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이진숙님, 바람직하지도 않고 위법이랍니다

박강수 기자 2024. 10. 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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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의 미디어 잔혹사 <7> ‘2인 방통위’가 그릴 파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바람직하진 않지만 위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홍일과 이진숙 두 방송통신위원장은 각각 6월21일, 8월14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같은 대사를 반복했습니다. ‘2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의결은 적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2008년 방통위가 출범한 이래 이 질문은 성립한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8월부터 정국의 열쇳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상임위원 2인 만으로 방통위를 끌고 갈 생각을 윤석열 대통령 이전까진 누구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가 내놓은 판결문은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재판부는 ‘2인 방통위 의결’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위법하기도 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앞서 집행정지 가처분 재판에서 비슷한 지적이 나온 적은 있지만, 본안 사건에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축구에 빗대자면, 그간 ‘비디오 판독(VAR)’에서 영 승률이 좋지 않던 정부가 전반전(본안 1심)도 내준 셈입니다.

아직 후반전(상급심)이 남아 있고, 줄지은 소송이 수십 건이라 미래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 판결의 의미가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이어질 재판 대부분이 같은 쟁점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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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본인의 탄핵안을 처리하기 전 자진 사퇴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2일 오전 퇴임식을 마친 뒤 정부과천청사를 떠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건의 재구성

이 재판은 문화방송(MBC)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피디수첩’에 중징계를 내렸고, 이것을 방통위가 확정하였는데, 여기에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징계도 무효’라는 것이 문화방송의 주장이었습니다.

문제의 방송은 지난 2022년 3월8일 방영된 피디수첩 ‘대선 D-1, 결정하셨습니까?’ 회차입니다. 대선 후보들을 검증하면서 피디수첩 제작진은 이틀 전 공개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뉴스타파 녹취록) 일부를 삽입했습니다. 이 녹취록은 윤석열 당시 후보의 검사 시절 수사 무마 의혹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선 직전, 유력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한 보도였지요.

2022년 3월8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한 장면.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고 1년6개월여 뒤인 지난해 9월 초, 갑작스럽게 ‘뉴스타파 녹취록’을 둘러싼 ‘허위 인터뷰’ 논란이 불거집니다. 녹취록 장본인인 김만배와 신학림 사이 금전 거래가 있었고, 뉴스타파가 최초 보도에서 일부 발언을 생략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실은 이를 ‘대선 공작’으로 규정했고,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9월5일 방심위는 피디수첩을 포함해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한 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긴급안건으로 상정했고, 10∼11월 심의를 거쳐 이들 대부분에 가장 중한 징계인 과징금을 의결합니다. 피디수첩 과징금 결정의 경우, 올해 1월9일 방통위 의결을 거쳐 확정됩니다. 김홍일 위원장, 이상인 부위원장으로 구성된 ‘2인 방통위’ 시절입니다. 문화방송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2월23일입니다.

이 어지러운 사건에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 논란 정수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부터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의혹’까지요. 그러나 이런 복잡한 맥락은 적어도 이번 판결 대상은 아닙니다. 상술했듯, 논란의 급소는 ‘2인 방통위 의결’이었습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8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텔레그램에 기반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인 성범죄 영상물 제작 및 유포 사건 관련 전체회의에 앞서 시계를 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절차적 흠결

방통위법에 따르면 회의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을 때 위원장이 소집”(13조1항)하고, 의결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13조2항)으로 이루어집니다. 방통위 정원은 5명입니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위법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방통위 재적위원이 2명 뿐이라고 해도 회의를 소집할 수 있고, 과반 의결(전원일치)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조문에 비춰봤을 때 어긋나지 않는다는 해석을 전제합니다.

법원은 이런 해석이 법령에 대한 오독이며, 당초 기관의 설립 목적을 몰각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논증의 줄기를 발췌·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이를 위해 위원 구성에는 정치적 다양성(대통령 추천 2명, 국회 추천 3명)이 반영되어 있다. 방통위가 특정 정파에 장악되지 않고, 다양한 견해가 합리적 토론을 거쳐 의사를 도출할 때라야 방송의 자유, 공공성, 독립성 등 방통위법의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제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원리는 다수결이다. 합의를 이룰 수 없을 때는, 소수의 참여를 보장하고 합리적 토론을 전제하는 한에서 다수의 결정(다수결)을 따르도록 한다. 그런데 다수결 원리의 전제조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최소 3인 이상의 구성원이 필요하다. 2인 만으로는 전원일치 의결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지명 2인 만으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실질적 토론을 위한 구성원 수가 보장되지 않았고, 이해관계가 다른 구성원의 토론 참여 가능성도 배제되었다. 이는 소수파를 원천 봉쇄한 채 다수파 만으로 단독처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울행정법원 2024년 10월18일 2024구합56245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를 앞둔 지난 8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와 노란봉투법 본회의 상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법원은 회의 소집 규정인 “2인 이상의 위원이 요구할 때 위원장이 소집한다”는 구절도 위원 2명과 위원장을 각각 따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하여, 이 역시 3인 구성원을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에서 ‘최소 3인 구성원’이란 만국의 필수 전제 요건으로, 독일의 행정절차법(90조 1항),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 회의 개의 요건 등에도 명시되어 있다고 덧붙입니다.

무엇보다, “형식적 자구 해석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법률이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이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침을 부기해 놓았습니다. 명문화된 규범이 없다고 해서 법령을 저 좋을 대로 해석하고 전용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리하여 현 ‘2인 방통위 의결’에는 합의제 기관의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는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입니다.

지난 1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가 7년 만에 조합원 총회 및 결의대회를 열었다. 한국방송본부는 오는 23일 “2인 방통위에 의해 ‘불법으로 임명’된 이사진의 사장 선임을 저지하겠다”며 하루짜리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방송본부 제공

다음 라운드는?

앞서 설명해 드렸듯, 방심위는 피디수첩 외에도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한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한국방송(KBS) ‘뉴스9’, 와이티엔(YTN) ‘뉴스가 있는 저녁’,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 등에 도합 과징금 1억4천만원을 부과했습니다. 이 모든 제재에 대한 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방심위, 그리고 지난 22대 국회의원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쏟아낸 법정제재 가운데 30건이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는 대부분 국민의힘과 보수 성향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서 접수한 민원에서 비롯했고, 가처분 재판에서는 30건 모두 방송사가 이겼습니다. 남은 것은 본안 재판입니다.

당장 임박한 판결은 문화방송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제재 건이 될 듯 합니다. 선고 기일은 다음달 28일입니다. 이어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논란’을 보도했다가 제재 당한 ‘뉴스데스크’가 12월10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이티엔 최대주주 변경 승인(2월7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및 한국방송 이사 추천 의결(7월31일)까지, 빠짐없이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이 모든 재판의 상대는 방통위이고 핵심 쟁점은 ‘2인 의결의 위법 여부’입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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