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붐’을 돌아보며 [세상읽기]

한겨레 2024. 10. 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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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내 화해갤러리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응원 문구를 선보이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나한텐 삽도 없는데. 이 많은 무덤들을 다 어떻게.”

노벨 문학상이라니. 이 두근거리는 소식을 듣고 읽기 시작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의 선배이기도 한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을 상기시켰다. 고통스러워했고, 또 괴로워했다. 작품 초반 과거의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경하는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게 했다.

답답해진 가슴을 달래려 잠시 책을 덮었다. 스쳐 가는 여러 생각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가 했던 말들,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그 모든 것이 작가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며 한숨 쉬고 비판하다가도, 누가 주식이나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큰돈을 벌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더라, 미국 주식은 뭐가 좋다더라 등등. 대화는 언제나 예측 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러다 보면 평범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은 무언가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초조함은 성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중학생 막내도 온라인 사이트에서 친구들이 100만원을 벌었다는 소문을 학교에서 들었다고 한다. 다른 소문에서는 몇명이 20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이런 행동을 ‘도박’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의 ‘투자’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어딘가 우리와 닮아 있다. 물질에 대한 욕망, 성공 사례에 대한 입소문, 그 욕망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의 불안감, 그리고 초조함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누군가들. 이 익숙함이 어른들을 닮았다.

검찰청에 따르면, 도박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수는 2019년 72명에서 2024년 상반기에 이미 277명으로 증가했다. 형사 입건된 청소년의 평균 연령은 2019년 17.3살에서 2023년 16.1살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편, 상장법인 주식을 소유한 미성년자는 2019년 9만명에서 2022년 75만명으로 증가했다. 불안이라는 힘에 의해 부풀어가는 욕망을 향한 경주는 우리와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 미국 싱크탱크의 17개국 1만9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만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물질적 안녕을 꼽았다. 다른 15개국은 가족, 대만은 사회를 선택했지만, 우리는 물질적 안녕이 첫번째, 건강이 두번째였다. ‘돈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은 마치 각자도생을 위한 조건처럼 들린다. 실제로 과거에는 강하다고 여겨졌던 공동체의 유대가 약해지며,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이들의 비율이 20%를 넘는 사회로 변했다. 사회적 지지망이 약하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고 다시금 돈과 건강에 집착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이미 3만달러를 넘어섰고, 이제는 4만달러를 향해가고 있다. 심지어 일본을 추월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물질적 갈증은 마르지 않는다. 그 허기가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지경이다.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주에서 광주까지, 세월호에서 이태원까지,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고, 동식물과 자연환경도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있다. 소득과 돌봄이 충족되지 않아 고통받는 이들, 돌봄에 전념하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이들, 딥페이크로 인해 삶이 무너진 이들, 그리고 낯선 대한민국에서 일상적으로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는 이들. 우리는 얼마나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는가? 우리의 거대한 욕망에 그들의 아픔이 묻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강 작가의 책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 사회의 이 중요한 ‘모멘트’가 한국인 노벨 문학상이라는 자부심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를 소설책 안에만 가두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의 마음이 책을 넘어 연대와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시작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할까.

건강한 투자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선을 넘은 우리의 욕망과 각자도생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아이들과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성찰하자는 것이다. 대신, 응시하기 어렵고 불편한 아픔에 공감해보자. 그리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자. 그 아픔은 언젠가 아니 이미 우리 삶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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