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스페이스X 부러워만 할 건가

이정호 기자 2024. 10. 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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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스타베이스 우주발사장에서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날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높이가 120m에 이르는 지구 최대 발사체 ‘스타십’을 쐈다. 스타십은 연립주택처럼 1단과 2단 발사체가 수직으로 붙어 있는데, 1단 발사체인 높이 70m짜리 ‘슈퍼 헤비’가 임무를 마친 뒤 하늘에서 불을 뿜으며 낙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추락’이 아니었다. 슈퍼 헤비는 발사대로 후진 주차를 하는 자동차처럼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이륙하기 전 서 있던 발사대로 칼이 칼집에 꽂히듯 안착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도 등장한 적 없는 황당한 설정이 현실이 된 것이다.

우주 개척이 본격화한 1950년대부터 모든 발사체는 임무를 다한 뒤 공중에서 버려졌다. 1회용이었다는 뜻이다. 귀환시켜서 다시 쓰면 이득이었겠지만, 그럴 기술이 없었다. 2010년대 스페이스X는 역추진과 자세 제어 장비를 개발해 임무를 다한 발사체가 바다의 바지선 위로 사뿐히 내려앉도록 하는 기술을 내놓았다. 이날은 아예 바다에서 발사체를 끌어올 필요도 없도록 하는 새 기술을 공개한 것이다. 이런 완벽한 재사용 발사체를 가진 곳은 스페이스X뿐이다.

현재 스페이스X는 전 세계 발사체 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이유가 있다. 발사체를 재사용하면 발사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시점 기준으로 스페이스X 발사체로 1㎏짜리 물체를 지구 궤도에 올리려면 2000달러(약 274만원)가 든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로는 무려 2만4000달러(약 3200만원)가 필요하다. 유럽이나 일본 발사체도 모두 스페이스X보다 발사 비용이 높다.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로 데려다줄 ‘우주 화물차’를 찾는 국가나 기업이 스페이스X로 몰리는 이유다.

한국은 뭘 하고 있을까. 지난달 우주항공청은 2030년대 중반에 1㎏ 물체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비용을 1000달러(약 137만원) 이하로 떨어뜨릴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스페이스X 로켓 발사 비용의 절반 수준이다. 의미 있는 목표다. 하지만 목표로 하는 시점에서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 학계에서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203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이스X 발사 비용이 1㎏당 300달러(약 41만원) 근처까지 내려갈 공산이 크다고 본다. 모든 계획이 잘 추진돼 한국이 10여년 뒤 발사체 기술 수준을 높여도 스페이스X는 저만치 달아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재사용 발사체 정책이 너무 느슨하다는 야당의 지적에 우주항공청은 “연말 국가우주위원회를 연 뒤 정책 방향을 밝힐 계획”이라고 했다. 국가우주위원회는 한국의 우주개발 방향을 짜는 최고 기구다. 국가우주위원회 개최 이후에도 뚜렷하고 현실적인 재사용 발사체 개발 계획이 나오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국이 우주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에 합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이 만든 인공위성조차 외국 재사용 발사체에 실어서 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러면 ‘우주 주권’이 지켜질 리 없다.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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