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죽인 딸·소년을 살해한 엘리트 청년···살인에 관한 두 편의 뮤지컬

백승찬 기자 2024. 10. 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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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소재 작품 ‘리지’와 ‘쓰릴 미’
뮤지컬 ‘리지’의 한 장면. 1막에서 배우들은 19세기 풍 드레스를 입는다. 쇼노트 제공

살인, 그리고 춤과 노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뮤지컬에서는 허용된다. 존속살해, 아동살해 같은 끔찍한 사건이라 해도 그렇다.

실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2편이 상연중이다. <리지>와 <쓰릴 미>다. <리지>는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2022년에 이어 비로소 온전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2007년 한국 초연된 <쓰릴 미>는 초창기엔 매년, 2017년부터는 2년에 한 번 꼴로 공연될 만큼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다. 전자는 등장인물 4명이 모두 여성, 후자는 2명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리지는 정말 부모를 죽였을까 ‘리지’
뮤지컬 ‘리지’ 2막에서 배우들은 로커를 연상시키는 현대적 의상을 입는다. 쇼노트 제공

1892년 8월4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폴 리버에서 부유한 사업가 보든 부부가 도끼로 살해됐다. 둘째 딸 리지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됐다. 떠들석한 관심 속에 재판이 열렸다. 첫째 딸 엠마, 리지의 친구 앨리스는 리지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변호인 측은 “역사상 가장 흉악하고 극악무도한 살인을 젊은 여성이 저지르기엔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변론했다. 리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뮤지컬 <리지>는 리지가 부모를 죽였음을 명확히 한다. 다만 리지가 왜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아버지는 부유하지만 구두쇠였다. “어제 쪄먹은 양고기, 오늘은 구워 먹어 내일은 튀겨 먹고 모레는 스튜를 끓여 결국 탈이 나지.” 아버지의 성적 학대도 암시된다. “사랑한단 그말, 사랑이 아냐 가끔씩 돌아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 용서가 안 돼” “무릎 위에 아빠 손, 아빠 그만 그만.”

어머니는 계모였다. 아버지의 돈을 보고 결혼한 걸로 추정되며, 결국 유언장을 바꿔 자매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리지는 친구에서 연인이 된 앨리스와 헛간의 새를 지켜보며 답답함을 이겨내려 하지만, 아버지는 어느날 새의 목을 모조리 쳐낸다. 이는 리지가 폭주하는 계기가 된다.

<리지>는 록뮤지컬을 표방한다. 배우들은 록밴드 구성의 연주에 맞춰 록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샤우팅 창법으로 노래한다. 가사에는 “X발 다 X까” 같은 욕설도 섞인다. 집을 떠나는 식의 소극적인 저항조차 하지 못하던 리지가 살인을 결심하며 내뱉는 말이다. 1막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19세기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리지가 폭주하는 2막부터는 로커를 연상시키는 검은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노래 특성 때문에 시원한 가창력을 가진 배우들이 주로 캐스팅됐다. 리지 역에 김소향·김려원·이봄소리, 엠마 역에 여은·이아름솔이 나온다. 배우들이 가볍게 인사하거나 인기 있는 곡의 한 소절 정도를 부르는 여느 작품의 커튼콜과 달리, <리지> 커튼콜은 주요 곡을 하이라이트로 이어 불러 7분 가량 된다. 관객이 모두 기립해 박수치고 환호하기 때문에 공연장은 일시적인 록콘서트장이 된다. 12월1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부유하고 똑똑한 청년의 엇나간 욕망 ‘쓰릴 미’
뮤지컬 ‘쓰릴 미’의 한 장면. 엠피앤컴퍼니 제공

1924년 5월21일 미국 시카고에서 14세 소년 바비 프랭크가 납치된 뒤 살해됐다. 시신은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게 훼손된 상태였다. 범인은 머지 않아 붙잡혔다. 현장에 떨어진 안경이 중요한 단서였다.

범인은 시카고대 학생이던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처드 로엡. 둘 다 부유하고 똑똑했다. 둘은 세상의 윤리, 법을 초월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둘의 범죄는 절도, 방화 등에서 납치,살인으로 이어졌다. 엘리트 청년 두 명이 오직 ‘완전범죄’에 대한 열망 때문에 끔찍한 범행을 했다는 소식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뮤지컬 <쓰릴 미>는 54세가 된 ‘나’(레오폴드)의 가석방 심의에서 시작된다. 심의관들은 레오폴드에게 34년 전의 일과 ‘그’(로엡)에 대해 다시 묻는다. <쓰릴 미>는 ‘나’와 ‘그’가 맺었던 기묘한 관계에 집중한다. ‘나’는 새 관찰이 유일한 취미인 내성적인 청년이었고, ‘그’는 가는 곳마다 시선을 모으는 인기남이었다. ‘나’는 ‘그’를 선망해 끝없이 “만져줘 안아줘 사랑해줘”라고 말한다. ‘그’는 ‘나’의 마음을 이용해 범죄에 끌어들인다.

뮤지컬 ‘쓰릴 미’의 한 장면. 엠피앤컴퍼니 제공

사랑에 있어서는 ‘그’가 ‘갑’, ‘나’가 ‘을’ 같았지만, 범행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갑을 관계가 역전된다. ‘나’가 마지못해 ‘그’의 범행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나’가 ‘그’의 범행에 동참함으로써 관계를 돈독히 하고 수감 생활도 같이 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남자 배우 2명만이 극을 이끈다. 둘 사이 키스신이 명확하게 나오고 베드신도 암시된다. 음악은 피아니스트 혼자 책임진다. 2007년 초연 이후 류정한, 김무열, 강하늘, 지창욱 등 스타가 이 작품을 거쳐갔다. 화려한 무대장치나 음악, 군무 없이 오직 두 배우의 호흡만으로 진행되는 작품이기에 배우의 매력이 극대화되고 그만큼 ‘회전문 관객’도 많은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이번 시즌에는 박상혁·정재환·정지우가 ‘나’, 황휘·반정모·장윤석이 ‘그’로 출연한다. 2003년 미국 미드타운 인터내셔널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초연됐다. 한국 프로덕션이 유독 인기가 많아 일본, 중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12월1일까지 서울 예스24스테이지 2관.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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