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김건희' : 검찰은 어떻게 스스로 무너졌나 [서초동M본부]

김상훈 2024. 10. 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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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검찰은 끝났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이 피의자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다음 날, 한겨레 신문의 사설 제목입니다. "잘못했다"도 아니고, "반성해라"도 아니고, "끝났다"라니. 정말 검찰은 끝난 걸까요? 짧은 경험이지만 몇 달간 제가 검찰을 출입하며 느낀 무력감을 기록하려 합니다. 지난 5월 디올백 사건 전담수사팀이 꾸려지고, 이번 달 김건희 여사에 대한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 처분까지, 검찰이 어떻게 스스로 무너졌는지 주요 사건과 발언으로 돌아봤습니다.


1. '피의자 김건희'가 만든 최초 : 절차상 하자(瑕疵)

두 가지 사건으로 검찰은 사상 최초를 여러 번 만들었습니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가 동시에 두 가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일 자체가 최초의 사건이자 검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검찰 역사에서 '최초'라고 볼만한 일을 4가지 추렸습니다.

① 특수부가 1년을 기다린 서면조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이미 2020년부터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주범들이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2021년 12월 김 여사에게 첫 서면 질의서를 보내고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자, 도이치모터스 주범들의 1심 선고 뒤인 2023년 7월 2차 서면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김 여사의 답변은 1년 뒤인 올해 7월에 도착했습니다. 검찰은 꾸준히 재촉했다고 했는데, 김 여사 측에서 총선 등을 이유로 답을 미뤘다고 했습니다. 질의서를 보낸 건 대한민국의 주요 사건을 처리한다는 이른바 특수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입니다. 김 여사는 특수부 조사를 그것도 1년이나 미룬 사상 최초의 피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 1년을 기다렸냐"는 취지의 질문에 반부패2부장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안 나오는데요, 그런 분들이 있어요" (지난 17일, 검찰 도이치모터스 사건 브리핑)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를 수수한 의혹을 받는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의 출석요구에도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은 "강제수사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그런 분들"을 봐주지 않고 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검찰의 역할입니다.

② 영부인 피의자, 제3장소에서 대면조사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지난 5월 명품백 전담수사팀을 만들었습니다. 5월 10일 저희 법조팀은 금요일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검찰이 김 여사 소환 방침을 세웠다"고 보도했습니다. 두 사건을 묶어서 검찰청으로 불러 한 번은 조사하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주말 동안 대통령실과 법무부, 대검찰청은 바삐 움직였습니다. 5월 13일 월요일, 김 여사를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장과 1차장검사, 4차장검사가 전격 교체됐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군사 작전하듯 인사가 났다"고 했습니다. 두 달 뒤, 검찰은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인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대면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검사들은 경호상 이유로 휴대폰 없이 조사에 임했습니다.

저는 한 지자체장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와 함께 갔지만 경찰서 조사실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취재 과정 등을 진술하면서 진땀이 났습니다. 결국 무혐의를 받았지만, 가슴 떨리는 기억입니다. 경찰관을 저희 집 안방으로 불러, 휴대폰을 제출받은 뒤에 조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마음이 편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검사 시절에 전직 대통령 부인, 영부인에 대해 멀리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한 일이 있다.”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혜 논란에 선을 그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지칭한 걸로 추정됩니다. 권양숙 여사는 참고인 신분이었습니다. 이와 별개로 2004년에는 이순자 씨가, 2009년에는 권양숙 여사가 각각 대검찰청과 부산지검에 출석해 비공개 조사를 받았습니다. 모두 참고인 신분이었고, 경호 대상이었습니다.

뒤늦게 대면조사를 통보받은 이원석 전 총장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칙은 이 전 총장과 함께 퇴임한 듯합니다.

③ 수사심의위원회 기소 의견 따르지 않은 첫 사례

디올백 사건은 두 차례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넘겨졌습니다. 처음에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피의자 김건희 여사에 대한 첫 수사심의위에선 불기소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김 여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최재영 목사가 신청한 수사심의위를 시민들이 받아들였습니다. 피의자 최재영 목사에 대한 두 번째 수사심의위에서는 기소 권고가 나왔습니다.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디올백을 건넨 최 목사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면, 선물을 받은 상대방인 김 여사에게도 혐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두 사람 모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명품백 사건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열린 검찰 수사심의위는 모두 15차례. 이 가운데 11건은 수심위 결정과 검찰 처분이 같았지만, 나머지 4건에서는 검찰이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4건의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수심위가 더 이상 수사하지 말라거나, 재판에 넘기지 말라고 한 걸 검찰이 거부하고 죄가 있다면서 추가 수사를 하거나 끝내 기소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인 겁니다. 디올백 사건처럼 수심위가 수사하고 기소하라고 권하는 걸 검찰이 마다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사심의위원회는 기소권 남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검찰이 스스로 내놓은 자구책이었습니다. 디올백 사건으로 검찰의 자구책이 무시당했습니다. 도이치 사건도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검찰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수심위 제도와 국민 눈높이는 무시됐습니다.

"수사심의위원들이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법률 전문가는 아니다", "목사님, 스님, 유치원 원장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런 일반 시민들을 모은다면, 아무래도 여러 의견에 대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사건 처리와 관련된 공정성·객관성에 영향을 받는다" (지난 17일, 검찰 도이치모터스 사건 브리핑)

④ 사건 처분 하루 전에 열린 레드팀

검찰 레드팀은 담당 수사팀뿐 아니라 다른 팀 검사들에게 사건 기록과 내용 등을 공유한 뒤, 어떻게 처분할지 논의하는 하나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놓친 게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겁니다. 김 여사의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을 두고도 레드팀 회의가 열렸습니다. 지난 16일, 차장검사들과 부장검사, 평검사들까지 15명이 모였습니다. 2시간 동안 수사팀에서 PPT를 진행하고, 이어 2시간 동안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그런데 레드팀 회의가 끝나고 1시간 만에 검찰은 내일 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일반 회사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중요 프로젝트 의사결정을 위해 회사 임원진과 전문가를 불러 모아 내부 회의를 열었습니다. 4시간 동안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1시간 뒤에 전격 최종 결정이 이뤄집니다. 오너가 모든 걸 결정하는 회사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관여자라면 "뭐 하러 회의를 했을까"라고 푸념했을 겁니다.

이번 레드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부장검사는 MBC와 통화에서 "보통 레드팀은 '죄가 안 되는데 왜 무리하느냐' 이런 식으로 수사를 자제시킬 때 활용해 온 방식"이라며 "한번 겪어보면 법리 문제나 증거 문제를 지적해 수사할 때 굉장히 피곤하다"고 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브리핑 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레드팀에서 날카로운 의견 많이 주셨고 그 의견을 바탕으로 오늘 기자님들께 설명을 드릴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중구난방이었을 것이다." (지난 17일, 검찰 도이치모터스 사건 브리핑)

레드팀보다 기자브리핑 준비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법언이 있습니다. '수사·사법기관은 실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외관상 공정마저 지키지 않았습니다. 검찰을 취재해 온 저는 한가지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검사는 법리와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 검사의 입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말입니다. 제가 만난 검사들은 대부분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사건을 처리한다는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돈이 아닌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오너가 있는 회사'와 '국민 앞의 검찰'은 달라야 합니다.


2. '피의자 김건희'가 피해간 법(法) : 내용상 하자(瑕疵)

① 디올백: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

디올백 사건으로 고발당한 건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두 사람입니다. 김 여사는 디올백과 샤넬화장품 등 5백만 원 넘는 금품을 받았습니다. 최재영 목사는 "직무관련성 있는 청탁 대가"라고 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접견용 선물 정도로 판단했습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2011년 벤츠 검사. 청탁금지법은 이런 검사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뇌물의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줄줄이 무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 원, 또는 연 3백만 원 넘는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배우자였습니다. 배우자를 통해 금품을 건네는 것도 막아야 한다, 배우자 사생활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붙었습니다. 지금처럼 배우자의 경우 공직자 직무 관련성을 따지고, 배우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한 건 절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올백 수사팀은 직무관련성을 뇌물죄 수준으로 깐깐하게 따졌습니다. 진경준 전 검사장 사례도 들었습니다. '공짜 주식' 등 9억여 원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판례상 김 여사도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뇌물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비위 행위를 막자고 만든 게 청탁금지법인데, 검찰이 다시 뇌물죄 사례로 들고나온 겁니다. 앞뒤가 뒤바뀌었습니다.

청탁금지법 판례는 "직무 관련성을 좁게 인정할 경우 입법 취지가 무시되거나 법적 제한을 교묘히 빠져나갈 우려가 있는 게 자명하다"고 지적합니다. 법조인들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그 넓다는 대통령의 직무관련성을 김 여사는 빠져나갔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직무를 통제하는 법이라면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묶어줘야 되는 거죠." 이석연 전 법제처장 "대통령 부인이기 때문에 찾아간 거지, 평범한 회사원 부인이었다? 찾아가겠습니까?" 김래영 단국대 법대 교수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지위를 고려할 때 이 사건 명품 가방은 대가 없이 건네진 선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관행상 또는 법령상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배우자의 경우 일반 공직자의 배우자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지난 7월, <대통령 배우자 명품백 수수를 둘러싼 법적 쟁점> 논문)

② 주가조작: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주범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통정매매 98번 중 47번이 김 여사 계좌로 이뤄졌다고 인정했습니다. 통정매매는 주가조작 세력들이 시간과 물량을 짜고 친 거래입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제176조(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사들은 통정매매가 인정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주식 시장 자체가 외부 요인이 많은 데다 수많은 거래자들이 개입하기 때문에 특정한 거래를 짜고 친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실제 도이치 사건에서도 검찰이 주장한 통정매매가 모두 인정되진 못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김 여사 계좌의 경우 짜고 친 거래가 명확했다는 이야깁니다. 검찰이 91명의 계좌주 가운데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 등 계좌주 몇 명만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입건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브리핑 당시 검찰 스스로도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로 이뤄진 이른바 '7초 거래'가 의심스럽다고 인정했습니다.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 등이 연락하지 않았다면 김 여사가 12시쯤에 맞춰서 직접 8만 주(2억 5천만 원어치) 주문을 낼 수 없었다는 겁니다. 저는 검찰 브리핑 현장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두 건의 통정매매에 대해 검찰 스스로도 의심이 가는데, 김 여사가 검찰 조사에서 통정매매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한 거래라고 말한 건 사실상 거짓말한 것 아닌가? 왜 더 파고들지 않았나?" 검찰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 여사의 정확한 진술은 '기억이 안 난다', 10년 전 일이라. 피의자 조사했을 때 대부분 스탠스는 '기억이 안 난다'이다. 구체적 매매와 관련해서 권오수와 통화한 기억은 없다, 녹취록을 보여드려도 '내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라고 했다. 10년 지나서 기억이 안 나는 건데‥ 어쩔 수 없었다." (지난 17일, 검찰 도이치모터스 사건 브리핑)

권오수 전 회장,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 1차 주가조작 총책 이 모 씨와 2차 총책 김 모 씨 이들도 사건 발생 10년 정도가 지나 검찰 조사를 수차례 받았습니다. 권오수, 이종호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끝까지 추궁했습니다. 끝까지 부인했지만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겼고, 유죄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김 여사의 경우 주가조작을 알았던 게 아니라 권오수 전 회장을 너무 믿어서 시키는 대로 주문을 낸 걸로 보인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 "권오수가 연락을 해서 여사가 주문을 낸 걸로 저희가 인정을 했습니다. 저게 우연의 일치라고 저희도 생각을 하지 않는데… 저희도 통정매매라고 생각합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네, 그런데 몰랐다는 거 아니에요. 권오수를 너무 믿었다는 거 아니에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 "그렇습니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한 검사는 "공모 관계를 일반 형사 사건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음주운전자에게 차키를 줘서 방조 혐의를 받는 사람이 음주상태를 모르고 줬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라고 하는 것과, 법원에서 통정매매로 인정된 내 매도 주문이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예 다르다는 겁니다. 자본시장법 조항을 한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기억이 없어도 김 여사가 통정매매한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6조(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에 관하여 그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거나, 그 밖에 타인에게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할 목적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자기가 매도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을 매수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도하는 행위



3. 검찰이 놓치고, 잃은 것

①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

"이번 결정이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종국적으로 공소 유지와 입증의 책임을 지는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 (지난 2일, 검찰 디올백 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

검찰은 디올백 사건으로 김 여사 등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일절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MBC를 포함한 몇몇 방송사가 모두발언이라도 촬영하겠다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사진 촬영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디올백 수사팀이 말한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고, 외부 판단인 수사심의위를 무시하고, 대통령 직무관련성을 축소해 주고, 말뿐인 레드팀을 열고, 검찰총장이 내세운 원칙을 변칙한 것, 이게 직업적 양심일까요? 일반 형사사건으로 고생하는 일선의 수많은 검사들은 수사팀이 말한 직업적 양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② 사건의 실체적 진실

검찰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넘기지 않을지 사실과 법리를 끝없이 확인합니다. 저를 비롯한 국민들은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주길 기대했습니다. 김 여사가 죄가 있냐, 없냐에 대한 판단에 앞서 검찰은 김 여사가 얼마나 사건에 개입됐는지 모든 증거와 진술을 되도록 국민 앞에 충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라도 팩트를 더 찾으려고 몇 달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취재해 온 기자들은 그 갈증이 더 심했습니다.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더라도 숨김없이 모든 팩트를 보여주길 기대했습니다. 질의응답으로 브리핑이 4시간이나 이어진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런데 검찰 브리핑에선 김 여사에게 유리한 팩트만 제시했습니다. 불리한 팩트를 물어보면 모른다, 확인이 안 됐다고 하니 답답했습니다. 검찰이 김 여사 변호인이냐는 지적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1) 도이치 사건으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하지 않았는데, 마치 영장이 기각된 것처럼 말했습니다.

2) 자신들의 범행도 부인하는 권오수, 이종호 두 사람이 '김 여사는 주가조작을 모른다'는 취지로 말 한 진술을 김 여사 무혐의 근거로 보여줬습니다.

3)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알았을거라는 불리한 증거(김 여사만 빠질 것 같다고 우려한 2차 주포 김모씨의 편지, 김 여사가 포함됐다는 BP패밀리, 김 여사와 1차 주포의 4천7백만원 돈거래, 김 여사와 최은순씨의 실현이익 23억원)에 대해선 당사자들에게 묻지 않거나 끝까지 파헤치지 않았습니다.

4) 한 번에 최대 3억원 어치 주식을 매도했는데(김 여사 통정매매 주문중 최대 물량)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믿고 이해해줬습니다.

5) 도이치모터스 초기투자자로 13억원을 벌고, 일반인은 잘 모르는 BW 거래를 하고, 2년 가량 순차적으로 증권사 6곳에 계좌를 만들어 돈을 옮긴 김 여사를 주식을 잘 모르는 일반투자자라고 했습니다.

6) "상장사 대표가 선수들을 동원해 시세조종을 한다는 상황이 이례적이고 투자자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사정인 것이 사실임"이라고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오랜 지인이던 김 여사 모녀를 옹호했습니다.

7) 방조 혐의가 인정된다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의견도 있어서 참고했다고 했습니다. 김 여사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도 아니고, 안 지났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판단조차 안 했습니다.

검찰은 수사·재판기록을 확보해 기사화한 언론보도를 부적절하다고도 했습니다. 한 기자가 김 여사가 포함됐다는 BP패밀리 진술에 대해 물었을 때 검찰의 답변입니다.

"다 수사할 때 확보한 것이고, 재판에도 제출했다. 이걸 언론사에서 방송했다. 이게 저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재판에서 기록 입수했다고 [단독] 기사를 쓰면‥" (지난 17일, 검찰 도이치모터스 사건 브리핑)

언론의 역할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다는 점에서 검찰과 유사합니다. 그걸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사실을 보도하는 일입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그러한 실체적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③ 기소독점권을 가질 명분

재판을 받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지켜보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기소권은 오직 검사만 가진다는 기소독점주의, 검찰의 막강한 힘입니다. 그건 ①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과 ②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이라는 두 기둥 위에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피의자 김건희' 사건으로 두 기둥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검찰 출신 대통령도 인사권을 이용해 두 기둥을 거세게 흔들었습니다. 검사 탄핵 때는 내부망에 수백 개의 댓글을 달던 검사들도 있었습니다. 부당함에 목소리를 냈던 검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이치모터스 수사 결과에 그 많던 검사들은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검찰이라면 국민들이 어떤 명분으로 기소독점권을 줘야 하는 걸까요?


4. '산 권력'과 무력감

기자도 사람인지라, 자신이 취재하는 출입처를 드나들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출입처를 이해하게 됩니다. 저에겐 법원과 검찰이 그랬습니다. 매일 밤 9시를 넘긴 시각에도 서초동에 우뚝 선 검찰 건물, 그 수많은 방에 불이 들어온 걸 보고 믿었습니다. '보통 검사'의 이야기가 담긴 평검사의 책을 읽고 믿었습니다. 재판에서 피고인의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 대신 목소리 내는 공판 검사를 보고 믿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전국 검찰청에서 선정된 우수 수사 사례와 그 어려운 걸 해낸 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사진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력감이라고 썼습니다. 브리핑을 마치고 저뿐 아니라 기자 여럿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불기소 결론만의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피의자 김건희'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검찰 전반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서였습니다. 마무리가 씁쓸한 이유입니다. 일각에서는 검찰청 폐지를 말합니다. "검찰은 끝났다"는 건 범죄자들이 참 좋아할 말입니다. 국가적 비극입니다. 어쩌면 스스로 무너진 검찰을 보는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같을 것 같아 검찰 출입기자로서 더 무력해집니다.

<‘산 권력’ 앞에선 작아지는 검찰> 동아일보 칼럼 제목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작아지다 못해 무너졌다고 느끼는 건 저뿐만일까요?

김상훈 기자(sh@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4805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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