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칼럼] 원칙 훼손하지 않는 게 부동산 정공법

김화균 2024. 10. 2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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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 부장

정부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지난 16일 발표된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구제책 얘기다. 기준을 낮춰 숙박업으로 신고를 하거나, 규제를 풀어 오피스텔로 바꾸도록 유도키로 했다. 법 개정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행강제금 부과도 오는 2027년까지 또 미뤘다. 생숙 투자자들은 일단 시간을 더 벌었다. 현 정부의 금과옥조인 '원칙'이 훼손된 것이다.

생숙은 흔히 '레지던스'로 불린다.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취사도 가능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대문 역 주변에도 대형 생숙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지난 2012년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을 겨냥해 도입됐다. 집값이 뛰고 부동산 규제가 강해지자 편법이 활개쳤다.

생숙은 주택이 아니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분양 받을 수 있다. 주택수에도 포함되지 않아, 세금 중과도 피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투기세력까지 가세, 아파트 대체재로 포장했다. 정부는 2021년 부랴부랴 건축법 시행령을 바꿨다. 생숙은 주택이 아니니 오피스텔로 바꾸거나, 숙박업 신고를 받으라고 했다.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물리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하지만 집단 반발에 이행강제금 부과를 내년으로 늦췄다.

현재 전국적으로 사용 중인 생숙은 12만7592실. 이중 7만5943실은 정부의 규제에 따랐다. 5만1649실은 버티기 끝에 유예라는 특혜를 받게 됐다. 억울한 사정도 넘치고, '꽉막힌' 규제 행정 탓도 크다. 그래도 믿고 따른 사람만 손해(?)를 보게됐다.

사례는 또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정비사업이다. 오는 11월27이면 1만2032가구의 올림픽파크포레온으로 재탄생한다. 여의도에서 서울불꽃축제가 열린 그 날 그 시각, 이곳에선 아파트 전 세대가 조명을 켜고 '입주 파티'를 벌였다.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현장 점검을 벌였다. 한때 사업이 좌초될까 전전긍긍하던 분양자들은 '강남급 아파트' 입주민이라는 자부심을 키워가고 있다.

이 곳 역시 원칙 훼손 덕에 혜택을 입은 곳이다. 지난해 '1·3 부동산 대책'으로 전매제한 기간이 축소되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유주택자가 무순위 청약 신청을 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오죽하면 '둔촌 주공 구하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을까.

1·3대책은 경기 방어차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다. 자칫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둔촌 주공 특혜로 '부동산 불패'란 신화가 건재함을 재확인했고, 강남 집값도 다시 부추겼다. 화들짝 놀란 '빚투(빚내 투자)족'의 가세에 가계대출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풍선 효과에 다른 곳 집 값도 덩달아 올랐다. 분양가 14억원짜리 이 아파트 국민평형은 실거래가가 20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한다. 중산층도 엄두내지 못할 '그들만의 아파트'가 됐다.

행정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유연해야 한다. 규제도 상황에 맞게 눈높이를 낮추기도, 높이기도 해야한다. 그럼에도 행정이 교조적으로 원칙을 고수하는 데는 명분과 이유가 있다.

원칙 훼손은 형평성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예외나 특혜는 더욱 그렇다. 혜택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특혜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로 이어진다. 이번 생숙 구제책이 대표적이다. 둔촌 주공 역시도 집값 상승과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왔다.

한번 훼손된 원칙은 언제든 또 훼손될 수 있다. 그럴듯 하게 포장만 하면 그만이다. 생숙은 이미 한번 이행강제금 부과를 유예됐다. 이번 2차 유예는 '조건부'다. 따르지 않고 버티다가 2027년 5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반발하면 그 때는 또 어쩔 것인가. 지난해 9월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버티니까 합법화해준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훼손된 원칙의 확산 가능성도 높다. 합리적이건 불합리적이건, 원칙에 눌린 억울한 사정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전원 생활을 위한 농막 규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활개치는 불·편법을 막기 위해 농막 규제를 강화하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벽 앞에 오히려 규제를 풀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시 따른 사람만 손해를 본 것이다. 이러다 오피스텔과 콘도 규제도 다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온다.

원칙 변경과 원칙 훼손은 그 결과물이 다르다. 원칙이 훼손되면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에 있어 원칙은 더욱 존중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집과 땅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를 거쳐 되풀이 된 원칙 훼손은 집값 폭등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이 괴물은 젊은 세대의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 저출생으로 이어져 국가 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 제발 지킬 건, 끝까지 지키는 결기를 보여달라. 적어도 부동산 정책만이라도.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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