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하우스는 CJ하우스? “기업 편의 봐주다 주객전도”

신다은 기자 2024. 10. 2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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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그 뒤]김재원 의원실이 받은 대한체육회·CJ 자료 분석해 보니… 코리아하우스 운영 실태 드러나
코리아하우스 야외 정원의 비비고 시장에서 음식을 사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CJ 제공

2024년 파리올림픽 당시 국내 선수를 지원하고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거점이었던 코리아하우스. 그러나 운영위원들에게 현지 최저임금을 주고 야근수당을 고의로 빼먹는 등 열악한 노동처우가 논란이 됐다(제1529호 참조). 주최기관인 대한체육회가 인건비에 쓴 예산은 1억5천만원 남짓. 정작 하우스 시설 조성엔 30억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하루 임대료가 1억원이 넘는 비싼 시설을 빌리고 꾸민 탓이다.

장소 선정부터 채용·운영에 CJ 관여 정황

그런데 막대한 비용이 든 코리아하우스 시설 임대 과정에 특정 기업 입김이 작용한 정황이 나왔다. 수십 개 올림픽 후원·협찬사 중 유일하게 그룹 홍보관을 차린 씨제이(CJ)다. 씨제이는 코리아하우스 장소 선정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홍보 인력 채용과 운영 전반에서도 체육회의 도움을 받았다.

2024년 10월14일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실이 대한체육회와 CJ그룹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CJ는 2023년 6월과 10월 두 차례 체육회의 올림픽 개최지 프랑스 파리 답사 여행에 동행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체육회 답사 여행에 동행한 건 CJ가 유일하다. 체육회가 고른 여러 후보지를 함께 돌아보는 차원이었다. 최종 장소로 선정된 파리의 메종 드 라시미 외에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후보지가 함께 올라와 있었다. CJ 쪽은 넓은 공간이 좋다, 조리시설이 부족한 건 아쉽다 등 각 후보지에 대한 자사 의견을 피력했다.

CJ는 답사 뒤에도 하우스 운영 방안에 적극 의견을 냈다. “사용자 동선에 따라 공간을 좌우 분리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거나 “대형 공간은 이벤트 진행에 따라 구분 운영하는 걸로 의견 드린다. 퍼블릭/관계자(VIP, 선수, 미디어) 공간을 구분하되 참여 후원사, 정부기관, KOC(대한체육회) 관련 콘텐츠 결정에 사용 공간을 조정하면 될 것 같다”(2023년 8월25일치 전자우편)고 썼다. 사실상 전체 공간의 구체적 활용 방법까지 CJ가 제안한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 ㄱ씨는 “장소 선정 권한은 체육회가 갖고 있고 CJ 등은 거기에 입점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일 뿐인데 왜 답사에 동행하고 의견을 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가적 행사를 하는데 기업 편의에 계속 맞추다가 주객전도가 될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코리아하우스 내부도. 왼쪽 ‘Salle 8’라는 붙은 넓은 방에 CJ가 배정됐다. 대한체육회 제공

결과적으로 CJ그룹관은 코리아하우스 지상층(0층) 안쪽 넓은 자리에 단독 배치됐다. CJ그룹 역사와 비비고 등 주력 상품을 홍보하는 자리다. CJ는 파리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24년 8월13일 “그룹관 방문 이후 방문자들 관심이 커진 브랜드는 비비고(33.7%), 올리브영(29.8%)”이라는 홍보성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코리아하우스가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장이 되기보다 특정 기업을 홍보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정작 전통문화관과 한국관광공사는 0층 입구 옆 좁은 공간에, 선수 지원 공간과 한국도자재단은 2층에 배치됐다. 특히 선수 지원 공간은 접근성 좋은 1층에 바 라운지가 있는 넓은 공간으로 계획했으나, 최종적으론 2층 안쪽에 책상과 의자를 비치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코리아하우스에서 씨제이(CJ)가 자사 브랜드를 알린다며 내건 이미지. CJ 제공

체육회는 CJ 홍보 인력을 대신 뽑아 일을 시키기도 했다. CJ 기업 홍보 몫의 인원까지 체육회가 ‘채용 대행’을 했다는 뜻이다. 전체 78명 운영위원 중 18명(23%)이 CJ그룹관 몫이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한국도자재단(2명)이나 전통문화관(6명)보다 월등히 많다.

체육회 몫으로 뽑힌 운영위원도 CJ 행사에 동원됐다. 올림픽이 개막한 2024년 7월26일(현지시각), 체육회는 하우스 운영위원 70여 명을 일제히 CJ 음식 케이터링 업무에 투입했다. 다 같이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하고 냉장고를 옮겨야 했다. 원래 체육회 부스 운영과 한국문화 홍보 목적으로 뽑힌 인원이다. 이 과정에서 CJ 케이터링 관리자가 ‘음식이 흐트러지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우스 운영위원 ㄴ씨는 “부스 운영 일을 하러 온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체육회는 ‘케이터링 업무도 코리아하우스 일’이란 입장이다. “개관식 행사 운영을 위해 애초 배정된 업무와 다른 일을 맡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업무는 계약서상 하우스 운영·조성 업무범위 내에 있다”고 해명했다.

외형 키워 시간·예산 부족, 기업에 의존

CJ는 10억원을 내고 공식 후원사가 됐으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계약으로 코리아하우스에 CJ 이름을 함께 걸고 코리아하우스 전시공간 일부를 빌릴 권리도 얻었다는 취지다. 체육회도 “네덜란드 하이네켄 하우스, 벨기에 로또 하우스처럼 올림픽 하우스가 후원사와 협업한 사례는 많다”고 답했다.

그러나 똑같이 10억원을 낸 네이버와 노스페이스 등 다른 공식 후원사는 하우스 안에 기업 홍보관을 차리지 않았다. 각각 네이버 응원페이지 운영과 선수 외투 후원을 했을 뿐이다. 간식용 빵을 제공한 파리바게뜨, 야외에서 맥주를 판 카스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노출을 위해 자사 물품을 협찬하는 수준을 넘어 코리아하우스 안에서 직접 기업 홍보까지 한 것은 CJ뿐이다.

체육회는 “ 다른 공식 후원사가 홍보관 참여 제안을 거절했는데 CJ는 적극적이어서 함께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재원 의원실은 “체육회에 여러 번 확인한 결과 다른 후원사들에 입점 제안을 했을 땐 이미 CJ와 먼저 계약하고 관련 협의도 진행한 이후였다. 동등한 기회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국가 행사에 사기업이 이렇게 영향력을 행사한 까닭이 뭘까. 내부 관계자 ㄱ씨는 ‘전시행정’을 의심한다. “원래 올림픽 내셔널 하우스의 역할은 우리 선수 지원이 1순위, 문화 홍보가 2순위다. 그런데 평창올림픽 이후 이 공간을 크고 번쩍거리게 만들어 외부 실적으로 뽐내는 분위기가 생겼다. 문제는 내실이다. 사업 규모만 키우고 그만큼 질적인 콘텐츠를 발굴하고 채울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면 민간 기업에 콘텐츠를 채워달라는 손쉬운 부탁을 하게 된다.”

세금 들인 국가사업, 냉정한 평가 필요

CJ는 이전에도 국가 행사에 의욕적으로 참여해 글로벌 시장 홍보 기회로 삼곤 했다. 2015년 각국 음식을 알리는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에서도 CJ가 비비고 만두와 비빔밥 등을 한국 대표 음식으로 내놨다. 이 과정에서 CJ 쪽 용역 직원이 불법 드론 광고 촬영을 강행하다 밀라노성당과 충돌해 국제적 비판을 받는 일도 있었다. 사기업 입장에선 적은 예산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 기회라지만, 국가 홍보 관점에선 주객전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재원 의원은 “코리아하우스는 45억8천만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고 그 본래 기능도 우리 선수를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진행하는 국가 사업에 과도한 기업 홍보가 이뤄진 건 주객이 전도된 예산 사용 아닌지 냉정히 평가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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