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만에 찾은 실종 딸이 고아로 둔갑돼 해외에 있다니…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10. 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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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길 잃은 다섯 살 경하를 무작정 고아원으로 데려가
고아원 맡겨진 지 1년도 채 안 돼 미국으로 입양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충북 청주에 사는 한태순씨(72)는 1남 2녀의 자녀를 뒀다. 한씨는 18세에 결혼해 이듬해에 큰딸 경하를 낳았다. 여름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에 '여름 하(夏)' 자를 넣었다. 이후 두 살 터울로 딸과 아들을 낳았다. 당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으나 다섯 식구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1975년 경하(당시 5세)가 실종되면서 가족의 시계도 함께 멈춘다. 그해 5월9일 점심때쯤 경하는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한씨는 경하와 함께 시장에 가려고 했으나 친구들과 놀겠다고 해서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갔다. 약 두 시간 후 시장에 다녀왔더니 친구들과 놀던 경하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경하, 할머니집에 갔다"고 했다. 경하는 평소 집에서 약 1km 떨어진 할머니집에 가서 밥도 먹고 잠도 잤다. 한씨는 안심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경하 삼촌을 통해 "경하가 어제 안 왔다"는 말을 듣는다. 그 순간 한씨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급한 대로 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근처를 샅샅이 뒤졌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씨는 남편과 함께 경찰서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출근하듯 했다.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지만 경찰은 "기다려 보라"는 말만 했다.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한씨가 딱했던지 용하다는 점쟁이를 소개시켜주는 경찰관도 있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남편은 가는 곳마다 두리번거리며 혹시 비슷한 아이가 있는지 찾았다.

한씨는 남편과 함께 딸의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전국의 고아원, 정신병원 등을 비롯해 심지어 섬까지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딸을 볼 수가 없었다. 한씨는 큰딸 생각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매일 딸의 얼굴이 실린 현수막을 대신 안고 잤다. 남편 신씨는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으나 가슴이 미어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없이 경하를 찾다 보니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됐다. 한씨는 그때서야 두 아이를 위해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열었다. 거울 한쪽에는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경하 사진을 붙여놓았다. 실종 전단지도 만들었다. 세 살 때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이 유일했다. 이 사진을 넣고, 세 살 때 연탄화덕에 데어 왼쪽 배꼽 밑에 화상 자국이 있는데 이걸 신체 특징으로 적어놓았다. 경하를 찾을 유일한 증표이기도 했다. 

실종된 딸과 44년 만에 재회한 한태순씨 ⓒ뉴스1

입양 신상정보 내용 모두 엉터리로 기재

실종 15년째 되던 1990년 8월 어느 날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는 경하와 닮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그가 알려준 부산의 한 고아원을 찾아갔다. 고아원 측은 한씨가 찾고 있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에서 나갔다고 했고, 어렵게 수소문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씨는 배꼽에 있는 화상 자국을 확인하려고 했더니 보이지 않았다. 오래돼서 희미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아빠 직업이 뭐였는지를 물었더니 택시 운전을 했다고 했다. 한씨는 딸이 맞다고 판단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딸은 어느새 21세의 처녀가 돼있었다. 한씨는 백화점에 가서 옷부터 사서 입혔다. 언론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모녀 상봉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씨는 가난했던 시절에 낳았던 것이 못내 가슴 아파 경하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취직도 시켜주고 경제적인 지원도 아낌없이 해줬다. 그런데 3년째 되던 어느 날, 딸이라던 그의 행동이 수상했다. 자기가 살던 부산에 틈나는 대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씨가 "집이 여기인데 왜 자꾸 부산에 가느냐, 집이 불편하냐"고 물었더니 머뭇거리던 그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는 엄마가 찾는 경하가 아니다"며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다. 

15년 만에 찾은 딸이 진짜가 아닌 가짜였던 것이다. 가짜 행세를 한 이유를 묻자 그는 "언론을 통해 엄마를 보는 순간 저 여자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다섯 살 때 엄마가 보육원에 맡겼는데 그 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같이 살면서 단 한순간도 내 딸이 아닐 거라고 의심한 적이 없던 한씨는 크게 상심했다. 가족들도 또 한번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씨는 자식 잃은 고통을 또 한번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한씨는 가짜 경하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자신을 속인 것을 용서했다. 얼마 후 가짜 경하가 결혼할 때는 결혼 지참금도 보내주고 결혼식장에서는 혼주 자리에 앉기도 했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한씨는 또다시 진짜 딸을 찾아 나섰다. 딸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갔다. 해외입양 가족을 찾아주는 단체인 '325KAMRA(캄라)'에 DNA를 등록하고, 성인이 된 딸의 몽타주도 제작했다. 

그렇게 딸을 찾아 헤맨 지 44년 되던 2019년 10월4일 한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캄라였다. 한씨와 유전자가 90% 일치하는 해외입양인을 찾았다는 것이다. 캄라 관계자는 "한씨가 캄라에 유전자를 등록한 후 그 자료를 여러 다른 데이터베이스에 올렸는데, 그중 한 곳에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의 미국 이름은 '라우리 벤더'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한씨는 기적 같은 현실이 자기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들을 시켜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여성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을 보내오면서 사진 한 장을 첨부했다. 어릴 적 사진이었는데, 발에는 실종 전 자신이 사줬던 꽃신을 신고 있었다. 

한씨에 따르면 어릴 적 경하는 유난히 꽃을 좋아했다. 실종 2일 전 꽃신을 사줬는데 경하는 그걸 매일 신고 다녔고, 밤에는 깨끗하게 닦아 가슴에 꼭 안고 잠이 들었다. 그 꽃신이 엄마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됐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가 그 꽃신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한씨는 경하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실종 아동 불법 입양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한태순씨(왼쪽 두 번째)의 기자회견 ⓒ연합뉴스

2019년 10월18일 오후 경하는 자신의 21세 딸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고, 44년 만에 어머니 한씨 등 가족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한씨는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딸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가 꼭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실종 당시 다섯 살 꼬마는 어느새 50세의 중년이 됐고, 24세의 한씨는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돼 있었다. 한씨는 "엄마가 미안해"라며 눈물을 흘렸고, 경하는 "It's Okay(괜찮다)"라고 했다. 한씨는 이렇게 그토록 보고 싶던 딸을 만났고, 소원을 이뤘다.

한씨는 딸의 실종 당시가 궁금했는데 경하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여자를 따라 기차를 탔는데, 깜빡 잠이 들어 깨어보니 종점이었다. 함께 있던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경하는 역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 "길을 잃었으니 엄마를 찾아 달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프에 경하를 싣고 고아원으로 갔다. 경하는 고아로 분류돼 1976년 2월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된 후 지금까지 미국 이름으로 살았던 것이다. 

처음 입양 가서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당시 살던 집과 할머니집을 기억하고 있었던 어린 경하는 자신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어릴 때의 기억을 반복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1998년에는 양부모가 경하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경하가 그린 그림 등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왔다. 가장 먼저 경하가 있던 고아원을 찾아갔더니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귀국한 양부모는 경하에게 이 말을 해줬다. 이때부터 그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딸은 계속해서 서로를 애타게 찾았지만 그때마다 엇갈렸던 것이다.

한씨는 경하가 내민 입양 갈 때 갖고 있던 여행증명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여기에는 경하의 신상정보가 담겼는데 태어난 곳이 서울이며, 주소는 입양기관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생년월일도 달랐다. 이름도 '백경화'라고 돼 있는 등 실제와는 다른 정보가 실려 있었다. 입양 상황에 부모가 버린 것처럼 돼있었다. 결국 경하는 실종 후 2개월 만에 입양기관에 인계됐고, 해외입양이 추진돼 7개월 후 미국으로 출국했던 것이다. 

실종아동 전문기관의 한 직원이 실종아동 찾기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가족들, 국가 상대로 손배 청구 소송 제기

한씨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을 당시 경하는 미아로 발견돼 지역 경찰서에 있었다. 경찰에서 가족을 찾으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한씨는 분노했다. 한씨와 시민단체 아동권리연대 등은 10월7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중앙지법에 국가와 입양기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씨 가족 측은 "당시 지자체와 경찰이 법령에서 부과하고 있는 보호자에 대한 통지 및 인도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부당한 해외입양이 이뤄졌고, 오랜 세월 가족들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으로 치유받을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시 실종 아동 보호기관과 입양기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씨 가족의 법률대리인은 "당시 아동을 보호했던 영아원, 입양기관 등은 보호자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할 조리상의 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씨는 "국가는 멀쩡한 부모를 두고 찾아주지도 않고 고아로 둔갑시켜 해외로 입양을 시킨 것"이라며 "고통으로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분하고, 천인공노할 일을 묵과한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실종 부모들 앞에 백배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은 "미아들이 고아로 둔갑돼 해외입양 간 것은 신경하씨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8년 44년 만에 가족을 찾은 미국 입양인 윤현경씨도 부모와 가족이 있었지만 길에서 버려진 것처럼 꾸며져 해외에 입양됐다"며 "이로 인해 윤씨는 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으로 알고 큰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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