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비만과 ‘꿈의 비만약’의 양극화 [매경데스크]

신찬옥 기자(shin.chanoak@mk.co.kr) 2024. 10. 21. 10: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꿈의 비만약’ 위고비 나왔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
값싼 당뇨약 생산 줄어들수도
‘위고비 디바이드’ 점점 커질것
제약바이오산업 집중 육성해야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사진출처=노보노디스크, 연합뉴스>
‘꿈의 비만약’이라는 위고비가 지난 주 한국에 상륙했다. 취재 차 수도권 주요 병의원 여러 곳을 돌았는데도 실물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품귀다. 인터넷에는 ‘10만원 더 드릴테니 대신 처방받아달라’는 불법 재판매 유도 글부터, 분위기에 편승해 ‘위고비를 맞을 수 없다면 우리 제품을 드시라’는 생소한 영양제 광고들이 판을 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속 모니터링 대응반을 구성하고, 온라인 불법 판매·광고를 집중점검하기로 한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위고비 가격은 한 달분 70만원 선으로 예상됐지만, 지금은 물량부족으로 100만원을 부르는 병원도 있다. 그런데도 맞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주위에서는 다들 “나도 맞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다. 반면 피부과에도 매달 그 정도 금액은 쓴다면서, 평생 맞고 싶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위고비를 처방받을 수 있는 고도비만 환자가 아니다. 일부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보고된 약인데도 ‘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위고비를 원한다는 의미다. “한국인들은 어쩔 수 없어” 하면서 혀를 차기에는 위고비가 출시된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몸살이다.

지난 달 인천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지식포럼에서도 ‘비만 세션’은 최고의 화제였다. 이날 연사로 나선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경영진들의 이야기는 의료정책 관계자들이 몇 번이고 곱씹어볼 만 하다. 세계적으로 비만 증가율이 둔화되는데 한국은 빠르게 늘어 전체 인구의 30%를 넘나든다는 점, 한국 남성 절반이 비만으로 분류된다는 점 등은 정부가 꼭 들여다봐야 할 통계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암의 사회적 비용이 약 26조원인데, 비만은 29조원에 달한다(2019년 기준)는 존 비클 한국릴리 대표의 말이었다. 게다가 비만의 사회적 비용은 2030년 62조원, 2060년에는 55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지금 ‘암보다 비만이 무섭다’고 하면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만에 따른 합병증은 200개가 넘는데, 이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불행이다. 위고비 같은 약들이 ‘고도비만 치료제’로서, 이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국민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으면 좋겠다.

비만은 유전적 요인이 큰 만큼 ‘게을러서 그렇다’는 식의 사회적 낙인을 찍는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메시지였다. 개인들이야 “그럴 시간에 나가서 뛰어라” “주말에 등산이라도 하라”고 훈수를 둘 수 있다지만, 정책적으로는 비만이 얼마나 중대한 질병이며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의료사안인 지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난한 동네에는 비만클리닉이 없다.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그곳에 있는데도 말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저소득층일수록 비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또 하나 걱정은 위고비와 삭센다 같은 비만 치료제가 각광받으면서 ‘저렴한 당뇨약’ 생산 공장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치료제 모두 당뇨약으로 개발되었다가 비만치료제가 된 경우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문이 남는 비만 치료제 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합리적 결정이다.

그래서인지 벌써 일부 개발도상국에 무료로 지원하던 저렴한 당뇨약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해서 소외되는 ‘위고비 디바이드’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 의약품이 얼마나 대단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지, 우리는 코로나 때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때는 코로나 백신이고 치료제였지만, 앞으로는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신약이 될 지 모른다. 정부와 의료계가 몇 년을 내다보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정책적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