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받은 이란…전쟁비용 어떻게 조달했나

정수영 2024. 10.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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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경제제재로 석유 수출 등 판로 막힌 이란
'그림자금융' 이용해 불법 수출로 석유팔아 수익
이란 지원을 받는 시아파 전사들이 지난 10월 1일 이라크 바스라에서 IRGC의 이스라엘 공격 후 거리에서 축하하고 있다. 사진 제공: REUTERS/Essam Al-sudani.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하마스, 헤즈볼라 등 ‘저항의 축’을 키워 이스라엘과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란이 불법 석유를 판매해 전쟁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경제 제재로 석유수출길이 막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란이 어마어마하게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불법 수출을 통해서라는 주장이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석유시스템을 잘 아는 이란 내부자, 정보 전문가, 이란 제재를 맡았던 전직 관리 등의 취재원과 제3자 웹사이트인 ‘위키이란’ 자료 등을 총동원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란 석유 밀수출 95%는 中으로”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란은 석유 생산시설에서 중앙은행의 가상금고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그림자 금융채널’을 구축했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특수목적법인 등 은행이 아닌 투자회사들을 이용해 거래 및 자금중개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금융회사들은 금융 규제를 거의 받지 않아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으로, 이들은 자신들이 이란의 자금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란이 해외에 맡겨 놓은 자금은 7월 말 현재 530억 달러(약 73조원)와 170억유로(약 25조원), 이외의 통화로 된 자금 일부가 더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여기에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란 게 이 매체의 주장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주요 구매자인 중국은 이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최대 수혜자”라며 “중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95%를 흡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란은 2000년대 중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 안된 핵 시설이 발각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자간 경제 제재,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개별 재재를 받게 됐다. 미국은 2010년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통해 금융 제재를 강화했고, EU는 2012년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 및 중앙은행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 고강도 제재를 시행했다. 이란 경제는 이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석유 수출이 크게 감소하고 외국 기업들이 이란에서 철수하면서 경제 성장 둔화하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치솟았다. 2012~2013년엔 이란 화폐가치가 반토막 나는 등 금융위기 조짐마저 나타났다.

하지만 석유 밀수를 통해 대거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가격은 보통 전 세계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의 가격에서 배럴당 10~30달러를 할인한 금액에 팔리며, 주로 달러로 거래한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이란의 수법은 마약 카르텔이 제품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다른 암흑 기업으로 재활용하는 데 사용하는 수법을 연상시킨다”고 비유했다. 마약이 아닌 석유 카르텔 방식으로 자금을 모았다는 얘기다.

Civil defence members put out a fire at a damaged site, in the aftermath of Israeli strikes on Beirut‘s southern suburbs, Lebanon October 20, 2024. REUTERS/Ali Alloush
“IRGC 쿠드스군, 2022년 석유팔아 120달러 벌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란은 국영 석유 회사인 국가이란석유회사(NIOC)가 생산을 독점하고, 스위스 기반 자회사인 나프티란 인터트레이드 회사(NICO)를 통해 해외에서 석유를 판매한다. 하지만 실제는 이란의 정부 부처, 종교 단체 및 연금 기금에도 석유가 할당돼 직접 판매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전직 관리는 이란의 석유 판매 방식에 대해 “거의 중세 시대 같다. 영주들에게 왕국의 일부를 주고 있는 셈”이라고 언급했다.

석유는 군대에서도 판매가 이뤄진다. 지난해 이란은 군대가 49억 달러(6조7000억원) 상당의 석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할당량은 충성도를 보상하는 데 사용된다. 2022년에는 정권에 의해 심사를 거친 개인들이 총 36억 달러(약 5조원)의 석유를 제공받았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IRGC)도 많은 양의 석유를 비공식적으로 받고 있다. 이란의 한 전직 관료는 “IRGC의 해외 부서인 쿠드스군은 2022년에 이러한 판매를 통해 120억 달러(약 16조400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이코노미스트에 전했다.

때로는 페이퍼 컴퍼니가 전체 거래를 조율하기도 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사하라 썬더라’는 이란 회사는 민간 무역 회사로 가장해 군대가 보유한 석유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이란은 튀르키예 회사인 ASB 같은 해외 제3자에게 판매를 아웃소싱하기도 한다. ASB의 자회사인 바슬람은 쿠드스 군과 일하기 시작할 때 지분 51%를 쿠드스 군에게 이전했다.

이란은 또 다양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자금을 세탁하고 있다. 이러한 회사들은 주로 홍콩, UAE, 터키, 유럽 등에 있으며,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을 처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은 다양한 방식으로 석유를 밀수출하고, 자금을 세탁한다”면서 “이러한 복잡한 네트워크는 이란이 국제 제재를 피하면서 군대에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수영 (grassd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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