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1-0 리드 잡았는데…왜 KIA가 웃나, 심술궂은 가을비가 KS 판을 바꿀 기세다
[OSEN=광주, 이상학 기자] 심술궂은 가을비가 한국시리즈의 판도마저 바꿔놓을 듯하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사상 첫 서스펜디드 게임이 성립되면서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선취점을 내며 리드를 잡은 쪽은 삼성인데 KIA가 얻는 이득이 훨씬 커 보인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서스펜디드를 받아들이드는 삼성과 KIA에는 큰 온도 차가 있다.
지난 2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1차전이 6회초가 진행되던 오후 9시24분 우천 중단됐다. 경기 내내 내린 비가 점점 굵어지면서 심판진이 양 팀 선수들을 철수시켰다. 45분을 기다렸지만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오후 10시9분 심판진이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22일 예정된 KS 2차전에 앞서 오후 4시부터 1차전 6회초 무사 1,2루, 삼성 공격으로 경기가 재개된다. 9회 종료시 동점이 되면 연장전을 정상적으로 치른다. 2차전은 1차전 경기 종료 시점으로부터 1시간이 지난 뒤 시작된다. 단, 1차전이 오후 5시30분 이전에 종료되면 2차전은 예정대로 오후 6시30분 시작된다.
KBO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서스펜디드 게임은 사상 최초다. 정규시즌에도 역대 11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귀한 상황이다. 서스펜디드 게임은 동점인 상황에서 원정팀이 이닝 초 공격에서 리드하는 득점을 냈을 때 홈팀의 공격이 시작하지 못했거나 해당 이닝 말 공격 때 동점 또는 역전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단되면 공격과 수비 횟수 불균형으로 선언된다.
이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KIA 제임스 네일과 삼성 원태인, 양 팀 선발투수들이 5회까지 나란히 66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 행진을 펼쳤지만 6회초 삼성 공격 때 ‘0’의 균형이 깨졌다.
삼성 선두타자 김헌곤이 네일의 5구째 바깥쪽 낮게 들어온 시속 134km 스위퍼를 밀어쳐 우측 폴 안에 들어오는 솔로 홈런으로 장식했다. 실투가 아니었는데 김헌곤이 기가 막히게 공략, 삼성에 리드를 안기는 선취점을 만들어냈다.
계속된 공격에서 네일은 르윈 디아즈에게 볼넷을 내준 뒤 장현식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장현식은 강민호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1,2루 위기가 이어졌다. 여기서 장현식이 다음 타자 김영웅에게도 초구 볼을 던지며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 중단됐다. 야구는 흐름과 분위기 싸움인데 삼성의 상승 흐름이 허무하게 끊겼다.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뒤 인터뷰실을 찾은 양 팀 감독들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시즌 중에도 잘 안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다.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선발투수를 쓰고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걱정됐다. 원태인이 좋은 투구를 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내일 원태인을 쓰긴 어렵다. 우리가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라 불펜 필승조를 다 투입해서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5이닝 2피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KIA 강타선을 봉쇄했다. 5회까지 투구수도 66개밖에 되지 않은 효율적인 피칭. 7회까지 충분히 던질 수 있는 페이스였지만 서스펜디드 게임이 돼 원태인은 결국 5이닝으로 등판을 마치게 됐다. 삼성으로선 약점인 불펜을 6회부터 일찍 써야 하는 상황이다.
원태인을 소모한 것이 가장 아쉽지만 경기 흐름 면에서 끊긴 것도 아쉽다. 박 감독도 "우리가 흐름을 가져온 상황에서 경기가 끊겼다"고 아쉬워하며 "시즌 때도 말했지만 비가 오면 경기를 안 들어가는 게 좋다. 선수들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경기력이 나오기 어렵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다. 오늘도 경기에 안 들어갔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22일이든 23일이든 사실상 서스펜디드 포함 더블헤더를 치러야 하는 것도 불펜이 약한 삼성에 너무 큰 부담이다. 박 감독도 "거의 더블헤더에 가까운 경기를 해야 한다. 선수들은 한 경기 하고 쉬었다 다시 뛰는 것 자체가 힘들다. 시즌 때보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 (이런 상황이 발생해) 솔직히 선수들한테 미안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반면 이범호 KIA 감독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삼성의 원태인 카드가 일찍 소모된 것과 별개로 KIA 선수들이 얻을 경기 감각적인 부분이나 심리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3주간의 실전 공백으로 인해 야수들의 감각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날 6회초까지 사실상 한 경기를 뛰면서 게임 감각 문제가 해소됐다. 아울러 선수들의 긴장감도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KIA는 1회 1루수 서건창의 포구 실책, 3회 박찬호의 송구 실책으로 수비가 흔들렸다. 이 감독은 “경기 들어가기 전 차분하게 하자고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KS 1차전이다 보니 선수들이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약간 흥분한 상태이기도 했다. 우리로선 오늘 경기로 실전 감각이 생겼다. 내일 (서스펜디드 1차전도) 2차전을 하는 기분으로, 조금 더 편안한 상태에서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모자랐던 부분을 잘 준비하겠다. 내일 좋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 경기를 강행한 것에 대해서도 이 감독은 “그런 건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니다. KBO와 심판들이 결정하시는 부분이다. 경기에 들어간 부분은 따라야 한다. 중간에 끊긴 게 우리한테 어떻게 보면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로선 한 경기 경험한 것이 되기 때문에 내일 4시에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22일에도 광주 지역에는 비 예보가 있다. 1차전 서스펜디드 게임과 2차전이 23일로 하루 더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비로 인한 변수가 계속되는 가운데 만약 KIA가 1차전을 역전승으로 이긴다면 삼성이 입을 데미지가 어마어마하다. 심술궂은 가을비가 어쩌면 KS 판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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