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친환경 마크의 이면

이지은 기자 2024. 10.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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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지리학」
기후 붕괴 타국에 전가하는
선진국의 ‘탄소 식민주의’
'선진국'들이 친환경을 표방하며 물건을 파는 동안 그 물건을 생산할 때 발생한 쓰레기는 가난한 국가들에 남는다. [사진 | 연합뉴스]

'친환경'은 이 시대 가장 큰 화두이자 전세계가 함께 지켜야 할 과제다. 각국 정부는 탄소 중립·녹색 성장 등 기후위기 대응책을 강화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공정무역' '유기농' 같은 구호와 라벨을 부착한 제품들을 생산한다. 소비자들도 제로웨이스트나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같은 '착한 소비'를 추구하며 힘을 보탠다. 그런데 왜, 기후위기는 점점 더 악화할까.

「재앙의 지리학」은 '친환경 마크'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헤친다. 지리학자인 로리 파슨스는 글로벌 공급망이 감추고 있는 진실에 주목하고, 기후 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상을 밝혀낸다.

저자는 글로벌 생산 시대에 자국 내 탄소배출량만을 토대로 '탄소 감축'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꼬집는다. "기업들은 가난한 국가들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환경오염과 기후붕괴를 함께 팔아넘기고, 부유한 국가들은 그런 폐단을 묵인하며 자국의 경계 안에서 배출된 탄소만을 집계한다"며,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친환경과 탄소 감축 노력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생산과 윤리적 소비, 대대적 탄소 감축 정책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날로 치솟고 있다. 이런 불일치의 이면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탄소 식민주의(carbon colonialism)'로 압축되는 불평등한 역사적 권력 관계에서 찾는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국가들은 탄소 배출량을 자국의 환경 장부 바깥으로 이전시키고, 환경오염이 큰 생산 공정을 이전하면서도 그 생산이 제공하는 경제적 결실만은 그대로 차지한다." 저자는 부유한 국가들이 글로벌 생산을 통해 친환경을 표방하는 동안 그 생산의 대가(탄소나 쓰레기)는 가난한 국가들로 옮겨지고, 그곳의 환경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세계 기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홍수·가뭄·폭염 같은 무수한 재앙이 일어나고, 지구 온도도 매년 상승 중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경제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두가지 모두를 실현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해결책이라고 택한 것이 바로 '그린워싱(greenwashing·친환경을 주장하나 그와 거리 먼 경영과 생산을 지속하는 기업 관행)'이라는 위장술이라고 지적한다. 친환경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에만 집중해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친환경 제품을 계산대로 가져갈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열악한 노동환경과 값싼 일회용 노동력에 의존하면서도 손쉽게 친환경을 표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글로벌 체계의 발전 과정과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필요한 건 권력의 틀 속에서 제조되는 천편일률적인 상품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그런 무해한 물건들이 어떻게 심각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연루됐는지 역추적하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라벨과 표시사항 배후의 진실은 영영 감춰질 것이다." 상품의 지식을 생산과 공급망에 대한 지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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