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백숲 가꾼 현맹춘”…한강이 알리고픈 인물

장예지 기자 2024. 10. 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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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웨덴 최대 국제 도서전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총괄 디렉터
한강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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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스웨덴 최대 국제 도서전인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초청된 한강 작가는 39명의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만찬장에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세계에 알리고 싶은 역사적인 여성으로 제주의 현맹춘(1858∼1933)을 꼽았다고 한다. 현맹춘은 약 150년 전 제주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집과 농토를 지키기 위해 황무지 5000여평에 동백나무 수백그루를 심은 인물이다. 누군가는 부질없는 일이라며 나무랐지만, 한라산 동백나무 씨앗을 따다 심은 그녀의 정성으로 동백은 숲을 이뤘고, 사람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자란 ‘위미동백 나무군락’은 1982년 제주기념물로도 지정됐지만 현맹춘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019년 당시 한 작가를 직접 초청한 예테보리 도서전 총괄 디렉터 프리다 에드만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설을 통해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한 작가는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해면 40주년을 맞는 예테보리 도서전은 해마다 약 4000개의 프로그램과 300여개의 세미나가 열리고 10만명 가까이가 찾는 국제적 규모의 도서전이다. 한 작가의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2021)’도 영미권 국가보다 앞선 지난 3월 스웨덴에서 출간되는 등 스웨덴 독자들의 관심도 크다. 한겨레는 지난 18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프리다 에드만 디렉터를 만나 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관 내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서 만난 프리다 에드만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총괄디렉터. 사진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스웨덴은 노벨상 선정기관 한림원이 있는 나라다. 이곳에서 한강 작가는 얼마나 알려졌나.

“한강 작가의 책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스웨덴 사람들은 왜 그가 선정됐는지, 스웨덴에서 얼마나 알려진 작가인지 등을 두고 토론을 한다. 많은 스웨덴인들에게 한 작가 수상 소식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었을 것이다.”

―2019년 예테보리 도서전에 한 작가를 직접 초청한 것으로 안다.

“2019년은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의 문화와 문학적 측면에서 관계를 강화하고자 한국 작가를 예테보리에 초청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도서전의 메인 테마는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 작가가 이런 주제에 걸맞는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9년 9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초청돼 디너 파티에 초대된 한강 작가의 모습. 이날 만찬에선 39명의 페미니스트가 삼각꼴로 된 테이블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제공

―당시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말해달라.

“우린 ‘역사적인 저녁 만찬’을 열었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엔 주디 시카고의 ‘더 디너 파티’라는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이를 따서 진행한 행사였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39명의 실존 인물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컨셉으로 거대한 삼각형 테이블을 설치했다. 우리는 한강 작가를 포함해 실제로 39명의 페미니스트들을 초대했고, 삼각꼴로 배치된 식탁에 모여 앉아 근사한 식사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각자 페미니스트 롤모델을 꼽아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작가는 제주에서 홀로 나무를 가꾼 현맹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놀란 이들도 많았다. 스웨덴 한림원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이 가진 독특함, 그리고 한국 역사를 시적 언어로 표현한 특질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도 한 작가와 같은 글쓰기는 전에 본 적 없는 특별함이 있다.”

―광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나 제주 4·3의 역사가 담긴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역사를 담은 이야기는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외국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그의 책은 전혀 어렵지 않다. 이 또한 한 작가가 가진 독특함을 보여준다. 나와는 먼 (한국의) 역사에 대한 글이지만, 나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한 작가의 이야기는 더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역대 121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수상자는 18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남성의 시각에서 본 역사에 익숙하다. 그러나 한 작가의 수상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여성 작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자 열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한 작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서 당신의 새 책을 만나보고 싶다. 절대 글쓰는 일을 멈추지 말아달라. 이 상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항상 당신이 해 오던 것을 했으면 한다. 쓰고, 쓰고, 쓰는 일 말이다. 독자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스웨덴 도서전에서 만날 수 있다면 큰 영광이자 자랑스러울 것이다.”

글·사진 프랑크푸르트/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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