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오늘도 무사히…미화원 잔혹사

강병수 2024. 10. 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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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30회 I] 오늘도, 무사히... 미화원 잔혹사

지난 7월, 경남 양산에서 60대 미화원이 숨졌습니다. 청소차 발판에 선 채 이동하던 중 떨어져 숨진겁니다.

또 다시 일어난 미화원 사망 사고. 정부는 발판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의 사고가 이어지자 2018년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청소차 발판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양산 사고 이후 석달이 지났어도 미화원들의 일터는 바뀐게 없습니다. 미화원들은 여전히 발판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위험한 발판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걸까.


현장을 찾아가, 함께 일하며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처음 타보는 청소차량은 '헉'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차에 오르는 것부터 쉽지가 않은 차량.

강병수/취재기자
"이게 엄청 높아요. 이걸 타면서 일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건 너무 힘들겠는데요"

청소 작업은 보통 하루 8시간 정도 이뤄집니다. 그 때마다 청소차를 타고 일하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은 차에서 오르내려야 하는 겁니다. 무릎과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도 상당합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10년이 이제 넘었는데 무릎 MRI까지 찍고 왔어요”

함영기/환경미화원
"이 차를 수시로 타고 내렸다는 못해요. 절대.”


결국 미화원들은 발판 없는 청소차에 오르내리는 대신, 하루 종일 걸으며 일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이 구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저 앞에 한 번씩 타긴해요. 근데 그것도 좀 부담스러우니까 웬만하면 걸으려고 하죠. 차라리 걷는 게 더 낫죠. 저 청소차를 계속 타면 맥이 빠져요 ”

하지만, 이번엔 시간이 문제입니다. 실제 일하며 본 현장에는 불법 투기된 쓰레기가 수두룩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며 일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시간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결국 정해진 시간에 할당된 지역의 일을 못 끝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주민들의 불만과 민원은 모두 미화원들에게로 직접 향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걸으면서 일해야 하니 힘은 들고,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 양은 줄어드는 거죠. 그러다보니 민원은 발생하고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청소차를 일 하는데 추가로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대책은 없습니다"


정해진 구역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들도 많이 겪습니다.

인화 물질이 쓰레기에 섞여 들어가거나, 갑자기 차가 지나가 교통사고가 날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가스통이나 이런 게 있으면 안에서 불이 붙어요. 저 들어오고 나서도 벌써 2번 정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정신 없었어요."

함영기/환경미화원
"노동환경은 점점 안 좋아지고. 노동의 강도는 세지고. 이게 이러다 보니까 저희도 사람인지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저는."

안전 때문에 발판은 제거를 했는데, 오히려 일 하기엔 더 힘들어진 겁니다.

함영기/환경미화원
"저기 보시면 발판이 있는데. 솔직히 저게 불법이지만. 저희한테는 어찌 보면 그냥 생명줄이거든요.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이제 저거를 떼라고 해서 저렇게 떼놓고는 있는데... 아,정말 너무 힘들어요. “

발판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고 큰 부상을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기도 하지만, 환경미화원 사이에서 조차 발판을 떼어야 한다, 발판 없이는 도저히 일할 수 없다, 수차례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작년에 한 두 달 정도 발판을 떼고 해봤었는데 이게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우선 다시 달았었어요. 그 전에 민원이 너무 들어왔는데, 다시 달자마자 그 민원을 싹 해결을 했었어요.

해결 방법은 없는걸까 ? 다시 시작된 오후 작업에는 오전과 다른 청소차를 타고 나가봤습니다.


불법 발판을 제거한 이른바 '한국형 신형 청소차'입니다. 차 높이가 낮아 오르내리기 쉽고, 이동하는 사이사이 앉아서 쉴 수도 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일을 더 수월히 할 수 있고 노동 강도가 훨씬 더 현저히 낮아요.제 생각에는 정말 일이 반이 아니라 한 80%는 지금보다도 훨씬 덜 힘들 것 같아요"

미화원들은 무작정 걸으며 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했습니다. 가족들도 이제는 조금 더 안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저희 가족들 보기에도 저 뒤에서 항상 매달려서 할 때는 위험한 거 아니냐 정말 사고에 취약하지 않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거 나오고 나서는 조금 더 안심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일하는 미화원들의 호평을 받는 신형 청소차. 문제는 이 차가 평창군에 단 1대 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전히 나머지 청소 작업은 13대의 구형 청소차로 진행해야 하는 실정.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한국형 신형 청소차는 2018년부터 전국에 700여대가 보급됐습니다. 하지만, 기존 구형 청소차 1만 4천여대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적은 숫자입니다.
이유는 뭘까 ? 한국형 청소차 1대당 가격은 1억 5천만원 수준으로 구형 청소차에 비해 3천 만원 가량 비쌉니다. 가격이 도입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청소차 교체 시기가 돼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청소차 한 대를 10년까지 쓰다 보니 보급 속도는 더욱 늦어지고 있습니다.

배영균/환경부 생활폐기물과 사무관
"(구형) 차량의 내구 연한이 보통 10년 이상을 쓸수가 있습니다. 이 노후 차량의 교체를 빨리빨리 안 하는 문제 때문에 이 중소형, 저상형이 이렇게 빨리 보급이 안 되는 주요 원인이지 않나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형 청소차가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도입되기를 바라는 환경미화원들.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함영기/환경미화원
"이게 정말,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거라 힘들 수도 있겠는데, 어차피 그런 예산 다 국민들 위해서 써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서 바꿔줬으면 하는데 .. 그게 안되는 것 같아요."

취재진이 확인한 환경미화원들은 야간에 홀로 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인 자정이 넘어야 이들의 하루가 시작 되는 겁니다.

특히 밤에는 낮보다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에, 미화원들은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교통 사고 두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최성훈(가명)/환경미화원/울산시 울주군
"아무래도 야간이니까 음주 차량, 솔직히 그게 제일 무서워요. 음주 차량이. 저희는 이제 차 뒤편에서 상차를 하니까 뒤에서 이렇게 추돌 사고가 일어날수 있는 확률이 많다 보니까 그 사고가 제일 무섭죠"


실제로 지난 8월, 충남 천안시에서 한밤중에 홀로 일하던 30대 환경미화원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CCTV를 보면, 음주운전 차량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한참을 달리다 길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을 덮쳤습니다. 이 사고로 숨진 환경미화원은 일을 시작한 지 7개월 밖에 안 된 예비 신랑이었습니다.

환경미화원들의 사고 실태를 살펴보면 위험성은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5.5명의 환경미화원이 산업재해로 숨지고, 900여명의 미화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의 대부분은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교통사고 였습니다.

배영균/환경부 생활폐기물과 사무관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이 제일 높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고요. 그리고 이제 차량에서 떨어짐 같은 사고, 그리고 질환 등으로 인한 원인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고가 반복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지난 2019년 환경미화원들의 작업 안전 기준을 '폐기물관리법'에 넣었는데, 밤 근무가 아닌 낮 근무, 안전사고에 대비한 3인 1조 근무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화원들의 노동 실태를 감독하는 자치 단체 담당 부서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더니,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자치단체 관계자
"일단 민원이 조금 많아요. 이게 주민들의 불편함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크거든요. 주간에는 아무래도 쓰레기 수거 차량이라는 게 냄새도 나고 미관도 안 좋고 하잖아요. 또 차량도 크고 하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야간 근무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주간 근무 하면 사실 좋긴 하겠지만 이런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취재진이 지자체가 미화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정해 놓은 과업지시서를 확보해 살펴보니, 낮에 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전 협의해서 결정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폐기물관리법에서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안전 기준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한 점을 이용해 만든 겁니다.
김태선/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
"환경미화원들의 낮 근무와 3인 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시행규칙의 단서조항이 이런 규정을 쉽게 무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민원과 현장 사정을 이유로 안전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바람에 환경미화원 사망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환경부는 제대로 된 실태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현미향/울산산재추방연합 사무국장
"조례는 일단 법률적인 것들은 존중을 하고 그거보다 상회하는 조건으로 조례를 만들어서 운영을 하는 게 맞는데 오히려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보다 더 낮은, 그걸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조례를 만들었어요”


환경미화원들의 안전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 받는 일본의 경우 '환경미화원들은 청소 전문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골목 환경에 맞는 청소차 개발과 낮 근무만을 원칙으로 삼아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의 환경미화원은 약 4만 명. 이들은 자신이 '공공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저희도 주민분들한테 정말 서비스를 하는 거잖아요. 쓰레기를 안 치우고 싶은게 아니거든요.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깨끗한 동네를 만들면 좋은데, 이게 지금 쉽지 않으니까.. "

그동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시민의 불편 때문에,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미화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환경미화원들은 묻고 있습니다.
이승환/환경미화원
"저희도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지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게 저희가 제일 바라는 거죠. 여건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취재기자: 강병수
내레이션: 박지현
촬영: 조선기 강우용
편집: 김기곤
그래픽: 장수현
리서처: 김보현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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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기자 (kbs03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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