호 감독은 “좌타자인 김영웅을 상대로 구위가 좋은 신진급 좌완 투수들을 붙일지, 이닝을 길게 끌고갈 수 있는 베테랑 우완투수를 올릴지 아직 결정 못했다. 볼카운트가 1B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최지민이나 곽도규를 올렸다가 자칫 볼넷을 내주면 무사 만루까지 몰리게 된다. 그렇다고 우완투수를 올리자니 우완에게 강한 김영웅의 한 방이 무서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을 경기 전까지 고민하게 했던 이 문제를 비가 고민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이 감독은 22일 일정 우천 순연 소식에 “유불리를 떠나 그라운드와 날씨 사정으로 인해 순연된 걸 어쩌겠는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변화된 상황맞추면 된다. 코칭스태프와 논의 잘해서 내일 경기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23일 재개될 1차전 서스펜디드 경기에서 김영웅을 상대할 KIA 투수는 누가 될까. 23일 경기는 순연될 일은 거의 없다. 23일 예보 상으로는 광주의 하늘은 맑을 것이기에.
광주=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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