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준과 거꾸로 가는 시장..불확실성 커졌다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10. 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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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두 번은 ‘깃발 여행’을 간다. 잘 모르는 곳을 가이드와 함께 가는 여행이다. 가이드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깃발을 들고 다닌다. 별 생각 없이 깃발을 따라 가다보면 여행 목적지에 다다른다. 길을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없거나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을 때 깃발 여행을 가면 그래도 실수 없이 여러 곳을 관광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만약 깃발을 든 가이드가 잘못된 지도를 보고 여행객들을 인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이드는 물론 여행객들까지 갈팡질팡하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11월 이후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도 깃발을 잃은 여행객처럼 혼선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9월18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이후 많은 나라들이 금리를 내렸다. 이들은 금리인하를 통해 내수를 부양한다는 것을 내걸었다. 이면에는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서 통화 확장의 깃발을 치켜들자 여러 나라 들이 따라 내린 측면이 크다. 남미의 멕시코를 비롯해 유럽의 스웨덴 스위스 체코 헝가리 등 국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뉴질랜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앞으로도 상당수의 국가들이 금리를 내릴 태세다. 중국도 미국 금리인하 이후 막대한 돈을 푸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내수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금리인하 깃발에 세계각국 동참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10월1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한은의 통화정책은 지난 2021년8월 이후 계속 동결해왔던 기준금리가 38개월 만에 인하로 바뀌었다. 기준 금리를 내린 것은 2020년5월 이후 4년5개월만이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값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예상되지만 금리를 내려 내수회복을 견인해야 한다는 명분이 더 앞선 결과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은의 금리인하 배경에는 미국이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영향이 컸다. 미국의 금리인하로 한미금리차가 2%포인트에서 1.5%포인트로 축소되면서 환율이 안정된 것이 우리나라 통화 정책의 공간을 넓혀줬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3개월간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금리인하는 ‘매파적’이라고 평가했다. 한 마디로 기준금리 인하라는 방향은 미국을 따라서 가겠지만 진폭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다는 얘기다.
정책과 거꾸로 움직이는 시장
세계 각국이 금리 인하라는 피봇을 단행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들 통화정책이 무색하리만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9월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가장 많이 내린 만큼 이 나라의 시장금리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미국 달러화는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린 9월18일 이후 10월14일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미국 달러가치를 표시하는 달러인덱스는 2.5%올랐다. 반대로 한국 원화가치는 같은 기간 2.7%떨어졌고 일본 엔화가치도 4.7%나 하락했다. 미국이 금리를 큰 폭으로 내렸지만 외환시장에서 달러가치는 오히려 상당 폭 올랐고 한국과 일본의 통화가치는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이 기간 0.1%올라 거의 변동이 없었다.
이 같은 통화가치 변화의 이면에는 시장금리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금리 인하 후 미국국채 10년물 금리는 연3.687%에서 연4.073%로 0.39%포인트 올랐다. 기준금리는 내렸지만 시장금리는 반대로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한국국채 금리는 이 기간 0.11%포인트 인상됐고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0.12% 상승했다. 미국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시장금리 인상폭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강세국면이 진행됐다.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 다시 커져
문제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시장금리의 상승은 미국의 향후 금리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을 예고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미국의 9월 ‘빅컷’을 단행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된 고용지표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경기 판단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표가 월간 비농업고용자수 증가폭이다. 실업률 등 다른 지표보다 역동적인 고용환경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는 매월 첫째 금요일 전달의 지표가 발표된 다음 향후 2개월에 걸쳐 수정치가 나온다. 미국이 9월 빅컷을 할 당시에 참고했던 7월 고용자수 증가폭은 8만9000명이었다. 이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경제충격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월간 고용자수 증가폭 10만 명은 경기 침체를 가늠 짓는 기준이다. 고용환경이 이정도로 악화됐다면 ‘빅컷’을 통해 고용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비등했고 제롬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도 이를 따랐다. 그런데 10월 들어 7월고용에 대한 수정치가 발표됐는데 그 숫자가 14만4000명이었다. 9월 발표보다 무려 6만 명이나 많았다. 이 숫자는 고용이 여전히 상당 폭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이 지표가 한 달 전 알려졌다면 ‘빅컷’은 명분을 잃었을 것이다. 9월의 빅컷은 잘못된 통계에 기반을 둔 정책이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한동안 2%대를 향해 하락 추세를 보이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다시 오름세로 반전했다. 10월10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대비 2.4%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2.3%)를 웃돌았다. 계절성과 단기 변동성이 높은 농산물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인플레이션율은 9월에 3.4%를 기록해 전달(3.3%)보다도 높아졌다. 9월 물가지표는 인플레이션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신호를 보여줬다.

미국 연준이 9월에는 ‘고용악화와 물가안정’을 이유로 ‘빅컷’을 단행했는데 10월이 돼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고용은 호조세였고 물가는 아직도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지표를 잘못 짚었다고 해서 이미 결정한 통화정책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통화정책은 지표를 확인해가면서 조금씩 움직이는 ‘베이비스텝(0.25%)’을 밟아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파월 의장은 이런 전통적인 조언을 따르지 않고 한두 달 지표만 보고 ‘빅컷’을 단행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돼 상반되는 지표가 발표되면서 미국 통화정책이 꼬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지정학에 휘둘리는 통화정책
11월 이후 미국 통화정책 기조는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예측하는 미국 기준금리 변화를 보면 이 같은 불확실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9월10일 이 기구는 11월 빅컷을 단행할 확률이 53%, 베이비스텝(0.25%포인트) 확률을 47%로 예상했다. 10월 2일에는 빅컷 확률이 35%, 베이비스텝이 65%였다. 하지만 10월14일에는 빅컷 확률은 0%로 떨어졌다. 반면 베이비스텝 확률은 88.8%로 큰 폭으로 올랐다. 여기에 금리를 동결할 확률도 11.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10월 들어 금리를 올리지 않거나 소폭 올리는데 그칠 것이라는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미국의 시장금리가 연준이 제시한 방향과는 무관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이 여파는 다른 나라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11월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여론 조사는 여전히 카멜라 해리스 현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팽팽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연준의 금리 인하를 사실상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11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선거 이틀 후인 11월7일 개최된다. 연준 위원들이 정치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선거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동지역에서의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폭발할지 여부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경제상황도 불확실한데 여기에 국제정세와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가세한다면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은 당분간 ‘시계제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을 받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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