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그 공을 던질 겁니다”[후벼파는 한마디]

강홍구 기자 2024. 10.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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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공을 던졌습니다. (다시 승부해도) 나는 다시 그 공을 던질 겁니다."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이 한마디의 주인공은 누굴까요.

그러나 마이애미 벤치는 순리대로 정면승부를 선택합니다.

정면승부를 선택한 스킵 슈마커 감독도 "야구, 업보, 야구의 신 측면에서도 (고의사구 지시는) 나쁜 행동입니다. 야구라는 게임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그와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오타니를 두려워하지 않은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바우만의 승부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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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공을 던졌습니다. (다시 승부해도) 나는 다시 그 공을 던질 겁니다.”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이 한마디의 주인공은 누굴까요. 여름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고교 야구 선수들이 등장하는 청춘만화 속 명대사는 아니었을까요.

‘최고의 공’을 말한 이는 바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마이애미의 불펜 투수 마이크 바우만(29)입니다. 아, 물론 낯익은 이름은 아닐 겁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그럼 이렇게 설명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LA 다저스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에게 시즌 50호 홈런을 허용한 투수.

마이크 바우만의 최고(?) 투구. 이 공은 좌중간 담장 밖으로 날아가 오타니 쇼헤이의 50번째 홈런이 됐다. MLB닷컴 홈페이지 영상 캡처


이후의 결과는 여러분이 알고 계신 그대롭니다. 오타니는 바우만에게 50번째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MLB 148년 역사상 최초로 50홈런-50도루 클럽에 가입하게 됩니다.

사실 바우만은 ‘합법적으로(?)’ 오타니와의 승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오타니는 이날 11대 3으로 크게 앞선 7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바우만 앞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폭투가 나오면서 12대 3, 2사 3루가 됩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걸 의식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동 고의사구’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마이애미 벤치는 순리대로 정면승부를 선택합니다.

물론 바우만도 희생양을 자처하진 않았습니다. 오타니를 상대로 2구째 시속 156㎞의 묵직한 공을 내리꽂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바우만은 오타니와의 대결이 자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날 맞대결에서 오타니에게 삼진을 따낸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스트라이크, 1볼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한 바우만은 회심의 너클 커브를 던집니다. 전날 오타니를 돌려세웠던 바로 그 공이죠. 하지만 두 번 당할 오타니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공을 통타당한 바우만은 마운드 위에서 아쉽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의 시즌 50호 홈런 기록. 마이크 바우만은 3구에 이어 4구째도 회심의 너클 커브를 던졌다. 사진 출처 MLB닷컴 홈페이지

아쉬울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경기 뒤 바우만은 “오타니는 정말 좋은 스윙을 했습니다. 나는 내 최고의 공을 던졌습니다. (다시 승부해도) 나는 다시 그 공을 던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면승부를 선택한 스킵 슈마커 감독도 “야구, 업보, 야구의 신 측면에서도 (고의사구 지시는) 나쁜 행동입니다. 야구라는 게임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그와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오타니를 두려워하지 않은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바우만의 승부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오타니의 홈런이 나온 뒤 마운드 위에서 바우만이 보인 행동도 화제가 됐습니다. 모자의 챙을 쥐며 오타니에게 축하와 존경의 뜻을 표한 바우만은 다음 타자와의 대결을 앞두고 잠시 투구판에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대기록을 세운 오타니가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숨은 배려였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엔 승복하는 스포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동아일보 DB.

삶은 때론 고독합니다. 그라운드 위에 솟은 마운드가 때론 무인도처럼 외롭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등 뒤의 야수들은 보이지 않고, 눈앞의 타석에는 나를 집어 삼키려는 오타니들이 줄줄이 들어설지도 모릅니다. ‘왜’ ‘하필’이란 생각이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정답은 애당초 아무도 모릅니다. 경기의 결말이 그러하듯 말이죠.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저 공을 던질 뿐입니다. ‘최고의 공’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손을 떠난 공은 돌아오지 않지만, 던지지 않는 한 다음 기회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올 한해에만 4번이나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던 바우만에게도 오타니와 같은 영광의 순간이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야구도, 어쩌면 삶도 그렇습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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