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독대(獨對)의 역사

2024. 10. 2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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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체코 공식 방문을 위해 출국하며 환송나온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 세종 7년, 사간원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지금 육조·대간이 독대해 아랫사람의 실정을 다 아뢰도록 하는데, 이것은 진실로 성대(盛代)의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러나 사관이 참여하지 못하니 그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을 어떻게 해서 후세에 전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이제부터 윤대(輪對)할 때에 사관도 참여하도록 하시길 원합니다."

신하와 임금이 독대할 때 사관도 배석해 기록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요구다. 세종은 거절했다. 사관이 일일히 그 자리에서 나온 대화를 기록하면 신하가 임금에게 직언을 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실제로 세종은 신하와 연쇄적으로 독대를 하는 '윤대'를 주로 했다. 신하가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세종의 업적을 봤을 때 독대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성종 시기부터 독대를 금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관이 들어오지 못하면 남을 헐뜯는 말이 오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선대인 세조 시기에 많은 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왕권 쿠데타인 계유정난을 통해 집권한 세조는 측근 세력을 중심으로 정치를 구현했고, 이 과정에서 왕권에 저항하는 신하는 가차없이 처단했다. 이후 청와대 비서 격인 승지가 배석하고 사관이 곁에서 왕과 신하의 대화를 기록했다. 사실상 왕의 독대는 금지됐다.

예외가 없진 않았다. 효종이 송시열과 단 둘이서 북벌을 논의한 '기해(己亥) 독대'가 대표적이다. 당시 효종은 북벌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과 해당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독대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독대는 효종 사후 수많은 소문을 낳았고 정쟁의 불씨가 됐다. 결국 송시열은 사약(賜藥)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숙종과 후계 문제로 '정유(丁酉) 독대'를 한 이이명도 다음 왕인 경종 때 사사를 당했다. 이례적인 독대는 신하에게 '독배'(毒杯)였던 셈이다.

현대 대통령들도 독대를 받았다.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은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통해 정적을 관리했다. 고도성장에 돌입할 무렵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통령들은 빠른 정책 판단을 위해 실무자를 직접 불러 독대했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은 윤대를 했는데,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 말대로 결정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권력자를 움직이기 위한 마지막 순번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당연지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과의 독대를 중시했다. 독재를 행했던 대통령들과는 철저하게 다른 의미를 지닌다. 김 전 대통령은 독대를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받을 수 있는 자리로 여겼다. 독대 매뉴얼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대를 밀실·가신 정치의 상징처럼 여겼다. 국정원장의 주례 독대까지 없앴고, 임기 내내 그 원칙을 지켰다. 그 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다시 독대 정치가 활발해졌고, 야당은 "밀실 정치 부활"이라고 비판했다.

이제는 새로운 유형의 독대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관료나 집권 여당대표를 은밀히 불러 현안을 논의하는 형식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독대를 요구했고, 대통령실이 이에 대한 수락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독대 의제도 한 대표가 정한 모양새였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김 여사 문제 해소를 위해 △대통령실 인적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규명을 위한 절차 협조를 요구했다. 한 대표측 인사는 "세 가지가 사실상 회동 의제다. 수용할 지 말지는 윤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다만 '완전한 독대'는 아니다. 21일 회동에는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함께 했다. 밀실은 없지만 조선시대처럼 독대를 지켜보는 승지가 있는 셈이다. 지켜보는 관중도 있고, 끝난 이후에는 내용도 공개된다.

이번 만남이 가지는 의미는 어느 때보다 크다. 윤 대통령의 부인인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증폭된 상태에서 가진 회동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정치권의 정쟁으로 민생 경제 현안 논의도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민심의 분노도 그만큼 크다. 이번 회동이 '빈손'으로 끝난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독배'가 될 수 있다.

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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