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강의 기적

김민 기자 2024. 10.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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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 반면 경기도교육청은 죽상이다.

지난해 성교육에 유해하다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00여 권의 책을 경기지역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에게 따라붙은 블랙리스트 꼬리표를 단순히 개인적 서사로만 소비해선 안 된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지려면 문화예술계에 대한 자율성 침해를 확실히 끊어내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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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취재팀 기자.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 반면 경기도교육청은 죽상이다. 지난해 성교육에 유해하다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00여 권의 책을 경기지역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한강의 수난사는 이뿐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축전을 거절했다는 일화까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불과 한 달 전 대전에서도 지자체가 지역 영화제의 특정 상영작을 배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떠오른다. 지난달 대전시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해 대전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계획됐던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해당 작품은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로, 성소수자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홀몸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내용을 폭 넓게 담고 있다.

대전시의 입장은 간단했다. 국민신문고 등에서 '동성애 소재가 들어가는 영화를 양성평등주간에 상영할 수 있느냐'는 민원이 접수돼 주최사에 콘텐츠 변경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주최사인 대전여성연합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시에서 지원한 1350만 원의 보조금을 전액 반환한 뒤 시민 모금으로 행사를 꾸렸다. 예년엔 인기 상영작도 관람객 40명 안팎을 모으기 힘들었으나 올해는 두 배 이상 늘었다. 68석이 마련된 극장 내부는 간이의자까지 추가 배치됐고, 일부 관람객은 이마저도 모자라 계단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한강 작가에게 따라붙은 블랙리스트 꼬리표를 단순히 개인적 서사로만 소비해선 안 된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지려면 문화예술계에 대한 자율성 침해를 확실히 끊어내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이미랑 감독은 영화제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과 만나 "예전에는 영화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더라도 수용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그런데 이번 일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오해의 층위가 앞뒤 맥락 없고 섬세하지 않다. 무지가 혐오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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