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사과의 의미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2024. 10. 20. 20:1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실수나 잘못을 한다.

살면서 사과를 하거나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갈등을 일으켰던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형식적인 사과를 하거나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다른 목적을 얻으려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는 진정성이 담긴 사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람은 누구라도 실수나 잘못을 한다. 살면서 사과를 하거나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과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사과를 받았는데 오히려 화가 났던 경험도 있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를 받았을 때다. 갈등을 일으켰던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형식적인 사과를 하거나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다른 목적을 얻으려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다.

2007년 영국 노팅엄대학의 아벨러 박사는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불만글을 올린 고객 632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누어 다른 대응 방법으로 불만 철회를 요구하는 실험을 하였다. A그룹과 B그룹은 각각 2.5유로, 5유로를 보상금으로 제시하였고, C그룹은 보상금 없이 정중한 사과의 메일을 보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정중한 사과를 받은 C그룹의 45%가 불만을 철회한 반면, 금전 보상을 제시받은 A그룹 B그룹은 평균 21%(각각 19%, 23%)에 불과했다.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는 진정성이 담긴 사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난 10월 1일 보건복지부장관은 7개월 이상 지속되는 비정상적인 의료 상황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사과의 첫 대상은 당연히 국민, 특히 환자와 가족이었다. 그리고 ‘필수의료에 헌신하기로 한 꿈을 접고, 미래의 진로에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들에게도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일부 언론은 이 사과에 대해 의료계도 환영했다며 정부가 사과했으니 이제는 의료계도 마음을 열고 대화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는 황색보도를 했다. 과연 보건복지부장관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었을까?

지난 10일에는 처음으로 정부와 서울의대의 의료개혁 정책토론이 열렸다. 정부를 대표하여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참석했다. 어렵게 만들어진 자리지만 그는 ‘2000명 증원은 과학적, 합리적이었다. 의대생들은 휴학할 권리가 없다. 교육부의 ‘의대 5년제 발표는 애초 있지도 않은 일’이라는 거짓해명과 궤변을 늘어놓다가 몇 분만에 파행되었다. 수업일수가 모자라도 의대생을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라는 ‘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이나 의학교육의 질을 감시하는 의평원을 억누르려는 시행령 등 막무가내식 의대 증원이 불러올 부실교육을 감추기 위한 졸속행정은 점점 그 도를 넘고 있다. 남은 학기에 충분한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울대의대에서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하자 이번에는 교육부에서 각대학에 휴학을 불허하라는 공문과 함께 서울대 감사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싶다는 의대생들의 당연한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흡사 주술적인 2000명 증원에 끼워맞추기식의 졸속과 협박성 시행령을 마구 쏟아낸다.


최근 응급실 상황이 더 안좋아졌다. 여러 사례나 통계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체감하며 불안감은 나날이 커진다. 오직 정부만이 이런 심각함을 느끼지 못한다. 뭐가 문제인지 현실인식과 공감능력이 없으며 해결능력도 없다. 지방의료와 중증필수의료를 살리겠다던 의료개혁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이 죽어나간다는 국회의 질책에 ‘가짜뉴스’이고, 의료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을 버린 전공의에게 있다고 목청을 높였던 총리가 그러하다. 의전준비가 되어있는 한산한 응급실을 둘러보고 응급실 체계에 문제가 없으며 국민의 불안에 대해서는 응급실 현장에 직접 가보라는 대통령의 현실인식은 ‘875원짜리 대파’ 가격에 만족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무도 못해냈던 의료개혁을 묵묵히 수행하겠다는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힌 대통령이 또한 그러하다. 다소의 불편함은 있지만 의료가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그 누구도 사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룻밤만이라도 현재 벌어지는 응급체계의 민낯과 국민의 불안을 제대로 경험해보길 바란다.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외면하고 그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의료개혁에는 결코 정당성이 없다. 장관의 사과에 더 화가 나는 이유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