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죽음의 고비 넘긴 특별한 나무

기자 2024. 10. 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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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우리나라의 아주 특별한 나무가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깊은 산골 마을인 용계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사진)다. 나무높이 3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의 큰 나무인데,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건 규모가 아니라,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 내력 때문이다.

700년 전에 뿌리 내리고 마을 당산나무로 살던 이 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건 1987년이었다. 임하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나무도 물을 피해 오랫동안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나무는 옮겨갈 수 없었다.

떠나는 사람들은 긴 세월 동안 자신들 살림살이의 안녕을 지켜온 당산나무가 그대로 물속에 갇혀 죽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에 “나무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공사 측에서도 규모나 생김새에서 모두 나라 안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나무를 물속에 잠기게 할 수 없었다.

숙고 끝에 한국수자원공사는 나무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나무 이식의 노하우가 쌓인 조경회사인 대지개발의 기술을 이용하기로 했고, 엄청난 규모로 소요될 비용은 국가 예산을 배정받았다.

공사 방식도 놀라웠다.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식(移植)’이 아니라, 나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몰을 피할 높이까지 수직으로 들어올리는 ‘상식(上植)’이었다. 나무가 있는 자리에 15m 높이의 인공 산을 쌓고 그 위로 나무를 들어올리는 특별한 방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방식이다.

공사는 1990년부터 4년의 긴 시간이 걸렸으며, 23억원이란 거액이 투입됐다. 이 나무가 기네스북에 오른 건 이 정도로 큰 나무가 15m라는 높이로 들어올린 ‘상식’ 방식으로 옮겨진 세계 최대의 나무라는 사실이었다.

은행나무가 서서히 초록빛을 내려놓는 계절이다. 빠르게 겨울로 다가서는 기후 때문에 올가을 단풍은 그리 아름답기 어려울 듯한 심상치 않은 짐작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계 최고의 우리 은행나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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