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판관 선출 지연과 헌정 시스템의 실패

기자 2024. 10. 2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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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재판관 선출·배분에 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때 약간 불안했다. 9월 말까지 청문회 일정이 들리지 않았어도 ‘잘 해결되겠지’ 하며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10월17일 임기만료에도 후보자조차 미확정인 상황을 목도하니, 국회는 재판관 3인이 18일자로 임명되도록 ‘선출하지 아니할 결심’을 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물인 현행 헌법은 국민적 염원이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헌법재판소를 설립했다. 헌법재판을 통해 공권력 행사에 형식적 합법성과 실질적 정당성을 요구함으로써, 장식 헌법에서 벗어나 현행 헌법에 규범력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또 헌법재판은 극단적 투쟁 이전에 정치적 갈등을 헌정질서 안에서 해소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므로, 입법·행정·사법권에 재판관 3인의 선출·임명·지명권을 부여함으로써 재판소 구성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17일 퇴임한 재판관 3인의 후임은 모두 국회 선출 몫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심리하도록 규정한다. 비록 재판소가 해당 조항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였지만, 18일부터 남아 있는 6인의 재판관으로는 정상적인 전원재판부 운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헌법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구제는 물론 국가권력 간 견제와 균형마저 지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판관 선출 지연은 헌정 시스템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2010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을 계기로 튀니지 국민이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헌법 개정에 성공하였다는 ‘아랍의 봄’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민주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한 카이스 사이에드가 튀니지를 권위주의로 전환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팬데믹을 명목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다음, 총리 등 내각을 해산하는 대통령령을 공포하고, 국회의 권한을 정지하는 대통령령을 채택한다. 이후 비상사태 동안 대통령령으로 입법권을 대신 행사하였으며, 국회의 관여 없이 헌법을 개정하여 초대통령제로 이행한다.

헌법 교수, 헌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사이에드가 민주헌법을 폐지하고 권위주의로 회귀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튀니지에서는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워, 헌법이 정한 재판관 임명이 지체된 점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구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가긴급권과 대통령령의 초헌법적 행사로 초래된 헌정질서 위기상황에서 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자’로 기능할 수 없었다. 튀니지 정치권이 조금씩 양보하여 재판소를 미리 구성해 놓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다. 재판관은 그 임명 시에 임기만료 시점이 정해지므로 후임자의 임명은 결코 예측 불가능한 사안이 아니다. 이에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정함으로써, 그 임명이 단지 정치적 문제가 아닌 ‘법적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곧 만료될 예정인데 총선 일정조차 정해지지 않거나,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이미 만료되었는데 대선조차 실시되지 않은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갈등이 헌정 시스템의 실패로 연결되지 않도록 여야의 양보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승이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승이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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