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오늘은 너로 정했닭
닭 주산지 충청권, 음식 발달 영향
뛰어난 맛·저렴한 가격 요리 탄생
대전 651곳… 광주·대구보다 많아
원도심 중구 노포들, 신도심 확산
오류동 한영식당·봉명동 고향촌 등
부드럽게 맵고 달짝지근한 맛 특징
본보에 대전의 먹거리와 맛집을 소개하자 몇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그래서… 대전의 대표적인 음식이 뭔가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서너 가지를 대전 음식문화의 특징으로 손꼽을 만하다.
첫째, 대전의 역사가 짧은 탓으로 오래된 음식문화가 드물다는 점이다.
경부선 철도 개통이 1905년이고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것이 1932년이다. 그 이전에 대전은 논과 밭뿐이었고 한밭으로 불렸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전으로 충청권은 물론, 영호남과 이북 출신까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터줏대감이라고 할 만한 음식이 없어 외지의 다양한 음식이 들어와 거부감 없이 정착되는 현상이 전개됐다.
둘째, 밀가루와 콩 음식이 풍성하다는 점이다.
1950-70년대까지 미국은 우리나라에 매년 대량의 잉여농산물을 제공했다. 미국산 밀을 가공한 밀가루가 공급되면서 국수와 칼국수, 수제비, 빵이 널리 퍼졌다. 특히 대전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성행했다. 칼국수와 빵집이 많이 생겨났고, 자장면과 만두, 짬뽕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형 중국집도 번성했다. 콩을 활용한 두부두루치기와 순두부, 콩국수, 콩튀김도 미국산 원조 농산물과 무관하지 않은 음식이다.
셋째, 따라서 굳이 대전의 대표 음식을 꼽자면 밀가루와 콩으로 만든 칼국수와 빵, 두부두루치기, 닭고기로 만든 닭볶음탕을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거니와 맛있고 가격도 저렴해 가성비가 뛰어나다.
□ 맛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 '닭볶음탕 도시'
인구가 비슷한 대전과 광주광역시의 음식문화는 천양지차이다. 빅데이터로 맛집을 분석하는 다이닝코드에서 칼국수를 검색하면 대전 641, 광주는 158곳, 두부두루치기는 대전 274곳, 광주는 1곳에 불과하다. 대전을 대표하는 칼국수나 두부두루치기가 광주에서는 별로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대전에 닭을 식재료로 하는 음식점이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대전 시민들은 대개 닭볶음탕과 삼계탕, 백숙 맛집을 서너 개쯤 알고 있다.
닭 요리 식당과 관련 다른 도시와 비교해보면 재미 있다. 닭볶음탕집은 대전이 651개로 인구가 비슷한 광주(412개)는 물론 인구가 1.65배인 대구(455개), 인구가 2.28배인 부산(595개)보다도 많다. 삼계탕집도 대전(286개)이 광주(174개), 대구(226개)보다 훨씬 많고, 부산(300개)과 비슷하다. 특히 대전을 '닭볶음탕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에 닭볶음탕집이 많은 이유를 딱히 찾아내기는 힘들다. 다만 충청권이 주요 닭 생산지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닭 사육 관련 통계가 처음 잡힌 1983년의 경우 경기도가 2047만 마리로 가장 많았고, 충남북이 550만 마리로 뒤를 이었다. 2024년 현재는 전남북이 5800만 마리, 충남북이 4300만 마리, 경기도가 3500만 마리로 순위가 바뀌었지만 오랜 세월 충청권은 수도권에 닭을 공급하는 주산지였다.
20-30년 전만 해도 닭이 흔하지 않았다. 더운 여름철 보양식이나 잔치·제사상에서 볼 수 있었다. 충청권 양계농가에서 닭을 많이 사육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닭볶음탕과 삼계탕, 닭백숙 요리의 발달로 연결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원도심 중구에 맛집 밀집… 치열한 맛 경쟁
대전의 대표적인 닭 요리인 닭볶음탕은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전국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시내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맛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담백한 백숙이나 삼계탕집보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닭볶음탕집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극적인 쪽으로 소비자의 입맛이 변해가는 것이다.
대전의 닭볶음탕집은 원도심 중구에 오래된 맛집이 많고, 서구와 유성구, 대덕구에도 퍼져있다. 원도심 노포 닭볶음탕집들이 장사가 잘되자 신도시에도 확산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구 오류동의 한영식당은 대전 닭볶음탕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여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현재 3대째 맛을 이어가고 있다.
널찍한 양은냄비에 굵직하게 도막 낸 닭과 감자, 대파에 오랜 세월 노하우가 담긴 양념을 넣고 끓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국물에 밥과 부추, 김을 넣고 볶아 먹는 볶음밥도 맛있다. 원래 장사가 잘됐던 터에 백종원의 삼대천왕에 방영된 뒤 손님이 더욱 늘어 대기가 일상화됐다.
중구 대흥동의 정식당도 1984년부터 영업해온 오래된 맛집이다. 적당하게 매콤한 맛을 지닌 닭볶음탕으로 유명하다. 인근에 유명한 빵집 성심당과 으능정이거리, 대흥동문화예술거리, 한화이글스야구장 등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본점은 오래된 주택 스타일이고, 바로 옆에 건물을 신축하여 2호점을 냈다.
현대식당도 오래된 맛집으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생태와 조기찌개도 판매했으나 닭볶음탕이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닭볶음탕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집의 닭볶음탕은 부드럽게 맵고 달짝지근한 맛을 보여준다. 건물을 신축하여 매장이 널찍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맛집인 정식당 바로 옆에 있다.
대흥동 중구청 맞은 편의 강변산닭도 개성 있는 맛집이다. 이 식당의 닭볶음탕은 부추를 많이 얹어주는데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인기 메뉴인 곱도리탕은 닭고기에 소곱창을 더한 볶음탕으로 두 종류의 고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고객의 건강을 고려하여 음식마다 강황가루를 넣는다고 한다.
이들 맛집 외에도 동구 신안동의 한밭대가, 신하동의 절골식당, 중구 오류동의 영동식당, 서구 월평동의 대덕식당, 둔산동의 온유네닭매운탕, 괴정동의 이모네닭도리탕, 유성구 봉명동의 고향촌, 대덕구 비래동의 나래원과 송촌동의 닭으로 등도 닭볶음탕 맛집들이다. 이들 맛집은 대개 닭볶음탕 외에 백숙이나, 삼계탕, 옻닭 등을 함께 판다.
□ 삼계탕, 백숙, 닭강정 등 닭요리 식당 많아
대전에는 삼계탕 맛집도 많다. 인삼 최대 산지인 충남 금산과 가까운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구 중동의 금성삼계탕은 2대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맛집으로 유명하다. 동구 용전동의 풍전삼계탕, 마산동의 토담골, 중구 태평동의 시골양반촌, 서구 월평동의 선사삼계탕, 둔산동의 녹수청산, 유성구 봉명동의 형과아우누룽지삼계탕, 구암동의 유성본가누룽지삼계탕, 전민동의 한방삼계탕, 대덕구 상서동의 장수촌 등도 삼계탕과 백숙 맛집들이다. 근래 누룽지백숙과 누룽지삼계탕 등 누룽지를 결합한 맛집이 많아졌다.
닭고기에 튀김가루를 발라 튀긴 뒤 양념에 버무린 닭강정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유성에서 출발한 만년닭강정은 여러 곳에 분점을 냈다.
대전의 닭 요리는 다양하게 분화, 발전하고 있다. 예전에는 백숙과 삼계탕이 대세였지만 닭볶음탕을 비롯 치킨, 닭강정, 찜닭, 닭갈비, 닭내장탕, 숯불구이 등 다양한 음식이 생겨났다. 요리법도 삶는 것은 물론 튀기기, 볶기, 찌기, 굽기 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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