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같은 작가 또 없을까요”…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붐
한국관 부스 앞에서 사진 찍는 독자들도
수상 관련 행사 없는 한국관에 아쉬움도
“한강 작가 같은 작가, 그의 작품과 비슷한 (한국) 소설 또 없을까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10월 16~20일) 한국관을 찾은 세계 각국 출판사 편집자들은 앞다투어 이렇게 물었다. 독일 출판사 ‘아우프바우(Aufbau)’는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한강 작가의 책 5권을 전면에 배치했다. 한강 작가의 대형 사진과 함께 오는 12월 ‘작별하지 않는다’ 독일어판을 출간 소식을 알리는 포스터도 벽 한 면을 차지했다.
올해 75주년을 맞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해마다 수십만명이 몰리는 세계적 도서 축제이자 세계 각국 도서 수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출판업 종사자들만 입장이 허용되는 16∼18일에만 131개국에서 4300개 이상의 출판사와 기관들이 부스를 열었고, 11만여명이 몰렸다. 도서전 조직위원회는 일반 관람객들의 방문이 시작되는 19∼20일까지 더해 약 21만명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도서전에 설치된 한국관은 둘로 쪼개져 운영됐다. 지난 53년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운영을 총괄해 왔지만 문체부가 해외 도서전 등에 대한 출협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올해 처음으로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한국관에서 창비, 다락원, 바람길 등 16곳 참가사의 상담 부스를 지원했다. 출협도 정부 보조금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소규모 한국관을 내기로 결정해 3개 참가사와 12개 저작권 상담 위탁사를 위해 활동에 나섰다.
‘제2의 한강’ 찾기
도서전 첫날인 16일 한국관을 찾은 각국의 편집자들은 “한강 작가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부터 꺼낼 만큼 한강 작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필리핀·타이에서 한강 작가 작품의 판권을 관리하는 에릭양 에이전시는 “인도네시아와 타이, 베트남 등에서 한 작가의 작품 중 아직 판권을 살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문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의 책 ‘희랍어 시간(2011)’ 등의 영문판을 펴낸 영국 펭귄 북스 관계자도 “한 작가 수상 이후 환호성을 질렀다”며 “영문판 수출을 원하는 다양한 국가들의 문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차세대 한강’을 찾길 기대하며 한국관을 방문하는 편집자들도 많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문학동네의 김소영 대표는 “노벨 위원회는 한강 작가 수상 이유로 역사적 상처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측면을 꼽았는데, 이런 내용을 언급하며 비슷한 소설을 찾는 문의를 받았다”며 “규모가 큰 영미권 출판사들의 관심도 최근 들어 커졌고, 도서전 기간 한국문학 판권에 대한 문의는 3~4배 많아졌다”고 했다.
캐나다 출판사 ‘더라이츠팩토리’ 대표 샘 히야트는 “출판사 직원 중 한 명이 한국인인데,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한강’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해서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 도서 수출시장에서 한국 문학은 아직까진 ‘마이너’이지만, 현장에선 서서히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펴냈던 창비의 방애림 과장은 “2016년을 기점으로 번역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영미권에서 ‘82년생 김지영’ 붐이 일어나는 등 한국 문학이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국외 주요 출판 에이전시들의 연락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관을 찾은 스페인의 한 편집자는 “3∼4년 전부터 한국 문학에 흥미가 생겼고, 채식주의자는 처음 읽은 한국 소설이었다. 과거엔 주로 개인적 관심에 머물렀는데, 이제 상업적 관심으로도 확장돼 (스페인) 독자들도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내가 수상한 듯 기뻤다” 노벨상 축제 분위기
출협이 연 서울국제도서전 부스 앞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축하하는 펼침막 앞에선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오스트리아 여성 작가 협회 대표 게르린데 해커와 에바 수르마는 “북클럽 행사에 한 작가를 초대하고 싶어 한국관에 왔다”고도 했다. 에바는 “여성 수상자가 나온 소식이 반가웠다. 그 전까진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이 그리고 유럽이나 영미권이 아닌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한국관 업무를 지원한 독일 동포 김성주씨도 “방문객 중엔 한 작가가 도서전에 오진 않는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한국 사회가 이 책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 깊은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해줬다.
한강 작가의 책이 전시된 독일 아우프바우 출판사 부스는 한 작가의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반 방문객도 찾는 19일엔 빠르게 책이 팔려 나가면서 서가 일부가 비었다. 많은 이들은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한 작가의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연령대는 20∼70대로 다양했지만 성별로는 여성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강 작가의 팬이라는 닐로파 디헤스타니는 “그녀는 소수의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본 적이 없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마치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서 인스타그램에도 소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대형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한강 작가를 알게 됐다는 다니엘라 디에즈는 “지금까지 그녀의 책 3권을 읽었다. (광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읽은 뒤엔 한국의 역사도 찾아봤다. 이 책이 나온 뒤 한 작가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노벨상을 받은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아우프바우의 판매 담당 책임자 안드레아스 크라우스는 “올해 연말까지 한강 작가의 책은 10만부가량이 판매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우리도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작가를 찾아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상 환영 리셉션도, 특별전도 없었던 한국관 운영…아쉬움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직후 열린 첫 대형 도서전인만큼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관도 보다 활기를 띠리란 기대도 컸다. 그러나, 서울국제도서전이 소형 펼침막을 내건 것 이외에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홍보물이나 작가 특별전, 연회 등 관련 행사는 없었다. 보통 도서전을 맞아 여러 나라들은 다양한 주제로 환영 연회를 열어 네트워크 확장의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문체부 주관의 한국관 운영을 총괄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지원사업 중심으로 신경을 쓴 측면이 있고, 노벨상 발표 직후 도서전이 열려 검토 시간이 부족했다”며 행사 기획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이나 필리핀 및 대만 등 아시아 여러 곳에선 리셉션을 통해 각국의 출판업자를 초대해 자국 콘텐츠를 알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올해 한국관 운영을 맡은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지원사업 중심으로 신경을 쓴 측면이 있고, 노벨상 발표 직후 도서전이 열려 검토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문학번역원이 한강 작가의 책들을 소개하며 에이포(A4) 용지 크기의 종이에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모르고 한국관을 찾았던 케냐의 한 출판사 유통 담당자는 “한국관에 와서도 한 작가의 노벨상 수식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한국 문학을 케냐에 수출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는데, 그런 좋은 일이 있었다면 더 많이 알려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관의 출판사 관계자도 “한국에 관심이 큰 일반 관람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란 기회를 활용해서 여러 이벤트도 하는 등 한국관을 더 알릴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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