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 양식에 관한 물음을 탐구하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일상의 질서 위협한다는 이유로
심미적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세상의 적’이 되어 버린 대상들
불안한 날들 속 고요한 균형 포착
주변자들의 가치 재고·공생 모색
◆햇빛이라는 이름의 개
햇빛은 작가가 동물보호단체에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소개받은 동물들 중 하나다.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도사견이라는 도구적 정체성을 지니고 태어난 그는 인간에 의해 여타의 역할을 규정당한 수많은 개 중에서도 유독 거대한 몸집 탓에 공포와 기피의 대상으로 여겨져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대상이다. 이지양이 햇빛의 사진을 촬영한 것은 경기 파주에 소재한 카라 더봄센터의 작은 공간에서다. 햇빛은 한때 도사견이었고, 육견협회의 시위에 동원되었다가 도로변에 버려진 11마리의 유기견 중 하나였으며, 이제는 ‘움직이는 빛’(2024)이라는 명제의 삼면화 위에 선 세 가지 주체로서 거듭난다. 정면의 카메라를 향하여 짖는 햇빛의 형상은 일순간 자신의 윤곽을 뒤흔들며 진동한다. 마치 그 소리로 하여금 표피의 무엇을 벗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새 부리에 쪼인 상처를 품은 과실에 붙인 작품명 ‘M?lum’(말룸, 2024)은 라틴어로 사과를 뜻하는 동시에 악, 손해, 손실, 벌, 고통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면 속 사과는 올해 초 제주의 과수원에서 일어난 조류 집단 폐사 사건을 암시하는 소재다. 농장주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살포된 농약에 수많은 직박구리와 동박새가 중독되어 죽음에 이른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한편 밤중 야외 조명 위에 몰려든 러브버그들을 포착한 또 다른 화면에는 ‘손님 Ⅰ’(2024)이라는 다정한 이름이 주어진다. 여름철마다 등장하는 러브버그는 해충으로 분류되지 않는 종이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심미적 불쾌감을 느끼도록 한다는 이유로 주요한 민원의 대상으로서 부상했다. 밤하늘의 달처럼 묘사된 야간 조명 위에 앉은 덧없는 생명들의 그림자가 직박구리가 베어 물고 간 독사과의 둥근 형상과 중첩된다.
야생동물이 도시 곳곳에 남긴 배설물의 흔적을 포착한 연작 ‘무제’(2024)의 화면들은 저마다 한 폭의 추상화와 같은 형태를 띠며 역설적인 미감을 드러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목격된 대부분의 장면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비바람에 씻겨 자연스럽게 사라짐으로써 사진으로만 영구히 남게 되었다. ‘손님 Ⅱ’(2024)의 화면 속 도심의 전선 위에 앉은 까마귀들은 저마다의 음표들처럼 작은 몸을 움직이며 도약의 방향을 탐색하는 모습이다. 문명 시대의 환경은 이들에게 그저 새로이 적응해야 할 자연의 조건이다. 사진기를 손에 든 작가의 과업 중 하나는 보통의 시야 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가 아닐까. 이토록 불안한 날들 가운데서, 저마다의 피사체가 지닌 고요한 균형과 운율을 목격하여 기록하는 작업과 같이 말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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