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자아팽창과 한강
한강 작가가 보인 고요한 품격
자기 기만을 넘어선 겸손함으로
보는 이들을 다시한번 감동시켜
내 살아생전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늘 후보로 거론되었던 작가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불발이었고, 그럴 때마다 그렇지, 하면서 노벨상의 높은 벽을 당연시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날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축하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구? 한강! 아하, 한강!
그리고 노벨상! 그것은 한강을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분명히 우리나라 전체가 축하해야 할 큰 상이다. 우리의 국격을 그만큼 높인 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처음이라 하니 그것까지도 기분이 좋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손뼉을 쳐주고 응원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당사자는? 나는 노벨상이 확정되고 난 후 한강 작가의 태도에 주목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두고 잔칫집을 만들 수 없다고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는 작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있다. ‘자아팽창’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인데, 자기를 바로 그 업적과 혼동하는 것이다. 자아팽창은 쉽게 자기기만을 끌어들인다. 내가 이룬 것이 ‘나’라는 생각, 내가 받고 있는 사회적인 평가가 ‘나’라는 생각은 업적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에너지가 될 수는 있지만, 내적으로는 종종 자기성찰을 방해하는 에너지가 되고, 외적으로는 비교 평가하는 에너지가 되어 시기와 질투, 무시와 업신여김으로 작든 크든 공동체의 갈등을 조장한다. 세계적인 인물이었던 융은 많은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쓰자고 찾아왔을 때 바로 그 자아팽창과 자기기만을 경계해서 수락하지 않았었다. “나의 삶은 무의식의 자기실현 역사”라고 시작하는 그의 자서전은 스스로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삶을 정리해야 할 이유가 생긴 후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한강이 노벨문학상과 상관없이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상처 입은 영혼에 집중하는 자의 힘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저 한강이다. 그 여인은 노벨상을 받기 전에서 한강이고, 노벨상을 받고 나서도 한강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 같았다.
이번에 딸의 조용한 시간을 보호하기 위해 딸을 대신해서 아버지 한승원 선생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침착하게 또박또박 상황을 이야기하는 아버지는 큰 나무 같았다. 생각해보니 한승원 선생은 한강의 뿌리인 것 같다. 편견으로 가득 찬 문명을 살아내면서 거기서 생긴 상처를 돌파하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바로 한승원 문학의 힘 아닌가. 윤리 이전, 선악 이전의 생명력에 대한 감수성이 없으면 한강 문학에도 다가설 수 없는 것을 보면 부모는 우리의 최초의 스승, 질긴 뿌리다.
한강의 기적을 축하해주면서 나는 나의 뿌리 내 부모를 생각했다.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 성공했거나 아니거나 하는 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본질은 그 자아팽창을 빼고 볼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이 생기면 성찰이 일어난다. 그중 우리 지향성의 원천인 부모에 대한 성찰은 우리 뿌리를 살피는 중요한 일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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