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명예혁명’ 시도했지만… 성급한 권력투쟁이 ‘大事’ 그르쳐[허민의 정치카페]

허민 기자 2024. 10. 22. 10: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21일 회동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세운 전략은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요구안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좋고, 아니더라도 대통령권력과 싸운 대안권력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등 여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보면 한 대표는 이날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즉 대외활동 중단·인적 쇄신·의혹 규명 절차 협조에 대한 수용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선거가 어려워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회동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허민의 정치카페 - 윤-한 회동 막전 막후
韓, 여권 주도권 꿈꾸며 세세한 요구안 내밀어… ‘특검법 못 막을까 걱정’ 협박성 발언도
尹은 담담하게 반론 제시하며 권력누수 방어… 결과적 빈손 회동으로 與 분열 위기 커져

윤석열 대통령과의 21일 회동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세운 전략은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요구안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좋고, 아니더라도 대통령권력과 싸운 대안권력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은 ‘주도권 유지’ 전략으로 대응했다. 여권 2인자인 당 대표의 대국민 여론전에 말릴 경우 1인자인 대통령이 돌이킬 수 없는 권력 누수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대표의 명예혁명은 실패했다.

◇대화의 복기

대통령실 등 여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보면 한 대표는 이날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즉 대외활동 중단·인적 쇄신·의혹 규명 절차 협조에 대한 수용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특별감찰관 임명과 여야의정협의체 조속한 출범 필요성도 밝혔다. 한 대표는 특히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김 여사 특검법’ 통과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과 여당 인사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담담하게 대응했다. 첫째, 대외활동 중단과 관련해서는 “김 여사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고 이미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둘째,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조목조목 알려주면 그 내용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 셋째, 여사 의혹 규명 문제는 “검찰 수사를 먼저 지켜보자.” 명태균 관련 의혹은 “대통령을 겨냥한 건데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이런저런 해명을 하는 게 어색하지 않으냐.”

두 사람은 야당의 탄핵 공세 및 헌정 유린 행태에 공동 대응하고 4대 개혁 추진에도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만나기 전엔 회동 사실과 의제 등이 대국민 여론몰이 성격으로 사전 공개된 것에 대해 상당히 언짢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이날 회동에서 한 대표는 세세하게 요구했고 윤 대통령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관전평이다.

대통령실 고위 인사 A 씨는 “내용과 흐름을 보면 성공적인 회담인데 왜 밖에는 ‘결렬된 회담’이다, ‘빈손 회담’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알려졌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여권 인사 B 씨는 “한 대표가 외려 실패한 회담이 돼야 대통령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고 보는 건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막전 막후

윤-한 회동은 사실 재·보선에 대한 걱정으로 성사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싱가포르·라오스 등 동남아 3국을 순방하면서도 해외 현지에서 정진석 비서실장과 윤-한 회동과 관련해 두 차례나 통화를 했다.

첫 번째 통화는 7일 필리핀 마닐라에 있을 때. 정 실장은 윤 대통령에게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한 대표와의 면담 필요성을 건의했고,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 당 대표가 선거 때문에 바쁠 테니 투표일인 16일 이후로 추진하라”며 이를 수용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선거가 어려워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회동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통화는 10일 저녁 라오스에 체류 중일 때. 윤 대통령은 재·보선 현황을 궁금해하면서 정 실장에게 한 대표와의 면담을 차질 없이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부산 금정과 같은 집권당 텃밭에서 패할 경우 여권의 동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에 윤-한 회동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대 요구를 내걸고 이미 열흘 가까이 대국민 선전전을 펴온 상태였다. 한 대표가 회동에 임한 일차적 목적은 윤과 한, 둘 사이의 갑을 관계 역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의 국정 운영 정상화 요구는 윤 대통령에게 자신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라는 촉구이자, 김건희 여사의 ‘아웃’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와 통했다. 즉 윤석열-한동훈의 권력투쟁이자 한동훈-김건희의 인정투쟁이었다. 한 대표의 궁극적 목적은 대통령의 완전 승복을 받아내 정국 주도권을 쥐는 것에 있었다. 그러려면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은 필연적이며 여사 관련 의혹이 그 매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 대통령의 긍정적 화답을 끌어낸다면 여권 내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고, 실패해도 대통령권력과 싸운 대안권력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과거로부터 배우기

여권 투 톱의 성공적인 회동 사례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의 독대 회동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기 직전인 그해 8월 21일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극비리에 만났다. 이-박 회동의 최대 성과는 둘의 갈등이 여권 분열로 치닫는 것을 막고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도록 한 데 있었다.

회담의 특징은 ①‘이명박 정부의 성공’(박근혜)과 ‘정권 재창출 노력’(이명박)의 ‘주고받기’였다. 여당 실권자 박 전 대표가 먼저 국정 협력을 약속했고, 이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로 화답했다. ②2인자는 1인자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 인적 쇄신을 거론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항마 발탁’이라는 의혹을 받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을 존중했고 권력투쟁으로 비칠 여지를 스스로 차단했다. ③회동은 극비로 진행됐다. 홍상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조차 회동 성사 직전까지 ‘낌새만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여권의 1, 2인자가 어떻게 만나기로 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도, 대국민 여론전도 없었다.

그 결과, 회동의 의미와 흥미는 극대화됐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온전한 임기 완료를 위해 협력했고, 이 대통령은 공정한 대선판을 보장했다. 박근혜는 2년 4개월 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 정치 고수 두 사람의 금도와 타협과 건설적 차별화가 만들어낸 3.53%포인트 차 승리였다.

윤-한 회동은 한 대표의 사전 공개와 대국민 여론전으로 이미 실패를 잉태했다. 한 대표는 사전에 독대 요청설 및 여사 관련 의제들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회담의 성공 기준점을 높였다. 그 어떤 결과도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내용은 있을 수 없게 됐다. 중앙 정치무대 활동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와 참모들이 만들어낸 아마추어리즘의 전범이었다.

◇실패한 명예혁명

한 대표의 ‘김건희 아웃’과 정국 주도권 잡기를 위한 명예혁명은 일단 실패했다. 성급한 권력투쟁으로 대사(大事)를 그르쳤다. 윤 대통령의 실점도 크다. 무엇보다 여권의 분열 위기감이 커졌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명예혁명’, 즉 Glorious Revolution은 1688년 잉글랜드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 의회가 국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을 옹립. ‘유혈사태’를 피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음.

‘이명박-박근혜 회동’은 2010년 8월 21일 둘의 독대 회동.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 노력’의 ‘주고받기’를 통해 친이-친박 계파 갈등 극복과 당 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

■ 세줄 요약

대화의 복기 :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여사 대외활동 중단·인적 쇄신·의혹 규명 협조 등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대통령도 담담하게 화답. 韓은 여차하면 ‘김 여사 특검법을 못 막을까 걱정된다’ 취지의 ‘협박성’ 발언도.

막전 막후 : 윤-한 회동은 10·16 재·보선에서 패할 경우 여권의 동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에서 대통령이 결단. 반면 한 대표는 회동 전부터 대국민 선전전을 펴오면서 여권 내 주도권 잡기를 위한 권력투쟁을 벌인 것.

실패한 명예혁명 : 한 대표의 ‘김건희 아웃’과 정국 주도권 잡기를 위한 ‘명예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 성급하고 어설픈 권력투쟁으로 대사를 그르쳐. 여권의 분열 위기감이 커졌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실점도 큼.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