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기 좋은 시절에 다자이 오사무를 읽다 [박찬일의 ‘칼과 책’]

박찬일 2024. 10. 2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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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문학동네 펴냄
ⓒ최산호

고등학생 때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근처 해적판 LP 시장과 함께 일종의 해방구였다. 간혹 절도범 머릿수를 채우려고 형사들이 ‘후리가리(일제 검거)’를 나와서 가방을 뒤져대는 걸 빼고는. 그때는 소설의 시대였다. 책장을 채운 소설을 뒤적거리다가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었다. 한자로 〈人間失格(인간실격)〉이라고 쓴 작품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무렵 이미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박정희를 지나 전두환의 시대였다. 절망하기 좋았다. 학교에서 그 책을 보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선생님이 그랬다. “너 인마, 실격이야.”

가끔씩 꿈에서나 그리던, 다자이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건 삼십 년이 지나고서였다. 다자이는 〈인간실격〉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 지역에서 대지주인 아버지의 6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중의원이 되어 도쿄로 이주한 부모 대신 이모가 그를 길렀다. 낮에는 유모와 보모가 돌봤고, 밤에는 이모 품에서 잤다. 저 보모는 여기서 다룰 단편 〈쓰가루〉의 핵심 인물이다.

다자이는 다섯 번의 자살 시도, 좌익 활동과 도쿄대 졸업 좌절, 모르핀 중독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런 개인사가 일본 특유의 사소설적 성격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때문에 그의 퇴폐는 어쩌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절망하고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열광을 얻기에 좋았으리라. 내가 고등학교를 2학년 2학기 무렵부터 거의 나가지 않은 건 청계천 헌책방에서 산 50원짜리 〈인간실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자이는 섬세하고 유약했으며, 모성에 대한 집착에 흔들리는 남자였다. 특히 아버지가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크게 괴로워했다. 〈인간실격〉의 서두를 부끄럽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국적기는 일본에서도 변방인 아오모리행 정기 여객편을 띄웠는데, 아마도 스키를 타러 가는 관광객을 많이 실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쓰가루를 비롯한 인근의 여러 지역들, 그러니까 아오모리와 히로사키 등은 겨울이 오면 눈의 나라가 된다. 아오모리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니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죄다 부츠를 신었다. 그들의 겨울 국민신발이다. 나는 소도시 가나기행 기차표를 끊었다. 다자이의 생가, 그가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아버지의 위세를 보여주는 집이 있는 곳이다. 화양절충의 집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관광객을 맞는다. 이 마을도 다른 일본의 지역처럼 소멸되어가고 있다.

기차는 이내 가나기역에 도착한다. “아아, 여기는 정말 놀랍군요.” 놀랍다는 건 시야를 가리는 눈 때문인지, 아니면 다자이의 생가가 있다고 하여 뭔가 활력을 기대한 예상과 다른 한적한 분위기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역 앞에서 만난 어떤 중년의 사내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여행의 거점인 도시 히로사키에서 시골인 쓰가루 지역에 오기 전부터 오랫동안 내리던 눈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가 배낭에서 작은 문고본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津輕(쓰가루)〉. 다자이 팬들은, 이렇게 폭설이 매일같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찾아오는 모양이다.

언젠가, 겨울에 눈 오는 쓰가루를 가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눈이 안 오면 어쩔까 걱정하자 일본의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것보다 눈이 많이 올 수는 있어도 적게 올 리는 없어.” 다자이의 〈쓰가루〉 첫 장을 열면 일어본이든 번역본이든 쓰가루의 눈에 대해 첫 문장을 시작한다. “가루눈 가랑눈 함박눈 진눈깨비 알갱이눈 싸라기눈 우박눈 -〈도오연감〉에서(도오는 이 지역의 옛 지명이다).”

쓰가루에서 오래 머물러야 이 눈을 골고루 맞아볼 수 있겠다. 이 지방 연감은 눈을 물리적 형태로 나눈 것 같은데, 내가 가나기에서 만난 눈은 몇 가지 첨언이 필요했다. 바람에 따라 눈의 질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눈은 조금씩, 스멀스멀 내리다가 갑자기 힘차게 목화솜처럼 내리다가 다시 물기를 머금고 뾰족한 가시처럼 보행자들의 얼굴을 덮치기도 했다. 나는 이 지역의 눈은 완벽하게 횡으로 날린다는 걸 알았다.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어서 뒤돌아서 걷는 걸로 눈과 싸웠다. 거리의 상가는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종종 ‘낙석 주의’가 아닌 ‘낙설 주의’라는 낯선 표지판이 보였다.

마지막 한 ‘씬’을 위해 쌓아올린 이야기

〈쓰가루〉는 1944년에 쓰였다. 도쿄에서 생활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상태에서 한 잡지사의 요청을 받아 고향을 찾아가는 일종의 기행문이자 소설 형태로 집필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것이다. 다자이도 쓰가루의 여러 지역을 돌며 왕년의 친구들, 식구들을 만난다. 다자이 특유의 자기혐오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실패해서 고향에 돌아온 반쯤은 탕아의 마음과 태도로, 그러나 애써 밝게 웃으며 고향 이곳저곳을 방문한다. 패전 직전의 전쟁 말기였으니 공출도 심하고, 술도 구하기 쉽지 않지만 그는 음주를 거르지 않는다. 당시 지역의 배급 사정을 보여주는 대목도 많다. 술집이나 여관에 손님이 와도 술이 없다거나,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마을에 배급된 술을 모아서 다자이를 접대하는 장면도 있다. 배급주는커녕 배급 식량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식민지 상황과 비교하면 배급주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우리로서는 상당한 분노를 참을 수 없기도 했다.

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장르의 글은 문학적으로 탄탄한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다. 애초에 고향 기행문의 형식을 의뢰받아, 여러 가지로 궁지에 몰린 다자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원고료라도 챙기려는 의도로부터 시작된 글인 탓이다. 다자이를 제대로 안 읽은 이들은 종종 그저 그의 이력과 소설의 몇몇 설정과 묘사를 들어서 퇴폐적인 사소설로 단정지어버리곤 한다. 〈쓰가루〉는 〈인간실격〉이나 〈사양〉처럼 복잡하고 내밀한 고백과 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인에게는 별로 읽히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다자이가 쓰가루 일대를 돌며 지역을 묘사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수다스러운 장면은 오직 마지막 한 ‘씬’을 위해 쌓아올린 축대 같다. 이름이 ‘다케’인 보모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다자이는 그의 반짝이는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다케는 이미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다케는 다자이를 보자마자 그다지 반가운 태도를 보이지 않아 그를(독자들까지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케는 이내 다자이와 헤어진 이후 자식처럼 길렀던 다자이를 그리워했다는 걸 봇물처럼 터뜨린다. 눈물도, 감격스러운 상봉도 아닌데 이 짧은 장면에서 나는 여진까지 이어진 긴 전율을 느꼈음을 고백해야겠다. 다자이의 필력 때문인지, 아니면 다자이에게 오랫동안 투사해온 내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여러분도 읽어보시고 전율이 오는지 살펴보시길. 오지 않더라도, 쓰가루라는 저 먼 반도를 다자이의 안내로 구경 한번 잘 한 걸로도 충분한 글이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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