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비벼진 환경, 버려진 양심"
전주비빔밥축제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름만 들어도 입맛이 돌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날 것 같은 축제였지만 뒷맛이 꽤 씁쓸했던 모양이다.
'친환경 축제'를 표방했던 이번 행사에서 무려 5만개에 달하는 일회용품 쓰레기가 배출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1963명이 참여한 대형 비빔밥 비비기 퍼포먼스에서 단 한 시간 만에 4만7000개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정도 양의 쓰레기를 내놓으려면 1분에 거의 800개씩 버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SNS 인증샷이 CCTV를 능가하는 방범카메라 역할을 하는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두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 뉴스를 보면서 두 가지 부분에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기계적으로 '친환경'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것과 축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친환경'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져서 그 의미가 퇴색된 듯하다. 기업이든 정부든 행사를 할 때마다 으레 '친환경'을 내세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이해나 실천을 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전주비빔밥축제의 경우처럼 실제 행동은 구호와 정반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단순히 위선의 문제를 넘어 아직까지 환경에 대한 이 사회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징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한국기록원 등재를 위해 벌어졌다는 점이다. 무엇을 위한 기록인가.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비빔밥을 비빈 것' 기록을 원했겠지만, 결과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낸 것'이 돼 버렸다. 축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충분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규모'와 '기록'에 집착한 나머지 축제의 본질은 물론 환경에 대한 고려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겉모습과 수치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 전국의 지역 축제들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고 봐야 한다. 제한된 예산과 인원을 투입해 이 정도 성장을 이끌어온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노력은 분명히 값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친환경'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더 나아가 축제 자체를 환경보호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이 직접 용기를 가져오게 하거나, 쓰레기 줍기를 축제 프로그램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쓰레기 없는 축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 축제에는 지원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축제의 성과를 평가할 때 단순히 방문객 수나 경제적 효과만이 아니라 환경적 영향도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
시민들도 축제의 정체성과 의미를 되돌아봐야 한다. 축제는 본래 풍요와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나누는 자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축제는 소비의 장으로 변질됐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버리는 것이 축제의 본질이 돼 버렸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축제의 모습일까.
비빔밥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비빔밥에 비벼진 환경, 축제에 버려진 양심. 우리는 이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기록'을 위해 5만개의 쓰레기를 만들어낸 축제보다 쓰레기 하나 없이 끝난 축제가 더 값진 기록이다. 지금도 계속 열리고 있는 전국의 축제들이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을 실천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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