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대이주 시대…제주 대방어 동해로, 열대어 제주로

한겨레 2024. 10. 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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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조사반 (39) ‘사라진 명태’ 사건 2
지난 14일 제주 서귀포시 섶섬 앞바다에 열대어인 두동가리돔이 헤엄치고 있다. 연합뉴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지 20년입니다. 옛날에 강원도 고성 거진항구에서는 강아지도 명태를 물고 다녔다는데, 명태는 왜 갑자기 없어졌나요? 너무 많이 잡아서 없어졌을까요? 아니면 기후변화 때문일까요? 숙제예요. 빨리 답해주세요. - 환경 초등생 M

1편(‘사라진 명태’ 사건 1)에서 이어짐

“용왕님은 무슨 일로 만나려고 하시오?”

자신의 이름을 ‘별주부’라고 소개한 바다거북은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을 태운 뒤 물었어요. 왓슨이 답했죠.

“우리는 동해 명태 실종 사건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명태가 돌아오지 않고, 심지어 명태를 키워 내보냈는데도 감감무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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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가 톡 쏘아댔죠.

“명태 없으면 다른 생선 먹으면 되죠? 청어도 좋고. 청어도 찬물에 살고 지방이 많아서 명태와 달리 바다 얕은 곳에 살아서 낚시하기도 쉽지. 인간의 입맛이란 도대체…”

중세 온난기에 관해 공부한 왓슨이 청어 얘기를 듣자 아는 체 했어요.

“16세기 조선에 소빙기가 닥쳤어요. 뭍에서는 냉해로 인한 흉작이 잦아지지만, 바다에서는 새로운 물고기가 나기 시작했죠. 그때 어부들이 명태와 청어를 잡기 시작한 거예요. 19세기를 통과하면서 기후가 따뜻해졌고 청어는 사라졌죠. 그리고 이번에 명태까지 사라진 거예요.”

별주부가 다시 톡 쏘아댔죠.

“그것 말고 플라스틱 빨대 문제 좀 조사해 주시오. 바다에 떠다니는 말미잘인 줄 알고 빨대를 꿀꺽 했다가…꽥꽥…왜 빨대가 우리 코에 박히는지 아시오? 당신네 물기 편하게 빨대를 구부려놨기 때문에, 우리 입속에 들어간 빨대가 비강까지 들어간다오. 거북이 콧구멍에서 빨대 빼는 유튜브 그만 보시고, 빨대를 종이로 바꾸든지, 재활용하든지. 용궁종합병원에 빨대 빼러 온 바다거북이 줄을 섰소.”

2014년 해양수산부의 국산명채 되살리기 프로젝트 포스터. 해양수산부 제공

어민과 물고기의 숨바꼭질

바다거북 셔틀은 홈스와 왓슨을 태우고 출발했어요.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갑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에 용궁이 있어요. 우리 같은 해양 동물도 접근 불가능한 암흑의 바다에 진주알로 빛나는 궁전입니다.”

한참을 가니, 북상하는 살오징어 떼가 보였어요. 왓슨이 외쳤지요.

“어이! 오징어 양반들 어디로 가십니까?”

“가을과 겨울을 나러 동해로 올라갑니다. 동해 수온이 상승해서 예전에 머물던 곳보다 더 북쪽으로 가야 해요. 바빠서 이만.”

“요즈음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요. 어민들에게 알려줘야겠네.”

이 말을 들은 한 오징어가 왓슨에게 다가와 먹물을 뿜었어요.

국립수산과학원 자료를 보면, 지난 56년 동안 세계 바다의 표층 수온이 0.7도 오를 때, 한국 바다의 온도는 1.44도 올랐어요. 두 배 차이죠. 특히 명태가 사는 동해는 수온이 1.9도나 올랐습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느끼는 온도에 대한 감각은 우리보다 훨씬 민감해요. 일종의 ‘온도 증폭기’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를테면, 우리는 오늘 기온이 어제보다 1~2도 높아진 것에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그 정도의 수온 상승은 물고기에게 마치 열대 사막으로 갑자기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죠. 인간에게 1도는 물고기에게 10도입니다. 그러다보니, 해양 동물은 서식지를 (인간이 보기에) 재빨리 움직이고, 이것이 급진적인 어획량 변동을 일으켜요.

명태뿐만이 아니에요. 오징어가 ‘금징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1980년대부터 연간 어획량 추이를 보면, 1980년대에 5만 톤 안팎을 기록하던 어획량이 1990년대에 어획량이 확 늘어나서 20만 톤까지 이르고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는데, 아마도 ‘기후변화 때문에 오징어가 많이 난다’는 얘기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오징어는 대구, 명태와 달리 난류성 어종이거든요.

하지만, 오징어 어획량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2015년 이후부터는 급감해요. 서해에 어장이 형성돼 많이 잡히긴 했지만, 동해에서 감소한 어획량을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죠. 현재 어획량은 1990년대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죠. 아까 먹물 뿜은 오징어가 그랬죠? 동해 수온이 예전보다 높아져 오징어들이 더 북쪽으로 이사 갔다고. 지금 바다에서는 어민과 물고기의 숨바꼭질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연근해 어획량은 1981년과 2010년으로 나누어 비교해 볼까요? 갈치(-40.1%)와 명태(-100%)의 어획량은 현저히 감소했지만, 오징어(340.6%)와 멸치(135.4%)의 어획량은 증가했습니다. (물론 오징어는 최근 급감세가 반영 안 됐죠) 즉, 2000년대 들어 한국 연근해에서 어획량은 멸치, 살오징어 등 난류성 어종이 증가하였지만, 명태 같은 냉수성 어종은 크게 감소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번에 대방어 떼가 나타났어요. 역시 북쪽으로 열심히 헤엄쳐가고 있었어요. 이번엔 홈스가 물었어요.

“방어야, 너희들은 원래 여기 제주도로 피서오지 않았니?”

무리 중에서 가장 통통한 방어가 대답했어요.

“몇 년 전에 북쪽으로 이사갔어요. 여긴 너무 더워요. 동해가 적당히 따뜻하고 좋아요.”

원래 제주도 마라도 근처가 산란장인 대방어는 제주 바다에서 많이 잡혔죠. 최근 들어선 동해가 주산지로 바뀌고 있어요. 2003년 426톤에서 10배가 늘어난 1456톤이 2023년에 잡혔어요. 동해 방어가 풍년이라 제주 방어의 판로가 위축됐다는 소식도 들리고요.

바다거북 셔틀은 빠른 속도로 남하했어요. 호박돔, 독가시치, 아홉동가리, 금줄촉수가 차례로 지나가면서 인사했어요.

“우리는 따뜻한 북쪽 나라로 갑니다!”

술에 취한 용왕님

며칠을 가니 드디어 용궁 근처에 이르렀어요. 깊은 바다였어요. 사위는 어두울 대로 어두워져 별주부가 비치는 조명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주부는 수직 낙하 하듯 밑으로 돌진했어요. 표지판이 조명에 반사해 번쩍였어요.

‘용궁 909m’

‘현재 수심 1만m’

별주부가 속도를 늦췄어요. 용궁이 진주알로 빛나고 있었어요! 술 냄새가 용궁에 진동했고요!

용궁의 맨 안쪽, 술 냄새가 피어오르는 곳에 용왕의 처소가 있었어요. 백발에 삐죽삐죽한 흰 눈썹, 용처럼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용왕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술 냄새의 범인은 용왕이었어요. 어제도 과음한 게 틀림없었어요.

별주부가 도착한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깬 용왕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숙취 탓에 발음이 계속 꼬였지만요.

“너희가 한국에서 어린 명태 수십만 마리를 길러 바다에 내보낸다는 물고기방류국의 직원들이냐?”

홈스가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했어요.

“아닙니다, 용왕 폐하. 저희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으로서, 기후위기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물고기방류국이 10년 넘게 명태를 방류하는데도, 명태가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이 걱정되어 이렇게 왔을 뿐입니다.”

용왕이 버럭 화를 냈어요.

“지금 너희 인간들이 방류한 명태 때문에 용궁의 119구조팀이 정신이 없지않느냐? 이미 더워질 대로 더워져서 어린 명태들이 살 수 없는 바다에 무작정 어린아이들을 내보내면 어떡한단 말이냐? 우리 용궁대학병원 응급실과 응급구조 시스템이 마비 직전이다. 의사들까지 파업을 하고 나섰다. 토끼 박사, 이리 와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보록 하라.”

용왕 앞으로 늙은 토끼가 나왔습니다. 토끼는 토끼의 간을 빼앗으려는 별주부에 속아 용궁에 왔다가 기지를 발휘해 다시 육지로 돌아갔지만, 평화로운 용궁을 못 잊어 다시 돌아왔다고 했어요. 별주부가 왓슨의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이제 용왕님은 토끼 간이 필요 없습니다. 우루사가 있으니까요.”

이 얘기를 들은 왓슨은 기지를 발휘해, 미리 준비한 밀크시슬을 용왕에게 바쳤어요.

“용왕 폐하, 유기농으로 재배한 엉겅퀴 잎과 씨앗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밀크시슬입니다. 이것 한두 알이면 지금 헤롱거리시는 정신도, 숙취도 단번에 잡으실 겁니다.”

용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곤 술 한 잔을 따라 마셨어요.

토끼는 용궁에 내려와 기후변화로 인해 변한 바다 환경을 연구한다고 했어요. 그가 설명했죠.

“지금 남쪽의 따뜻한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동해로 삶터를 옮기고 있습니다. 과거에 없던 대이주입니다. 왜 동해일까요? 남해와 더 남쪽의 바다는 너무 뜨거워져, 삶터를 버리고 동해를 따라 북상하는 겁니다. 반면, 명태와 청어 같은 냉수성 어종은 더 북쪽으로 가고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동해 수온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왜 동해 수온이 유독 더 높아졌을까요? 첫째는 동해에 열을 수송하는 대마난류의 세기가 1980년대 이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동해 중부와 남부 사이에 북쪽의 냉수와 남쪽의 난류가 만나는 열적 경계(극전선)가 형성되는데, 그 경계가 점차 북상하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잠시 숨을 골랐어요.

“모든 동물은 기후변화에 ‘이주’라는 방식으로 적응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죠. 해수면이 상승하는 태평양의 섬나라의 국민들도 하나둘 나라를 떠나지 않습니까? 제가 조사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북반구의 육상 동물과 해양 동물은 모두 북쪽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더군요. 육상종은 10년마다 평균 17㎞를 북상하는 반면 해양동물은 평균 72㎞를 북상하죠. 해양 동물의 이주 속도가 육상 동물보다 네 배 빠릅니다.”

용왕은 벌써 졸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런 생물종의 이동을 단순히 ‘북상’이나 ‘이주’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습니다. 동물 입장에서는 ‘대혼란’이나 ‘전쟁’이라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여러분이 살던 곳이 갑자기 뜨거운 사막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북쪽으로 갔더니 오히려 더 춥다면요? 물고기는 아주 작은 수온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물고기 입장에선 기후가 변화하는 게 아니라 기후가 붕괴한 겁니다.”

홈스가 말했어요.

“전 세계 바다가 엉망진창이 됐군요. 모두가 삶터를 찾아 헤매는 물고기의 대방랑 시대가 열린 거군요.”

토끼가 말했죠.

“지금 바다는 전쟁터입니다.”

용님은 깊은 잠에 빠졌어요. 용왕의 간은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됐어요. 어쩌면 우루사와 밀크시슬이 있기 때문에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몰랐어요.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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