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분 ‘맹탕 회동’

박순봉·유새슬·민서영·이보라 기자 2024. 10. 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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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한동훈 대표 면담
윤 대통령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동훈 대표는 ‘제로 콜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 여론 악화·쇄신 필요성 전달
김건희 리스크 해법 3가지 제시
“김 여사 특검법은 반헌법적”
윤 대통령, 요구안 전면 거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만나 여권의 정국 해법을 논의했다. 한 대표는 이날 김건희 여사 의혹과 관련해 대외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쇄신, 특별감찰관 임명 등 쇄신책을 윤 대통령에게 전했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입장차를 확인하는 자리에 그치면서 당정 갈등이 당정 대결 구도로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내 파인그라스에서 오후 4시54분부터 6시15분까지 81분간 면담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핵심 의제를 두고 이견만 확인했다.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은 국회 브리핑에서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세 갈래의 요구 사항을 전했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우선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전했다. 두 번째로 앞서 밝힌 김 여사 관련 3가지 요구 사항(대통령실 인적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사항들에 대한 설명 및 해소) 수용과 특별감찰관 임명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박 실장은 밝혔다. 한 대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빨간색 문서 파일도 준비했다.

박 실장은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우리 정부의 개혁정책,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지지하고 당이 적극 지원할 것이란 점을 말씀드렸다”며 “개혁의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고 전했다. 박 실장은 윤 대통령 답변을 두고는 “답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감대 여부나 대통령실 반응이나 말씀은 용산에 확인해보는 게 맞다”고 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윤 대통령은 한 대표 요구를 전면 반박했다. 당 고위관계자 등과의 통화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활동 중단 요구에 “자제는 이미 하고 있다. 이 정도면 (활동을) 안 하고 있지 않느냐”며 “제2부속실이 생기면 다 괜찮아질 거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특검법 등을 두고는 “반헌법적”이라고 했고, 인적쇄신 요구에는 “조치할 것이 없다. 절대 안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 같다”며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시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늦은 것, 6시에 약속이 있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마지못해 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용산 “헌정 유린 막아내자”…윤 대통령 지지율은 또 ‘최저’

반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1시간20분간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정이 하나 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두 분이 파인그라스를 들어가고 나갈 때 표정도 밝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면담을 시작하며 “우리 한동훈 대표”라고 불렀다고 대통령실은 공개했다. 윤 대통령에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대표에겐 제로 콜라가 메뉴로 준비됐다.

한 대표는 지난 10·16 재·보궐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힘의 무게추를 옮겨오려고 하고 있다. 재·보선 승리 다음날 대통령실을 향해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사항을 내놨다. 한 대표 측근인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대통령실이 한 대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의 재표결 과정에서 이탈표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한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날 기자에게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대립해 차별화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는 것 아니냐”며 “처음부터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 대표가 완전히 야당처럼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압박하고 윤 대통령이 버티는 형국이 만들어졌지만 형세는 윤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4∼18일간 전국 성인 251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역대 최저치인 24.1%로 조사됐다.

야당은 “국민의 마지막 기대는 차갑게 외면당했다”고 비판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에서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불통의 면담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대표를 향해선 “남은 판단은 윤 대통령과 공멸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뿐”이라며 “한 대표가 잡아야 할 것은 대통령의 손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윤 대통령 ‘배후자’이자 결정권자인 김건희씨 없이는 아무런 해법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열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은 “부질없는 희망은 버리고 특검을 통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박순봉·유새슬·민서영·이보라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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