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전쟁 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손효주 정치부 기자 2024. 10. 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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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5일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던 경의선 도로를 폭파하는 장면. 휴전선 10m 코앞에서 폭파가 진행되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수위가 확 올라갔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손효주 정치부 기자
“진짜 전쟁 나는 거냐.”

국방부 출입 기자로 일하며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을 꼽으라면 단연 이 질문이다. 북한이 최근 휴전선 10m 코앞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하고, 헌법에 “대한민국은 적대국”이라고 명시하며 남북관계 완전 부정 조치에 나서면서는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생 김여정 등 북한 수뇌부는 당장 어떤 명분이든 만든 뒤 쳐들어와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라도 할 듯 연일 대남 협박을 쏟아내며 전쟁 공포를 끌어올리는 중이다.

안보 불안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이 단골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자면 “전쟁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중요 군사 지표들부터가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연합사령부는 북한의 전쟁 준비 움직임을 보여주는 ‘징후 목록’을 체크하는데, 북한의 연이은 공포 분위기 조성에도 이 목록 중 체크된 항목이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한다. 징후 목록에는 병력 집결 동향, 방사포 등의 실제 발사를 위한 진지 이동 여부, 후방 전투기 등 항공기의 전방 전개, 전차 등을 운용하는 기갑 부대 이동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북한군 총참모부가 국경선 일대 8개 포병여단에 대해 완전 사격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고 13일 보도했지만 ‘작전 예비 지시’일 뿐 실제 사격 준비 명령도 아니어서 전쟁 준비 징후로 평가되지 않는다.

북한이 전쟁 대비가 돼 있지 않은 점도 전쟁 가능성을 낮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8월 이후 최근까지 1만3000개 이상 컨테이너 분량의 포탄과 미사일 등을 러시아에 실어 날랐다. 탄약, 미사일 등 상대를 직접 타격하는 공격무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임에도 2차 대전 이후 최대 소모전을 치르는 러시아를 위해 대량으로 내어준 것. 북한이 어느 때보다 전쟁 대비에 취약한 상태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에 전쟁을 일으킬 의지 자체가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18일 제시됐다. 북한 역사상 최대 규모인 1만2000명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키로 하고 1500명을 보낸 장면이 포착된 것. 1만2000명은 특수부대 최정예 요원이다. 한반도에서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할 경우 핵심 시설 침투와 후방 교란 등의 주요 작전을 수행할 이들을 러시아에 내준 건 당분간 전쟁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의선과 동해선 폭파도 군사적으로는 ‘전쟁 의지 폭파’나 다름없다. 이 도로들은 남북 협력을 상징하던 ‘혈맥’이었다. 그런데 군사적으로 보면 이는 북한이 다시 남침할 경우 전차와 병력을 이동할 ‘평양-개성-서울’ 축선의 주요 기동로다. 이 도로를 스스로 폭파한 것을 비롯해 북한이 올 초부터 휴전선 곳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뢰 매설, 방벽 설치 등의 ‘요새화’ 조치는 북한이 그만큼 수세에 몰려 있다는 뜻이 된다. 북한군의 대규모 파병으로 일부 병력 공백이 생긴 틈에 한미동맹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다는 내부 불안이 북한 기동로는 물론 남한 기동로까지 막는 ‘고립식 요새화’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언제까지나 ‘당장’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현재 전쟁 가능성이 작다고 해서 미래에도 가능성 낮은 상황이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김정은의 대규모 파병 결정은 ‘미래 전쟁의 승산’을 잡기 위해 현재 한반도에서의 전쟁 수행 능력을 담보한 도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파병 결정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큰 그림이자 미래 전쟁을 통해 적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과감한 베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파병 이후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북-러는 혈맹관계로 격상된다. 북한은 파병 대가로 첨단 기술을 얻어 핵과 핵을 미국 본토까지 실어 나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최종 완성한다. 북한은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고 안정되는 대로 북-러 조약에 따라 유사시 자동 개입할 러시아 대군을 등에 업고 남침을 감행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군의 참전은 당연해 보이지만 이미 북한이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완성한 이상 미군은 개입을 주저한다. 선대의 유훈인 통일까지 삭제하고 남북은 더는 동족이 아니라며 ‘연막작전’을 펼치던 북한은 러시아를 뒷배로 적화통일을 시도한다. 이런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지만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른다.

“전쟁이 나느냐”는 질문에 현재까지는 자신 있게 “안 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전쟁이 안 날 것이라고 안심하다가 후대는 전쟁 공포에 일상적으로 시달려야만 할 수 있다. 북한이 말 폭탄으로 조성한 인위적인 긴장 외에 실제 전쟁 가능성이 낮은 현재는 미래의 전쟁 가능성을 낮출 최적기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핵-ICBM 완성을 위한 ‘파병 도박’이 성공하기 전에 한미 모두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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