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 연출가 “답 아닌 무수한 질문 던져”

장예지 기자 2024. 10. 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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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 인터뷰
연극 ‘라 베제타리아나’ 스틸컷. 사진 안드레아 피자리스(Andrea Pizzalis) 극단 인덱스 제공

꿈과 현실의 흐릿한 경계, 그 속에서 육식을 거부하며 식물이 되어가려는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가 담긴 책 ‘채식주의자’가 곧 이탈리아 연극 무대에 오른다.

2018년 처음 이 책을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이탈리아 연출가 겸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2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볼로냐에서의 개막을 앞두고 리허설 준비에 한창이었다. 극단 인덱스(INDEX)와 그가 선보일 연극 ‘라 베제타리아나(La Vegetariana)’는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이번달 공연표가 모두 매진됐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겨레는 이탈리아에서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그와 지난 18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출을 맡았고, 작품에서 영혜의 언니 인혜를 연기하는 다리아는 ‘채식주의자’가 “독자에게 정확한 답이 아닌,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며 관객들이 자신만의 질문을 품고 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다리아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채식주의자 책에 매료돼 연극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소설은) 여러 빛깔을 내는 크리스탈 프리즘 같았다”며 “책을 읽고 또 읽을수록 이야기의 다양한 면이 눈에 들어왔고, 그럴수록 나의 관심도 더욱 커졌다”며 “그러던 중 배우 모니카 피제두로부터 영혜의 모습을 봤고, 그에게 작품을 제안했더니 모니카는 내가 언니 인혜를 연기하면 작품에 합류하겠다고 했다. 그 뒤 영혜의 남편과 형부 역을 맡을 배우를 찾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그래, 해 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탈리아어 번역서만 5~6차례를 읽었고, 특정 장면이 담긴 부분은 그보다 더 많이,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갔다고 한다. 다리아는 “번역본이지만 한 작가가 쓴 모든 장면은 시적으로 느껴졌고, 원서인 한국어 판으로 읽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며 책에 담긴 시적 이미지는 연극으로 풀어나가기에도 좋은 길잡이가 됐다고 했다.

연극은 영혜가 냉장고에서 고기를 던져 버리고, 피와 살이 낭자한 꿈을 꾸는 장면 등을 심도 깊게 묘사하고자 했다. 다리아는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꿈,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기를 거부하는) 행위를 세밀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영혜의 형부가 그녀를 그려내는 것의 근본적인 의미, 영혜를 ‘정상성’의 범주에서 보려고 하는 언니 인혜와의 관계를 그리는 데도 집중했다”고 말했다. 다리아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제작 계획을 구체화했고, 3년 뒤인 지난 7월 첫 리허설에 들어갔다. 그 기간 배역을 맡은 배우들과 다리아는 각각의 개인사를 소설과 연결시키며 많은 대화와 토론도 거쳤다고 한다.

한 작가의 다른 책은 ‘채식주의자’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그는 5·18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와 ‘흰’, ‘내 여자의 열매’ 세 작품을 통해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다리아는 ‘소년이 온다’를 두고 “이 책을 읽은 뒤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영혜의 형부가 영혜를 그리며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흰’은 영혜의 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고, 한 작가의 두번째 소설인 ‘내 여자의 열매’는 “짧은 소설이지만,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식물’이 되어가는 아내를 다뤘다는 점에서 채식주의자의 전신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치열하게 한 작가를 이해하려 한 다리아는 아직 연극의 원작자인 그와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리아는 “난 이미 책을 통해 한 작가를 만났다. 물론 실제로 그녀를 보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녀의 작품, 그리고 연극을 통해 우린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라 베제타리아나’는 오는 25∼27일 이탈리아 볼로냐에 이어 29일 로마 바셸로 극장 무대에도 오른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프랑스 파리, 몽펠리에 공연도 예정돼 있다. 다리아는 아직 한국 상연 계획은 없지만, 이탈리아어판 연극 영상을 촬영해 한국의 연극 페스티벌 등에서 선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연극화한 배우 겸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 디베르티(Diberti&C) 제공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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